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방위에 불길한 징조를 막아주는 ‘제주도 방사탑’ 2

정진해 문화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9/12/1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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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방위에 불길한 징조를 막아주는 ‘제주도 방사탑’ 2
 
정진해 문화재전문위원   기사입력  2019/12/17 [15:36]

▲ 신흥리 방사탑 1호



문화재 : 신흥리 방사탑1-2호, 무릉리방사탑1-4호, 인성리방사탑1-2호(제주도민속자료 제8-10~17호)

소재지 :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외

 

신흥리 1호 탑(민속자료 제8-10호)은 평상시에 물이 들어와 바닥을 볼 수 없지만, 물이 빠졌을 때 보면 현무암 자연석 암반 위에 큰 돌로 굽을 놓고 그 위로 갈수록 작은 잡석을 쌓아 올려 전체적으로 밑이 넓고 위가 좁은 원추형이다. 상부의 중앙 부분이 움푹 파여 있다.

 

신흥리 2호 탑(민속자료 제8-11호)은 마을에서 포구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가면 현무암의 자연석들로 인해 조금 높은 듯한 곳에 자연석을 원추형으로 쌓아 올렸다. 탑 상부에는 사람의 얼굴을 조각한 것처럼 생긴 자연석이 얹혀 있다. 이 탑은 오다리 코지에 있는 탑이라는 뜻으로 ‘오다리탑, 상부에 세워 놓은 양근 같은 석상 때문에 ‘큰개탑’과 대비해 양탑(陽塔)이라고 부른다.

 

무릉리는 언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구전에 의하면 조선 명종 7년(1552)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여 2년 후인 명종 9년(1554)에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후 1580년(선조 13년) 을해년에 둔포리에서 분향할 때 붙인 이름으로 ‘구기자나무가 많은 마을’이란 뜻으로 '구목리(枸木里)'라 부르게 되었고 1654년(효종 5년) 갑오년 구목리를 옛 중국 고사에 나오는 선경처인 무릉도원의 머리글자를 따서 구목리를 무릉리(武陵里)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마을의 해안가는 무릉1리이고, 한라산 쪽으로는 무릉2리와 접해있고 서쪽으로 신도2리, 동쪽으로 영락리와 인접해 있다. 오래전에 물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면서 탑이 있는 ‘앞논물’지경이 무릉리 마을로 부르게 되었다. 자연지명으로 물동사, 송당물, 굿물 등이 있다.

 

▲  신흥리 방사탑 2호

 

 

무릉리에는 자연석으로 쌓은 원통형 4기의 돌탑이 자리 잡고 있다. 원형형 돌탑 위에는 ‘돌하르방’처럼 생긴 돌기둥을 세웠다. 마을 주민은 이 돌기둥이 마을 난의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수호신이라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을 한 마리의 동물로 비유하였다. 동쪽은 머리, 서쪽은 꼬리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꼬리 부분이 약해 이대로 두었다가는 마을에 재앙이 있을 수 있다고 하였다.

 

옛사람들은 네 방위 가운데 한 곳이 허하고 약하면 그곳으로 잡귀, 액운, 전염병 등이 들어와 마을 사람들과 가축에게 해를 끼친다고 여겼다. 마을 주민들인 액을 예방하여 마을을 지키고 자손들의 입명(立命)과 번영(繁榮)을 위하고자 마을 서쪽에 남북으로 4기의 돌탑을 쌓기로 하였다. 남쪽부터 70m의 간격을 두고 나머지 3기는 약 30m의 거리를 두고 쌓았다. 돌탑 안에는 방액을 위해 가마솥을 깨트린 조각을 넣었다. 

 

무릉1리 방사탑 1호(민속자료 제8-12호)는 앞논물의 농로 왼쪽 밭의 가장자리에 밭에서 나온 잡석을 이용하여 쌓았다. 아래가 넓고 위가 좁은 원뿔형의 탑으로 상부에는 석상을 세웠다.

