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선과(善人善果) 악인악과(惡人惡果)를 기다리는 ‘승탑’

정진해 문화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20/01/16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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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선과(善人善果) 악인악과(惡人惡果)를 기다리는 ‘승탑’
 
정진해 문화재전문위원   기사입력  2020/01/16 [22:18]

문화재 : 남해 용문사 부도군(경남유형문화재 제425호)
소재지 :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용문사

 

남해 용문사 부도군 전경

 

죽음은 살아있는 생명체에는 피할 수 없는 절대 평등의 이치이지만, 인간이 갖는 가장 근본적인 고민 중 하나이다. 불교에서 죽음에 대한 고민은 현실로서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삶에도 번민하지 않고 죽음에도 번민하지 않는 생명을 추구한다. 즉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것은 불교가 기본적으로 ‘윤회’ 사상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에서 죽음에 대한 정의를 ‘수명은 체온과 의식으로 이루어지므로 체온과 의식이 육체로부터 사라질 때 수명이 파괴되며 이를 죽음으로 칭한다.’ 고 했다. 이것이 잡아함경(雜阿含經)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최상의 자세는 당연히 윤회로부터의 해방이다. 모든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천상이나 인간 세상에 태어나 올바른 삶을 꾸려야 한다. 선인선과(善人善果) 악인악과(惡人惡果), 즉 선의 종자를 많이 심으면 다음 세상에서 좋은 곳에 태어나고, 악의 종자를 많이 심으면 다음 세상에서 고통을 받게 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 죽음은 삶의 연장이자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불교는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다(生死不二)’라고 강조한다. 해탈하지 않는 한 중생은 끝없이 윤회한다. 불교 상장의례는 해탈을 위한 방편이다. 죽은 사람에게 번뇌와 업장을 소멸하고 해탈해 윤회고를 벗어나 불생불멸 하기를 바라는 의례이자 망자를 위한 법회이다. 죽은 사람뿐만 아니라 의례에 동참한 산 사람도 해탈·열반에 이르기를 염원하는 의식이다. 이 같은 이유로 불교 상장의례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뭇 중생의 관조와 깨달음을 촉구하는 법문으로 이어진다.


불교의 장례는 ‘다비(茶毘)’이다. 다비로 장례를 마치면 유골을 수습하고 무덤을 조성하였다. 이를 우리는 부도 또는 승탑이라 불러왔다. 승탑은 승려의 묘탑으로 불교가 전래된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가진 불교 조각과 화려한 장식문양이 주를 이루고 있다.


승탑의 시작은 통일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도를 만들어 스님의 사리를 봉안하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신라 말에 도입된 선종 불교의 발전과 관련이 깊다. 선종 불교는 법을 전해주고 이어받은 스승과 제자, 또 다음 세대의 스승과 제자의 활동에 의하여 법맥이 성립된다. 선종이 유행하면서부터 조사 또는 스승의 역할이 중요시되었고, 그들의 자리를 승탑이라는 무덤을 만들어 봉안하고 섬기게 되었다. 승탑은 승려의 사리를 봉안한 무덤으로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탑보다는 규모가 작다. 탑은 부처의 상징이므로 경내의 중앙부에 세우는 것이 원칙이라면, 승탑은 격이 낮은 사찰의 어귀나 뒤편 등 조용한 곳에 모아 세우는데 이곳을 부도전 또는 부도밭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에 승탑이 처음 세워진 곳은 선문 9산의 각 선문에서 각기 사자 상승 함으로써 각 산문에는 개산조와 개산인의 순서로 일종파의 계보가 이루어진다. 이에 각 선문의 제자들은 소속 종파가 확정되면서 그들의 조사를 숭봉하여 보통 때 그가 설법한 내용이나 교훈 등을 어록으로 남기고, 입적 뒤에는 장골 처를 남기려는 뜻에서 조성된 것이 석조승탑이다. 승탑은 대체로 선종이 처음 들어온 통일신라 말기부터 널리 세워지게 되었고 고려 시대 이후 선종의 발달과 함께 크게 유행한 것으로 보면 된다. 이러한 석조승탑은 대게 9세기 중반 이후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가장 오래된 승탑은 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양양 진전사지의 도의 선사 승탑(보물 제439호)과 흥법사 염거화상탑(국보 제104호)을 통해 승탑 양식의 계통을 추정한다.


도의선사 승탑은 기단부가 신라 석탑의 기단부를 모방하였고, 그 위의 탑신부는 팔각형으로 만들었다. 통일 신라 말부터 고려 시대 초에 걸쳐 승탑은 팔각원당형을 기본으로 하여 만들어지게 되었다. 2단의 기단은 면마다 우주와 중앙에 탱주를 새기고, 그 위로 탑신을 괴기 위한 8각의 돌을 두었고 옆면에는 연꽃을 조각하여 둘렀다. 8각의 기와집 모양을 한 탑신은 몸돌의 한쪽 면에만 문짝 모양의 조각을 하였을 뿐 다른 장식은 하지 않았다. 지붕돌은 밑면이 거의 수평을 이루고 있으며, 낙수면은 서서히 내려오다 끝에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위로 살짝 들려 있다.


