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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시마을]성숙옥, 덮는

  • 기사입력 2019.03.22 10:52
  • 기자명 성숙옥

덮는
성 숙 옥

눈이 편지를 쓴다
지금 이 순간 하염없이 내리는
저 점선의 행간을 따라가면
붉게 밑줄 친 그대가 있을까
내 속에서 사슬로 이어지는 생각이
그 사이를 꽃잎처럼 흩날린다
꽃핀 날만이 사랑이랴
매운바람으로 뒤엉키고 풀어지는
뒤안도 있다
꽃 진 마음이 덮인다
세상의 경계를 하얗게 지우면서
하지만 내가 덮는 그대는
자꾸만
눈밭에 붉은 찔레열매로 솟아
거기
내 발자국 찍히겠다

김기덕 시인의 시해설/시각적 이미지가 선명하면서도 서정적 내면이 충실한 시이다. “눈이 편지를 쓴다”는 첫 구절부터 독자를 사로잡는다. 눈이 쓰는 편지는 세상의 경계를 하얗게 지우는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이다. 눈의 언어로 쓰인 점선의 행간을 따라가면 그리움으로 붉게 밑줄 친 그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그리움이 또한 눈송이 되어 꽃잎처럼 흩날린다. 그리고 시인은 꽃 핀 날만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랑에는 꽃 피고 화사한 봄날 같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매운바람으로 뒤엉키는 겨울 같은 날도 있음을 표현한다. 진정한 사랑은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고 초월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꽃이 진 현실이며, 얼어붙은 계절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을 하얗게 덮으며 순수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길 원한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그리움이 눈밭에 붉은 찔레열매처럼 솟아오르게 되고, 발자국을 찍음으로 다시 새로운 세상에서 만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눈밭에 붉은 찔레열매는 주변의 겨울과 같은 환경을 극복하고 맺은 결실의 상황이기도 하다. 이 상황은 주변의 모든 경계가 허물어진 자유롭고도 완전한 사랑의 결실을 추구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그리고 상대의 꽃 같은 삶에만 현혹되지 않고 부족하고 못난 부분을 덮으며 갈 때 진정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음을 말한다. 짧지만 아름다운 시 속에서 고농도의 응축된 성숙옥 시인의 참된 사랑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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