 

무릉1리 탑 2호(민속자료 제8-13호)는 마을에서 바다 쪽으로 이어진 농로와는 달리 앞논물 앞을 가로질러 옆 마을로 이어진 농로가 나 있는데 세 개의 탑은 그 길을 따라 있다. 무릉리 방사탑 2호로 명명된 탑은 1호와 ‘앞논물’의 간격만큼 떨어진 밭담 사이에 자리한다. 큰 덩어리의 잡석을 중심으로 쌓아 올렸는데 밑이 넓고 위가 좁은 원뿔형이다. 상부에는 석상을 세웠다.

 

무릉1리 탑 3호(민속자료 제8-14호)는 앞논물 앞을 가로질러 옆 마을로 이어진 농로 오른쪽의 농경지 가장자리에 있으며 2호와 30m 정도 떨어져 있다. 잡석을 주로 쌓았으며 윗부분은 잔돌로 봉긋하게 마감한 원뿔형의 탑이며, 상부에는 석상을 올렸다.

 

무릉1리 탑 4호(민속자료 제8-15호)는 앞논물 앞을 가로질러 옆 마을로 이어진 농로를 따라가다가 마을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또 다른 도로를 만나고, 이를 가로질러 조금 높은 동산으로 이어지는 길 오른쪽 밭의 가운데 길가에 있다. 밭에서 모은 잡석을 주로 쌓았으며, 밑부분은 큰 덩어리의 잡석으로 되어 있다. 윗부분은 잔돌로 봉긋하게 마감한 원뿔형 탑이며, 상부에는 석상을 올렸다. 

 

서귀포시 대정읍을 대전 고을이라 부른다. 이 고을은 보성리, 인성리, 안성리를 일컫는 것으로  제주 섬의 서남부에 있다. 또한 대정고을 지역은 산방촌 중간에 위차하여 남쪽으로 모슬봉, 송악산, 단산을 바라보고, 북쪽으로 당산봉을 끼고 있어 넓은 평원을 이루고 대정읍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 마을은 보성리와 인성리, 안성리로 나누어져 있으며 동쪽으로 안덕면과 경계하고 있는 대정읍 중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기생화산들에 둘러있는 평원마을이다.

 

▲ 무릉리 방사탑 1호  

 

 

 

이 지대의 토질은  기생화산에 연유한 암석지와 야생초의 관목이 자라는  토양이 얕은 임지들이 들어 있으나 대부분은 용암류지대로 흑색과 농갈색의 미사식양질토의 배수 양호한 땅들이다.  마을의 동쪽에는 구멍물이라는 늪지대가 있고, 비가 내리면 이 지대에 몰려온 물이 솟구쳐 올라 단산 서쪽의 알벵뒤 쪽으로 빠져나간다. 이 지대는 최근 관개 사업이 완성되기까지 우기(雨期)에 상습적으로 밭작물의 습해를 받던 지역이기도 했다. 이 지역의 앞바다에는 한국 최남단의 섬 마라도를 비롯하여 가파도, 형제섬 등이 초개처럼 벌려서 있다.

 

인성리에는 4기의 방사탑이 있으며 그중 2기(민속자료 제8-16~17호)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2기는 비지정 되어 있다. 인성리 안길을 이용하여 단산으로 가다 보면 ‘개죽은 못’ 근처에 넓고 편평한 농경지가 나온다. 이를 마을 사람들은 ‘알벵뒤’라고 부른다. 단산과 모슬봉을 양쪽에 두고 중앙의 평탄한 곳에 자리 잡은 인성리는 농경지가 발달해 이웃 마을인 모슬포에까지 농경지가 이어진다. 알벵뒤 각각의 농경지를 잇는 농로 가까운 곳에 세워져 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안으로 들어오려는 악하고 나쁜 것을 막아 주는 수호신으로 여겨 이를 ‘거욱대’라고 부른다. 방사탑이라고 이름 붙어진 이 돌탑을 이곳 주민들은 거욱대라고 부른다. 

 

이곳에 거욱대를 세우게 된 원인 1900년(광무 4) 당시 이유를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하고, 말과 소들도 질병에 걸려 죽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발생한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정시를 찾아가 여쭤보니 그는 ‘인성리는 마을의 남방인 모슬봉과 단산 사이가 너무 넓고 지대가 낮아 풍수지리적으로 허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정시는 이곳에 거욱대를 세워 방비할 것을 제안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알벵뒤에 거욱대 4기를 세웠다. 이후 마을은 안정을 찾았고, 소와 말의 질병도 없어지게 되었다.

