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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역사의 길을 걷는 ‘해남 미황사 대웅보전’

  • 기사입력 2018.07.06 09:47
  • 기자명 정진해 문화재전문위원


문화재 : 해남 미황사 대웅전 (보물 제947호)
소재지 : 전남 해남군 송지면 미황사길 164, 미황사 (서정리)



산은 우러러보면 명산이 되고, 명산은 무언가 품으려 한다. 땅끝 마을이 있는 해남의 달마산이 그러한 산이다. 깊은 숲에 숨겨둔 사찰을 품은 달마산은 명산답게 병풍으로 둘러져있다. 많은 불자들뿐만 아니라 산을 좋아하고 숲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달마산 자락의 미황사가 그러하다. 눈에 띄지 않으면서 발길이 닿는 곳이고 눈에 띄면 자연이 나의 것이라 하는 미황사의 멋은 먼저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과 더불어 라는 것이다.
달마산은 한반도의 산줄기 중에 바다로 떨어지기 직전에 마지막 솟아오른 봉우리다. 달마는 산스크리트어 다르마(Dharma), 즉 ‘진리’라는 뜻을 의미한다. 달마산은 짙은 녹음이 발산하는 동백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진 아늑한 장소에 미황사라는 사찰이 자리 잡게 하였다.

▲ 달마산


미황사가 이곳에 자리 잡게 된 시기는 12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조선 숙종 18년(1692)에 세운 부도암 사적비에 기록된 창건설화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 8년(749)에 석선(石船)이 사자포구에 닿았다. 그곳에는 금인(金人)이 노를 잡고, 배 안에는 화엄경, 법화경, 비로자나 문수보살, 탱화 등이 있었다. 향도들이 모여 봉안할 장소를 의논할 때 갑자기 검은 소 한 마리가 나타났다. 금인이 말하기를 “나는 본래 우전국의 왕으로 불경과 불상을 모실 곳을 찾다 이 산에 일만 불이 있어 여기에 배를 세웠다. 소에 경을 싣고 나가 소가 누워 일어나지 않는 곳에 봉안하라”라고 하였다. 미황사의 ‘미(美)자는 소의 “음매”하는 소리에서 따왔으며, 미황사의 ’미(美) ‘는 소의 ’음매‘하는 소리에 따왔으며, 황(黃)자는 금인의 색을 뜻한다.
6.25 한국전쟁이 끝나고 한국의 사찰은 지금처럼 많은 불자들이 오갈만큼 정보를 접하기 어려웠다. 미황사도 마찬가지이다. 20여 년 전만 하여도 오솔길에 동백나무와 잡초가 무성했던 초라한 사찰이었다. 정유재란으로 불타기 전만 하여도 열두 암자를 거느린 큰 사찰이었으나 다음해인 1598년에 대웅보전만 중건되고 1754년에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미황사 일주문


일주문 앞에 서면 여느 사찰의 일주문과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달마산 미황사‘라는 편액도 내걸지 않았다. 일주문 앞에 서면 잔잔한 물결이 파랑을 일으키며 내려오는 듯 한 계단을 만난다. 아주 완만한 경사에 놓인 계단은 먼 산을 바라보며 내려와도 걸리는 곳 없이 가볍게 내려올 수 있고 올라갈 때도 힘들어하지 않으면서 자근자근 발걸음을 떼며 달마산을 감상하며 경내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을 만큼 편안한 계단이다. 이 길은 직선으로 놓인 계단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나뭇잎의 가장자리의 엷은 톱니와도 같은 길이다.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사천왕문에 이르게 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사천왕문은 겹처마의 맞배지붕 건물로, 중간 칸은 법당으로 오르는 통로를 두고 좌우에는 사천왕을 배치하였다.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계단으로 이어지고 이 계단에 오르면 또다시 3단의 계단이 자하루 누하주 중간 칸에 이른다. 자하루로 가기 전에 머리를 들고 달마산을 바라보면 기암괴석은 모두 신선들의 쉼터 같기도 하고 어느 고승이 바위를 바라보며 염불을 외고 있는 것 같다. 2층 구조의 자하문은 정면 7칸, 측면 2칸의 누각형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2층은 전체가 트인 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대규모 행사 및 수련회 때 사용된다. 자연석으로 기단을 쌓고 자연석 초석을 놓았다. 초석 위에 자연에 친근감을 주기 위해 흰 누하주를 그대로 세웠다. 5가량가의 구조에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마감하였다. 누하주 중간 칸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넓은 대웅보전 앞마당에 이른다. 누하주의 각 칸은 화방벽을 쌓고 위에 세로살고정창을 하였다. 2층의 누상주에는 두 짝의 판문을 달았다.