고려 시대에는 승답의 양식이 다양해지고 팔각원당형을 기본으로 하여 다른 형태의 승탑이 만들어진다. 전체가 사각으로 된 지광국사현묘탑과 기단이나 지붕돌은 팔각이지만, 몸돌을 공 모양의 원형인 정토사홍법국사실상탑, 그릇을 거꾸로 엎어놓은 듯한 모양의 태화사지 12지상 승탑 등이 그 대표적이다. 조선 시대에 와서는 석종형 승탑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 대표적인 승탑은 신륵사의 보제존자 석종(보물 제228호)으로 기단은 돌을 쌓아 높게 만들고 탑신은 아무런 꾸임이 없고,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으로 불꽃무늬를 새긴 큼직한 보주가 솟아 있다.


승탑에 새긴 다양한 문양 중에 연꽃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이것은 극락에 가서 연꽃 속에 다시 태어나려는 극락왕생의 염원을 담은 의미가 있다. 또한 사자가 승탑의 기단석에 조각된 모습은 수많은 번뇌와 망상인 사악한 무리에게 빈틈을 보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악귀를 물리치는 용감한 수호신이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시작된 가릉빈가는 영원히 망자를 기리도록 하려는 뜻이다. 생사의 순환을 계속하면서 부처님이나 고승대덕을 찬양하는 역할을 하는 음악신을 대신하여 영원한 음악을 만든다. 이 밖에도 신장상, 비천상, 물고기, 두꺼비, 거북 등을 조각하여 죽은 사람에게 번뇌와 업장을 소멸하고 해탈해 윤회고를 벗어나 불생불멸 하기를 바라는 의례를 담고 있다.

 

 석종형 승탑


용문사에는 조선 시대의 당호를 새긴 석종형 승탑 9기가 잘 보존되어 있어 이곳을 찾았다. 이동면 호구산(해발 560m)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용문사는 남해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802년 신라 애장왕 3년에 창건된 절로서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이 절의 승려들이 승병으로 참여해 왜군과 싸웠는데, 이때 사찰이 전소되었다. 1661년 현종 2년에 중창하고, 1666년에 대웅전(보물 제 호)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사찰이다.


승탑은 일주문을 지나 천왕각에 이르기 전 오른쪽 비탈 위 큰 암반 위에 호은당대사비가 있고 앞 계단을 따라 오르면 부도전에 이른다. 조선 중기 이후에 마련된 9기의 석종형 승탑이 나란히 있다.


승탑 1, 2, 3은 몸돌 1매와 받침석 1매로 구성된 석종형 승탑이다. 몸돌은 종 모양이며 밑으로 가면서 좁아진다. 받침석 둘레에는 복련을 조각되었으나 손상이 심해 확인하기가 어렵다. 특히 3의 승탑 몸돌에는 ‘洗淡堂一行大師(세담당일행대사)’라는 스님의 당호가 새겨져 있다. 이 승탑 몸돌 윗부분과 아랫부분에 새긴 연화문이 선명하게 보이고 상륜은 연꽃 봉오리가 약간 벌어진 모양을 하고 있다.

 

원기둥 형 승탑


승탑 4는 용문사 승탑군 중에서 가장 크고 기단석, 몸돌, 지붕돌이 각각 1장씩으로 이루어져 있다. 몸돌은 원기둥 모양으로 가운데가 불룩하고, 지붕돌은 사각형이다. 승탑 5는 기단석, 몸돌, 지붕돌은 각각 1장씩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석은 윗부분이 둥글고 아랫부분이 네모로 각이 져 있다. 몸돌은 육각형으로 가운데가 불룩하고 윗부분과 아랫부분에 무늬를 새겨 넣었다. 지붕돌은 편평한 사각형이고 가운데에 복발이 올려져 있다. 승탑 6·7은 몸돌과 기단석이 각각 1장씩으로 이루어진 석종형 승탑이다. 몸돌은 밑으로 가면서 좁아지고 상륜은 보주처럼 생겼다.

 

 6각 탑신 승탑


승탑 8은 승탑 중에 특이하게도 6각 탑신 승탑이 있다. 커다란 자연석 암반 위에 놓인 승탑을 암반을 지대석을 대신하고 그 위에 받침돌을 올리고 6각의 몸돌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려놓은 총 3매의 석재로 조성하였다. 받침석은 아래는 4각의 형태를 띠고 몸돌을 받치는 부분은 원형으로 다듬어 각각 문양을 새겼다. 사각형의 받침석 네 모서리에는 동물의 머리를 새겼고 위의 원형 부분에는 복련을 돌려새겼다. 몸돌의 아랫부분 6면에는 각기 다른 표정을 한 사람의 얼굴을 새겼다. 몸돌은 배흘림 형태로 가운데가 볼록한 종형이며 상부에는 주의를 면마다 5개씩 새겼다. 지붕돌은 평면 사각형으로 윗면 가운데에 둥근 복발이 얹혀있고 복발에는 음각으로 파문을 새겼다. 이 승탑은 몸돌에 명문이 새겨져 있지 않고 별도로 옆에 표석을 새워 ‘解塵堂天海大師族錄碑(해진당천해대사족록비)’라 당호를 새겼으며, 오랜 세월 비바람에 많이 마모된 상태이다.


승탑 9는 기단석, 몸돌이 각각 1장씩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석은 자연석이다. 몸돌은 밑으로 가면서 좁아지고 윗부분에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상륜은 보주처럼 생겼다. 각 승탑은 잘 보존되어 있고 당호(堂號)를 새기는 표현기법으로 보아 17~18세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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