 

인성리 1호 방사탑은 4기 중에 가장 왼쪽인 단산에 가까운 곳에 있다. 이 거욱대는 위치만 알려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어 전승되어 오다가 마을 사람들에 의해 보수되어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비지정 되어 있으며 마을 사람들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 이 거욱대로 농경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잡석을 밑지름이 넓고 윗지름이 좁게 쌓아 올려 전체적으로 원추형을 이루고 있다. 상부는 사람 모습의 두부와 몸통으로 형상화하여 돌하르방처럼 깎은 석상(石像)을 남쪽을 향해 세워 놓았다.

 

인성리 2호 방사탑(민속자료 제8-16호)은 거욱대 가운데 왼쪽에서 두 번째 자리하고 있다. 인가가 밀집한 마을 안길을 벗어나 모슬포 방향으로 접어들면 오른쪽에 있다. 밭을 정리하면서 나온 잡석을 주로 쌓았으나 아래쪽일수록 굵은 돌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전체적으로 밑이 넓고 위가 좁은 원추형이다. 거욱대는 높이가 약 2.3m 정도로 사람 키보다 높으며 아래가 넓고 위로 오를 수로 좁다. 상부는 약간 동그랗게 정리한 다음 사람 모습의 두부와 몸통으로 형상화한 길쭉한 자연석을 올려놓았다. 상부의 자연석이 남쪽을 향하도록 하여 마을로 들어오는 액운을 막아 주도록 기원한 마을 사람들의 바람을 반영하고 있다.

 

인성리 3호 방사탑(민속자료 제8-17호)은 인가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모슬봉 방향인 왼쪽 농경지의 밭담을 경계로 하여 농로로 이어진 밭 가운데에 있다. 인성리 방사탑 2호라고 명명되었으나 일반적으로 ‘거욱대’라고 한다. 밭을 정리하면서 나온 잡석을 주로 쌓아 올렸으며, 밑지름이 넓고 윗지름이 좁은 원추형을 이루고 있다. 상부는 편평하게 한 다음 사람 모습의 두부와 몸통으로 형상화한 길쭉한 자연석을 올려놓았다.

인성리 4호 방사탑(비지정)은 인성리의 거욱대 가운데 가장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다. 즉 모슬봉에 가까운 곳에 있으며 있어 모슬포로 이어지는 도로에 인접해 있다. 방풍을 위해 높게 쌓은 밭담을 넘어가야만 접근이 가능하다. 거욱대와 농경지 사이로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깊고 넓게 만들어진 그 수로를 경계로 하여 농경지 바깥쪽에 있다. 주변에는 산담과 같이 거욱대를 보호하기 위해 장방형의 담이 둘러쳐져 있다. 이 거욱대는 오래전에 훼손되어 방치되어 오던 것을 마을 사람들이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다른 거욱대에 사용되었던 잡석에 비해 석공에 의해 다듬어진 돌을 석축 쌓듯 쌓았다.

 

체적으로 원통형이 되도록 밑지름이 넓고 윗지름이 좁다. 상부는 편평하게 한 다음, 사람의 모습을 두부와 몸통으로 형상화하여 돌하르방처럼 깎은 석상을 올려놓았다. 이 거욱대에 사용된 돌은 축성에 사용되었던 돌을 이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전하는 이야기에 6·25전쟁이 발발하자 모슬포에 군인들이 들어와 막사를 짓기 위해 거욱대 2개를 헐어서 사용하였다고 한다. 당시 마을에는 훈련장으로 이용하면서 군인들이 임자 없는 거욱대의 돌 같은 것을 허문 것이 많았다. 2기만 남아 전해져 오다가 1961년에 거욱대 2기를 복원하였다고 한다. 이로써 마을에는 예전처럼 거욱대 4기가 남방의 허한 곳을 방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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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2/17 [15:36]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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