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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姓氏)로 보는 다문화사회

  • 기사입력 2020.01.31 10:35
  • 기자명 JG사회복지연구소 대표 이 진경

한 해의 최초 명절(名節)이라는 의미를 담은 설이 지났다. 설엔 단일민족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한 한국의 성씨(姓氏)별 문중들이 모여 차례와 떡국, 덕담으로 혈족 관계를 이어간다. 그러나 세대 간 ‘가치관 충돌’로 인한 갈등을 겪기도 하는데 이는 디지털 환경, 다양한 정보수집과 정보 접근성의 부족으로 인한 수용성에서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외국으로 이주한 가족, 친지는 증가하고, 통계청에서는 2019년 출산율 0.98명, 인구절벽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하여 경제ㆍ사회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현실을 실감케 했다. 이러한 한국 사회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작년 기준 240만 명을 넘었다. 귀화자들이 늘면서 본인 이름 중 하나의 글자를 성씨로 깡 · 곰 · 굳 · 귤 · 길 · 떵 · 란 · 레 · 벌 · 에 ·  짱 · 쩐 · 팜 · 흰씨 등으로 등록 하고 있다. 아니면 자신의 외국 성을 우리말로 두타 · 무크라니 · 뮬러 · 서촌 · 스룬 · 알렉산더클라이브대한 · 잉드린카 · 즈엉 · 코이 · 타블로 · 파피오나 · 프라이인드로스테쭈젠덴 · 하질린씨 등 낯설지만 한국사회의 성씨가 되었다. 위승용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는 “어떤 성씨로 살지는 개인의 인격권과 관련된 결정이기 때문에 판사는 보통 글자 수를 제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본관을 출신 국가로 삼기도 할 때는 독일 이씨(시조 이참), 몽골 김씨, 태국 태씨, 청해 이씨(여진계), 원산 박씨(시조 박연), 병영 남씨(시조 하멜)로 시조가 되었다. 또한 지역 명일 경우 서울 강씨(미국 아프리카계), 길림 사씨, 대마도 윤씨, 산동 우씨, 성진 즙씨(시조 일본계), 영도 하씨(시조 하일), 영등포 김씨, 용인 라씨(시조, 미국 라틀리프), 청양 오씨(시조, 케냐 에루페) 등이 있다. 1985년에서 2000년 사이 11개 늘었던 본관 성씨는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 총 조사에서 3만6,744개로 증가하였으며, 출생 계통 표시의 ‘성(姓)’은 2000년 728개에서 2018년 7천769개로 증가했다.

한반도의 역사적 기록에서 귀화자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인도 아유타의 공주는 가야의 김수로 대왕과 국제결혼 후 남편 성을 따르지 않고 허황옥으로, 둘째 아들이 물려받아 김해 허씨가 되었다. 13세기 베트남 리왕조의 왕자 르롱뜨엉은 고려로 망명한 이용상으로 몽골군의 침입까지 막아내고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중국 출신 아버지를 둔 노비출신의 장영실은 조선의 인재등용 기회로 과학기술의 자양분이 됐다.

삼국시대부터 귀화자들에 대한 다문화 수용 기록은 고려시대에도 이어져 개국 공신들과 지방 토호세력의 통합을 위해 성씨를 하사했고 귀화자를 대거 포용한 정책을 펼쳤다. 조선시대는 40%의 백성들이 성이 없는 노비, 천민 층이었으나 갑오경장을 계기로 신분. 계급 타파에 양반임을 주장하기 위한 족보를 사고파는 행위가 성행했다. 이러한 성씨, 본관은 1909년 일제가 식민통치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의 민적법 시행으로 성이 없던 누구나 원하는 성씨를 갖게 됐다.

위키백과사전은 “대부분의 토착민인 한국인들이 7세기 이후부터 다른 이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성씨를 빌려다 썼고 족보를 제작할 때 중국의 성씨를 소급하여 적용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가 각자 존재의 근원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아야 할 이유이다.

외국인들은 관공서나 은행, 병원 등에서 자신의 이름을 쓰거나 불러주면 한글 이름을 다시 묻는다고들 한다. 다만 출신국이 달라도 지역을 본관, 같은 성씨로 쓸 수 있다는 점은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으므로 외국인 이름 중 하나 또는 외국 성을 그대로 성씨로 등록하는 것이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것이라고 본다.

급변의 시대임에도 우리 국민의 높지 않은 다문화 수용성에 관심을 두고 정부는 국민의 다문화이해 및 수용성 향상을 위해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가문의 ‘뿌리’라는 의미에 귀화자들이 있었음을 생각하며 이색적인 성씨와 더불어 존재의 근원을 서로 존중할 때이다. 그러할 때에 비로소 개인적 삶의 가치와 자존감을 높일 수 있으니 다문화사회의 다양성이 한국사회에 귀중한 자원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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