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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을 통해 우주와 인간세계를 연결한 ‘금동천문도’

  • 기사입력 2018.06.22 09:53
  • 기자명 정진해 문화재전문위원


문화재 : 양산 통도사 금동천문도 (梁山 通度寺 金銅天文圖) 보물 제1373호
소재지 : 경남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 통도사 (지산리)


태양이 솟구쳐 오르면 우주에 박혔던 별은 흔적을 감추게 되고, 태양이 눈 밖에서 사라지면 경쟁이라도 하듯 모습을 드러내는 별들의 행동은 진주알처럼 빛을 내어야 그 존재를 알 수 있다. 별은 오래전부터 인류에게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고 별과별을 연결하여 상상의 형상을 만들어 풍년을 점치고, 측성학, 역법, 천체 항법 등을 발달케 하였다. 인간이 볼 수 있는 우주의 크기는 동그란 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별이 전부이다. 그러나 우주 속에 인간이 살고, 정지되고, 움직이고, 삶과 죽음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넣을 수 없다.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금동천문도는 앞과 뒤를 우주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서로 등을 대고 표현하였다. 이 둘을 연결하기 위해 3개의 둥근 구멍을 내고 서로 교감할 수 있도록 하였다.

▲ 금동천문도


고대 중국의 수학 및 천문학의 문헌인 『주비산경(周?算經)』에 “모난 것은 땅에 속하며, 둥근 것은 하늘에 속하니,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라고 선언되어 있다. 통도사 상보박물관에 ‘금동천문도(金銅天文圖:보물 제1373호)인 천문지리기구는 북극을 중심으로 둥글게 북극으로부터 적도 부근에 이르는 영역의 별자리가 표시되어 있다. 항현권(恒顯圈), 주극성(週極星) 영역이 원으로 지름 19cm가 실선으로 그려져 있다. 우주의 형태는 완전함을 알 수 없지만, 인간이 생각한 이상의 세계를 그려 넣음으로써 후대에 와서 연구의 대상이 되면서 더욱 깊이 있는 우주를 그리게 된다.

▲ 금동천문도 북극 부분


우리나라는 고인돌에서 천문도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기원전 3000년경 대동강 유역의 고인돌에서, 충북 청원의 고인돌 유적에서 이미 선사시대에 북두칠성, 작은곰자리, 용자리, 카시오페이아 등을 묘사하였다. 또한, 경남 의령군 가례면 일대에서 발견된 2500년 전의 고인돌에도 별자리를 새겼다. 이러한 별자리를 학자들은 성혈이라 하여 다산, 부를 바라는 기호를 나타낸 민간신앙이나 원시종교의 표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금문천문도 제작 이전 조선 초기의 천상열차분야지도와 비교해 보면 대체로 일치하는 것으로 위에 표시된 별자리는 쳔상열차분야지도의 모든 별 가운데 중요하게 여겨지는 109개의 별자리(자미원과 28수)이며 별의 총 개수는 481개이다.

▲ 금동천문도 남극 부분


각 별자리는 선으로 연결하여 어두운 곳에서도 별자리를 알 수 있게 하였으며, 별마다 진주를 박았다. 큰 별 작은 별을 엮어서 이름을 붙였고, 별자리의 밝기에 따라 풍년을 점쳤다. 북극으로부터 적도 부근에 이르는 별자리 중에 안쪽의 별자리에는 이름을 표기하지 않고 남극에 가까운 별자리에 한자 한 자씩 표기 하였다. 같은 크기의 두 별을 연결한 별자리를 ’壁(벽) ‘이라 하였다. 두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에 벽을 쌓은 듯한 모습을 벽이라 하지 않았나 한다. 크고 작은 별 16개를 타원형으로 연결한 별자리를 ’奎(규) ‘라고 하였다. 같은 크기 2개의 별을 엮고 조금 떨어진 별을 엮어 ’婁(루) ‘라고 하였고, 같은 크기의 별을 3개 엮어 삼각형을 만들고 ’胃(위)’라 하였다. 6개의 작은 별이 서로 짝을 이루듯 나란히 두 줄로 배열되고 한 별이 나와 있는 것을 연결하여 ‘묘(昴)’라고 하였다. 조금 떨어져 있는 별을 엮고 중간별의 크기 6개와 작은 별 하나를 엮어 ‘필(畢)’이라 명명 하였다. 북극과 남극을 이은 23개의 별에 대해 이름을 붙이지 않았고, 4개의 벌을 엮어 애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모습을 ‘井(정) ‘이라 하였고, 몸통에 긴 모가지에 머리를 한 8개의 별을 엮어 ’귀(鬼‘라 하였다. 또한 달팽이가 기어가는 듯한 모습의 별 8개를 엮어서 ’류(柳) ‘라 하였고, 누에가 기어가는 모습의 별 7개를 엮어 ’星(성) ‘이라 하였다. 4개의 별을 그물모양으로 엮고 좌우에 하나씩 별을 연결하여 ’장(張) ‘이라 하였고, 22개의 별의 엮은 모양이 마치 새가 날갯짓을 하는 것 같다고 하여 ’익(翼) ‘이라 하였다. 큰 별 5개와 작은 별 2개를 수레처럼 엮어 진(軫)’이라 명명했다. 중간 크기의 별 두 개를 서로 엮고 중앙에 작은 별 두개를 엮여 마치 긴 대롱 중간에 무게 중심을 재는 듯한 별자리를 동(甬) ‘이라 하였다. 3개의 별을 지붕처럼 엮어 심(心)이라 하였고, 큰 별, 중간별, 작은 별을 13개를 엮어 곡식을 까부는 키 모양을 같다고 하여 ’기(箕) ‘라 하였다. 소머리에 두 개의 뿔의 형상을 한 별자리는 ’우(牛) ‘라고 명명하였다. 이 외에도 허(虛), 위(危), 지(至), 여(女) 등 총 24개의 별자리 이름을 기록하였다.