▲ 미황사 자하루


누하루를 지나면 또 다시 계단이 있고 다시 또 다른 계단에 오르면 그때서야 미황사의 중심건물인 대웅보전이 앞에 와 닿는다. 대웅보전 뒤에는 몇 채의 건물이 있고 그 뒤로는 녹색의 나무가 띠를 두르고 다시 달마산의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대웅보전 앞 넓은 마당에는 석탑이 있지 않다. 잘 다듬은 돌을 차곡차곡 2단을 쌓아 기단을 조성하고 그곳에 꽃나무를 심을 화단을 조성하였고, 다시 다듬은 돌을 높이 쌓아 기단을 조성하고 대웅보전을 세웠다. 기단의 좌우로 계단을 두었고 화단 앞에는 법회를 열 때 불화를 걸기 위해 마련된 괘불대 1쌍이 세워져 있다. 괘불대는 당간지주와 달리 법당 앞에 놓이지만, 당간지주는 사찰 밖에 높이 절의 깃발을 걸었던 당간을 세웠던 것으로 괘불대에 비해 훨씬 높다.

▲ 미황사 대웅보전 전경


미황사에는 영조 3년(1727)에 7명의 스님들이 조성한 높이 12m, 폭 5m의 초대형 부처님의 괘불이 있다. 평상시에는 대웅보전 내에 있지만 이를 괘불대에 옮겨 걸기에는 크기가 워낙 커서 장정 20명의 인원이 필요로 한다. 미황사 괘불은 고려 불화의 아름다움과 조선 불화의 단순미를 고루 갖춘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예전부터 큰 법회에 괘불대에 걸고 행사를 진행 하였으며, 법회에 이 괘불을 보면 소원을 이루고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또한 가뭄이 극심할 때 이 괘불을 걸고 법회를 열고 달마산 정상에 올라 불을 지피면 비를 내려준다고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를 한 정방형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미황사의 다른 전각은 화려한 단청이 되어 있지만, 대웅보전은 단청을 오래전에 했으나 빛과 비바람에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이다. 내부는 색체와 문양, 천불벽화의 만다라이다. 어두운 법당 안은 빛을 품어 내부의 세상을 불러들이고, 빛은 오래전 의사표시를 비워 내부를 비워두려고 하는 사찰건축의 윤리적 덕목을 읽어 들이려한다.

▲ 미황사 대웅보전 주춧돌


대웅보전 우측 계단에 올라서면 범상치 않는 초석에 눈이 간다. 복련이 새겨진 원형 초석 위에 배흘림기둥을 올렸다. 초석을 들어다 보면 연꽃이 새겨진 위에 거북과 게가 있다. 주춧돌에 연꽃을 새기고 물에서 살고 있는 게와 거북이를 조각하였다. 이것은 대웅보전은 연꽃 위에 세웠다는 의미이다. 연꽃은 불교의 상징이고 연화대 위에 부처가 앉았다. 대웅보전은 연꽃 위에 지어 졌으니 늘 이곳에 부처님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건물 외부의 포작은 안으로 4출목, 밖으로 3출목으로 화려하게 짜여 공간의 깊이를 확장하였다. 이러한 건물은 조선 중후기 다포집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면 기둥 위에 용머리를 장식하였고 “대웅보전’의 현판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이다. 흔히 무위사 극락보전을 추사의 대표적 느낌이라 하고 미황사 대웅보전을 이광사의 글씨와 닮았다 했다. 추사의 글씨는 획과 획 사이에 옹골찬 기백이 보이는데 이광사의 글씨는 자랑하지 않는 섬세하고 바르고 정확하고 근사하다는 평을 받는다.

