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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된 통비법은 ‘통신비밀 보호 못할 통신비밀보호법’

국회는 통신사실확인자료 보호 강화와 정보기관 감청 통제 나서야

  • 기사입력 2020.01.01 19:46
  • 기자명 은동기 기자

지난 12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이 개정됐으나 정작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단한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12월 17일 대안신당 천정배 의원이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헌법불합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민변 디지털정보위원회,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등 5개 시민단체들은 지난 12월 30일 공동논평을 내고 지난 1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2018년 실시간 위치추적과 기지국 수사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시민사회와 국가인권위가 비판한 정부안 그대로였다고 지적했다. 

국회는 27일 본회의를 열어 실시 통신제한조치(감청)에 대해 제한 기간을 부과하고 민감한 정보는 극히 예외적으로만 허용하는 내용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개정 통비법은 통신제한조치 기간을 연장할 경우, 총 연장기간을 신설, 기존 무제한에서 1년으로 하고, 내란죄·외환죄 등 국가안보 관련 범죄의 경우 3년 이내로 규정했다.

또 실시간 위치정보 추적자료나 기지국 수사에 대한 자료와 같은 민감한 정보는 다른 방법으로는 범죄 실행을 저지하기 어렵거나 범인의 발견·확보, 증거의 수집·보전이 어려운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하도록 했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국회가 수 년 만에 통비법을 개정하면서 헌법불합치 결정과 국가인권위원회 개선 권고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데 대하여 유감을 표했다. 

개정 통비법은 헌법불합치 결정을 쏙 빼놓은 반쪽짜리 통비법

이번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에 대해 단체들은 ‘정보기관 감청 통제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쏙 빼놓은 반쪽짜리’라고 지적하고 “국회가 정보기관의 위헌적인 수사관행을 통제할 장치 마련에 사실상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실망을 넘어 통탄스럽다”고 개탄했다.

단체들은 실시간 위치추적과 기지국 수사가 2018년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게 된 것은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통신 수사 때문이었다고 지적하고, 2011년 희망버스 활동, 결국 무죄를 받은 2013년 철도파업을 무리하게 탄압하며 활동가들과 노동조합 지도부는 물론 그 가족들의 휴대전화 위치까지 수 개월간 실시간으로 추적한 사례를 들었다. 

단체들은 헌재의 결정문을 인용, 국가인권위원회의 개선 권고는 물론 통신 메타 데이터에 대한 보호를 강화한 최근 국제규범과도 일치하는데 반해 통비법 개정안은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제도에 대하여 아무런 개선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수사기관이 통신사로부터 실시간 위치정보 추적 자료와 기지국 수사 자료를 제공받는 보충성 요건을 강화한다고 하면서도 ‘전기통신을 수단으로 하는 범죄’를 보충성에서 모두 제외했다고 지적했다. 

단체들은 이런 미비점을 들어 휴대전화 통화나 인터넷 사용이 일상이 된 상황에서 노동조합 파업이나 지지 활동, 정당 집회가 또다시 문제가 되었을 때 수사기관이 시민들의 휴대전화와 위치정보를 또다시 무차별 가져가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번 통비법 개정에서 정보기관 감청 통제에 대한 내용이 쏙 빠졌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국가정보원 패킷감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은 실시간 위치추적, 기지국 수사와 마찬가지로 헌재가 2020년 3월 31일 똑같은 입법 시한을 지정했는데도 법무부와 국정원은 헌법불합치 결정을 모르쇠하는 것은 ‘감청 통제만큼은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정보수사기관의 아집이라고 비판했다.

단체들은 우리나라의 현행 감청 제도가 법원 등 ‘객관적이고 사후적인 통제수단’을 전혀 규정하지 않고 있는데 비해 미국, 독일, 일본 등 주요 국가의 경우, 감청은 법원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 감청 집행 후에도 감청자료 원본을 법원에 보고하거나 제출하도록 사후통제절차를 마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어 “정보기관의 도·감청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통비법의 존재 이유에 대해 국회가 진지하게 재검토하고 즉각 그 개선에 나서야 할 시점인데도 국회는 정보수사기관의 무분별한 통신수사와 불법도청에 무력하기 짝이 없다”면서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모처럼 통신사실확인자료의 개선 기회가 생겼음에도 수사기관의 편의로 점철된 개정안에 손을 들어주었을 뿐 아니라 기무사 휴대전화 도청이라는 놀라운 사건 앞에서도 최소한의 진상 규명에도 나서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 

단체들은 ▲국회는 이미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국정원의 무분별한 패킷감청과 사실로 드러난 기무사의 불법 휴대전화 감청의 전체적인 실태를 정확히 파악할 것, ▲반쪽짜리 통비법 개정을 넘어, 제대로 위치정보와 통신사실확인자료의 보호를 강화하고 정보기관 감청을 통제할 수 있는 통비법 개정에 즉각 나설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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