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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을 허하라"

  • 기사입력 2019.10.10 13:39
  • 기자명 박영아 변호사

“사표를 던진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사직할 때만큼은 나를 고용한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그만두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데 사직마저도 허가를 받고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무려 정부의 허가가 필요하다. 바로 이주노동자들이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고법)은 제조업, 농축산어업 등 구인에 어려움을 겪는 업체에 외국 인력을 공급하기 위한 제도(고용허가제)를 규율하는 법이다. 외고법에 따르면 외국인근로자는 입국한 날부터 3년 동안 국내에서 취업활동을 할 수 있다. 다만 사용자가 재고용허가를 요청하면 1년 10개월까지 연장가능하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노동자 본인이 연장신청을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4년10개월의 취업기간이 만료된 이주노동자는 사용자가 재입국 후의 고용허가를 신청하면 출국일부터 3개월 지나면 다시 입국하여 종전의 사업장에서 일할 수 있다. 이때 취업기간은 재입국 전과 마찬가지로 3년+1년10개월이다. 재입국 전 취업기간 중 사업장을 변경하지 않고 동일한 사업장에서 일하였을 것, 그리고 재입국 후 해당 사용자와 1년 이상의 근로계약을 체결하였을 것이 재입국 고용의 요건이다.

정부는 사업장을 변경하지 않은 것이 “성실”하다고 하여 이 제도를 “성실 외국인노동자 재입국 취업 제도”라고 부른다. 이주노동자들은 통상 3년짜리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입국한다. 따라서 현행 이주노동정책은 이주노동자가 10년 가까이 한 사업장에 묶이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용허가제는 국내 인력이 부족한 ‘업종’에 적정규모의 외국 인력을 공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이주노동자를 10년간 한 ‘사업장’에 묶어놓으려는 이유가 잘 설명되지 않는다. 마음대로 그만둘 수 없는 노동자를 부리고자 하는 사용자들의 이해관계가 철저히 반영되었다는 것 말고는.

사용자가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인하여 사회통념상 그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근로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인정하여 고용노동부장관이 고시한”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 이주노동자는 다른 사업장으로의 변경을 신청할 수 있기는 하다.

문제는 사업장변경을 신청하기 위해 해당 사유에 해당함을 노동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하여 직장을 그만두고 싶어도 고용센터에 가서 성희롱을 당했음을 입증하고 사업장변경허가를 받아야 사직하고 다음 직장을 구할 수 있다. 가해자에게 어떤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같이 직장을 다니기 힘들어서 피해자가 그만두겠다는 것임에도 먼저 성희롱 사실을 입증토록 하는 것이다.

사업장변경허가를 받지 못하면? 울며 겨자 먹기로 기존 직장을 계속 다닐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강제로 추방된다. 이주노동자는 취업비자로 체류하기 때문에 취업하지 않으면 국내 체류자격을 잃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법위반 또는 근로계약 위반사실 모두가 사업장변경사유가 되는 것도 아니다. 임금체불은 명백한 근로계약 위반에 해당하고 나아가 근로기준법상 형사처벌 대상이다. 그런데도 임금체불이 사업장변경사유에 해당하려면 월 임금 30% 이상의 금액을 2개월 이상 지급하지 않거나 지연지급한 경우, 또는 10% 이상의 금액을 4개월 이상 지급하지 않거나 지연지급한 경우에 해당하여야 한다. 노동자의 근로계약 해지권을 사실상 제한하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상 강행규정(당사자간 계약으로 적용을 배제시킬 수 없는 규정을 말함)을 비롯하여, 사용자와 노동자간의 관계에 대한 공적 개입은 통상 상대적으로 취약한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유독 이주노동자 고용에 관한 제도만은 국가가 사용자의 편에 서서 노동자와의 계약관계에 개입하고 있다. 노동자가 외국인이라면 국민인 사용자의 이익이 우선한다는 것일까?

그러나 노동자 중 일부에 대한 차등적 대우는 결국 노동자와 노동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주노동자를 10년간 사람이 아닌 “인력”으로만 취급하도록 하는 현행의 이주노동정책에 물음표가 달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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