▲ 금동천문도 별자리


별은 빛이 나지 않으면 별이 아니다. 지금은 망원경으로 확인이 된다고 하지만, 금동천문도가 만들어지는 그때만 하여도 별자리를 눈으로 보아야 했다. 천문도를 제작했던 주인공은 별을 아름답게 진주로 장식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별 크기에 따라 밝기를 생각하고 진주를 박았다. 지금은 24개만 남아 있는 상태이고 진주알의 크기도 0.5cm, 0.7cm 등 여러 가지 종류의 것들이 구멍에 박혀 있다.
금동천문도에는 별자리 외에 3개의 구멍이 원판의 안쪽과 좌우에 일직선상에 뚫려있다. 등잔불이나 촛불에 의존하던 시대에 밤하늘의 별자리를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별자리마다 진주를 박은 것 외에도 천문도의 방향을 파악하기 위해 3개의 구멍을 뚫지 않았나 하는 추정을 해 본다.

▲ 금동천문도 별자리


그러나 금동천문도의 전면은 천문도를 새겼지만, 후면은 인간 세상을 그렸다. 3개의 구멍은 우주에서 태양과 달, 별이 인간 세상에 비춰 주는 빛이 지구상에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중앙에는 송악도(松岳圖)를 새겼고 가장자리에는 많은 명문을 점각으로 새겼다. 명문의 내용은 이 천문도를 만든 사람이 삼각산 문수암의 비구니 선화자(仙化子)가 순치9년(1652년) 9월에 제작하였고, 위봉사 비구 천연(天延)이 천문도 제작에 관여하였다는 내용이다. 또한, 송악도를 둘러싼 제1천부터 33천까지 천성위(天聖位)빼곡하게 공간을 메우고 있다. 천(天)이라는 것은 불교에서 ’신들이 사는 곳’을 지칭한다. 신은 곧 지상을 지키고 있다는 내용이다.

▲ 금동천문도 송악도


송악도는 다섯 봉인 오악(五嶽)과 두 그루의 소나무, 그 아래 언제나 넘실거리는 바다를 표현하였다. 오악은 삼각산을 구성하고 있는 5개의 바위산을 의미하지만, 불교에서는 수미산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화자는 신들이 사는 곳에서 오악을 그리면서 모든 것, 많은 것, 전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다섯 개의 봉우리를 금동 판에 새겼을 것이고, 2그루의 소나무는 인간 세상에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는 의미와 소나무는 지상에 뿌리를 박고 사는 생명체를 의미한다. 소나무는 일찍 백목의 장으로 황제의 궁전을 수호하는 나무라고 하였다. 소나무는 오래 사는 나무로 송수천년(松壽千年)·송백불로(松柏不老)라고 하였다. 또한, 절개와 지조의 상징으로 여겨왔고, 소나무는 깨끗하고 귀한 나무로서 하늘의 신들이 땅으로 내려올 때는 높이 솟은 소나무 줄기를 택한다고 믿었다.
두 소나무 아래에는 생명의 근원이면서 영구히 존재한다는 장수의 상징인 물결이 치고 있다. 물은 바위, 소나무와 함께 십장생의 상징물이다. 종교에서 물은 성스러움, 순결, 깨끗함, 거듭남 등을 상징한다. 불교에서 향수와 감로수로 아기 부처를 목욕시키면서 성불을 발원하고 몸을 씻은 물은 길상수라 하여 성스럽게 받든다. 선화자는 문수암에서 자신의 몸을 씻을 수 있는 물을 그림으로 송악도를 완성하였다.

▲ 금동천문도 천성위


천연(天延)이 우주의 별자리를 찾아, 금동 판에 하나하나 점을 찍고 별의 크기마다 진주를 다듬어 끼웠다. 밤하늘의 별은 빛을 잃으면 별이 될 수 없음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 빛이 선화자에게 넘어오면서 땅은 움직이지 않는 바위와 한 쌍의 소나무로 인한 생명체, 그리고 생명의 젖줄인 물을 조화롭게 배치하여 스스로 이곳에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금동천문도 후면은 인간 세상의 근원을 보여주는 우주와 인간세계가 자연에 엮여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선화자가 문수암에서 삼각산의 실경을 모델로 그렸다는 것은 불교 세계의 중심이 수미산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한다. 금동천문도 옆에는 긴 동판이 하나 있고, 그 동판에는 ’此天形之圖志載於一南大聖華嚴經‘이 새겨졌다. 즉, “이 천문의 형상은 일남대성화엄경에서 기재한다.”라는 의미를 기록함으로써 삼각산을 수미산으로 표현한 것임을 알리고 있다.

▲ 동판


금동 판에 새긴 전통공예작품은 예술적 가치는 물론 회화사뿐만 아니라 사상사적인 측면에서 매우 소중한 정신세계가 함축되어 있음을 높이 평가한다.

양산 통도사 금동천문도는 명문을 통해 효종 3년(1652)에 제작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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