▲ 미황사 대웅보전 솟을살 사분합문


전면의 3칸을 벽처럼 문처럼 사용되는 문짝은 좌우가 청판을 댄 빗살로 짜여진 3짝의 문중에 두 짝의 문이 접이식 나비경첩으로 연결되어 있고, 하나의 문은 외문 짝이다. 가운데 문짝은 4분합문으로 두 짝씩 나비경첩으로 접이식으로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하였다.
건물의 내부는 포작 위 약 60cm 정도 높이의 흙벽과 판벽을 올리고 우물천장을 했다. 천정은 사방 벽에서 비스듬히 반자를 밀어 올려 빗반자를 하고, 빗반자 위 중앙 칸의 천정에 평판 반자를 올려 마감하였다. 이러한 천장은 중앙 상부 칸으로 점점 좁아지면서 깊어지는 궁륭형 천정을 연상 시킨다. 천정에는 다양한 문양과 다채로운 빛이 들어 천정공간의 장엄함과 아름다운 천상의 세계를 연상케 한다. 천정에는 천불출현지지 희유의 천불벽화가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황사 대웅보전 용두


천정문양은 엄격한 좌우대칭의 구도를 갖추었다. 중앙 칸에 부처님과 범자 문이 있고, 주위로 우물반자의 총 칸수는 177칸으로 구성되었다. 네 모서리에 5×3칸씩, 어간 빗반자에 9×3칸, 양 측면 빗반자에 3×6칸씩, 중앙 평반자에 금니로 베푼 범자 문 6×5칸, 그 양측면의 백학, 모란문양 2×6칸씩 해서 총 177칸이다. 내부 장엄의 색조는 부드러움이 넘치고, 천정하부 공포가구는 담녹색, 천정 면은 연지와 노랑 금빛이 주류를 이룬다. 문양은 연꽃, 모란, 학, 범자 등 총 7가지이며, 하나하나의 문양은 반복하여 표현하였다. 연꽃은 늪에서 길러 올린 것이 아니라, 인간의 종교적 신심에서 길러 올린 처염상정의 불보살이다. 네 모서리의 연꽃문양은 다섯 가지 형태로 다양하게 그렸다. 연꽃 문양에서 보듯 신령한 기운이 새싹처럼 차고 나와서 보주가 되었고, 잎이 나와서 중도의 연화좌가 생겼고, 정대경지인 텅 빈 공으로 순환하는 구조로 묘사되었다. 순환하는 연꽃문양은 바로 그 ‘개(開)→시(示)→오(悟)→입(入)’의 근기에 따른 일승법의 원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미황사 대웅보전 내부


대웅보전 천정법계의 소실점은 닫집이 있는 중앙 칸에 위치한다. 30칸에 시문된 범자는 몇 겹의 원 속에 있는데, 원의 테두리는 붉은색과 초록색이 어우러졌다. 그것은 무명을 밝히는 빛, 곧 불변의 진리가 파동형식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천정장엄에는 범자와 학, 그리고 관념화 된 꽃의 씨방 부분에 금니를 입혔다. 곧 금니의 범자와 학과 꽃의 씨방은 불성이자 부처다. 특히 학에 입힌 금니채색은 최고의 예술적 품격을 지닌 것이 아닌가 한다. 천정의 벽화 군집들은 조선민화의 병풍 첩처럼 유기적이면서 독립적이다. 벽화 칸칸이 혼자로도 되고, 전체로도 예술작품이 된다.

대웅전 앞마당의 긴 돌확은 항시 달마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닿는 곳이다. 오른쪽 숲을 따라 난 길에 들어서면 소나무와 동백나무 사이로 많은 스님의 열반의 흔적인 승탑 밭으로 안내한다. 승탑마다 공중을 나는 새와 물속에서 사는 거북이와 새, 물 위에서 피는 연꽃, 잡귀를 막아 준다는 도깨비 얼굴 등이 새겨져 있어 조용한 숲속에서 새로운 자연을 만난다. 달마산에 오르면 들쑥날쑥 기암괴석이 거대한 수석이 된다. 이곳에서 다도해와 서해의 낙조를 감상하며 다시 숲길을 걸어 미황사로 내려오면 동백나무 동산에서 붉은 꽃이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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