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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질이 시급한 천덕꾸러기 퇴직연금

  • 기사입력 2019.05.24 12:45
  • 기자명 발행인

더불어민주당 자본시장활성화특별위원회가 지난 20일 퇴직연금의 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내놨다. 내년 22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퇴직연금의 저조한 수익률을 개선하기 위해 당정이 '퇴직연금 개혁'에 본격 나선 것이다.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에 금융사가 가입자의 자금을 알아서 굴려주는 ‘디폴트 옵션’을 도입하고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를 활성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최운열 자본시장특위 위원장은 "퇴직연금 제도 개선은 국민들의 안정적인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라며 "특히 자본시장특위의 제도개선 사항이 모두 노사와 근로자 선택권을 확대시켜주는 것일 뿐 강제사항이 아니므로 현행 퇴직연금 체계 유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190조원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지만 수익률은 1.01%로 형편없는 수준이다. 이 기간 중 연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1.5%)은 물론 은행 정기예금 평균금리(1.99%)보다 낮았다. 전년 수익률도 1.88%로, 역시 물가상승률(1.9%)에 못 미쳤다. 실질수익률이 2년 연속 마이너스였던 셈이다. 기업은 원금 보장 투자 상품만 선택하고 근로자는 자신의 연금을 방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금융회사는 고수익을 내도 성과 보수가 없기 때문에 수수료만 챙기려 한다. 그 결과 190조원이나 되는 퇴직연금 적립금 대부분이 예금·채권 등 '저위험·저수익' 투자 상품에 들어 있는 것이다.

퇴직연금은 퇴직금을 대신해서 나온 제도다. 2005년에 제정된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이 근거 법률이다. 그로부터 15년가량 지났지만 퇴직연금은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사업장 가운데 절반 정도는 예전 퇴직금 제도를 고수한다. 연금제로 바꾼 기업에서도 아직 일시금 수령이 압도적으로 많다. 퇴직자의 98%가 퇴직금을 연금이 아닌 일시불로 받는 게 퇴직연금의 저조한 수익률 때문일 것이다.

근로자 스스로 운용책임을 갖는 기금형 퇴직연금은 노사와 외부 전문가로 구성되는 일종의 기금운용위원회가 퇴직연금 관리를 전담한다. 사용자와 퇴직연금 사업자의 이해관계에 따른 계약유치 경쟁 대신 자산운용 수익률 경쟁을 유도할 수 있어 운용 효율화를 꾀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낮은 이율의 원리금 보장 상품에 주로 투입되는 국내 퇴직연금과 달리 호주의 기금형 퇴직연금은 국내 주식·채권, 해외 주식·채권, 비상장 주식, 부동산 등의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유지하며 안정적 고수익을 올린다.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을 위한 디폴트옵션은 근로자가 금융사에 일일이 연금 운용을 지시하지 않아도 금융회사가 알아서 펀드 등 금융상품에 가입해 돈을 굴려주는 제도다. 시간과 관심과 전문성이 부족해 퇴직연금이 방치되는 상황을 차단할 수 있다.

퇴직연금은 국민연금, 개인연금과 함께 3대 노후보장체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하지만 퇴직금을 채권·주식에 투자하다보면 손해가 날 수 있다는 점은 가입자들에게 분명히 알려야 한다. 또한 수익보다 안정을 중시하는 노동계에 대한 설득도 뒤따라야 한다. 더불어 금융사 내부통제와 당국의 감독 강화 등 보완책도 필요하다. 퇴직연금도 노후생활 대비의 주요한 수단이 될 수 있도록 빠른 후속 조치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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