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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시민단체에 회계 부정의혹이 없는 이유는

주요 시민단체, 외부 회계감사 일반화…투명성 인증받아야 모금 원활

  • 기사입력 2020.05.21 07:16
  • 기자명 이정재 기자

독일에서 활동하는 한국 관련 시민단체인 '코리아페어반트'(Korea Verbant) 측 관계자들은 최근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나눔의 집의 회계 부정 의혹을 바라보는 마음이 무겁다.

 지난해 8월 베를린 지하철에서 내린 소녀상과 코리아페어반트 회원들 © 베를린=연합뉴스

코리아페어반트는 독일에서 전쟁 피해 여성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정의연과 오랜 인연을 맺어왔다.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코리아페어반트의 초청으로 독일을 찾아 세계 각지에서 분쟁으로 피해를 본 여성들과 연대 활동을 하기도 했다.

코리아페어반트가 추진하는 독일에서의 소녀상 설립 등 향후 활동에서 정의연의 지원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 때문에 코리아페어반트는 이번 사태 자체에 대해 안타까움을 보내면서 향후 협력의 여지가 줄어들 가능성을 우려한다.

코리아페어반트 측은 회계 부정 의혹 사태에 대해 한국에서 비영리단체의 투명한 회계 처리 환경이 조성되지 못한 측면이 작용하고 있다는 시선을 보낸다.

한국의 시민단체와 달리 독일의 주요 시민단체들은 공신력 있는 외부 기관의 회계 감사를 받는다. 세무당국에 별도로 신고하는 것은 물론이다.

코리아페어반트도 마찬가지다. 국제투명성기구(TI) 독일지부에서 운영하는 '투명한 시민사회 이니셔티브'(ITZ)라는 기구의 회원이다.

2010년에 출범한 이 기구는 비영리단체가 대중에게 제시해야 할 회계 관련 10가지 기본 사항을 제출받아 검증하고 이를 공개하도록 한다.

비영리단체의 투명성을 높여 대중과 기부자들에게 신뢰감을 높여주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비영리 기구다.

세무당국이 비영리단체의 회계를 감시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려는 목적도 있다.

10가지 기본 사항은 정관과 주요 의사 결정자 이름, 자금 출처, 자금 사용처, 인사 구조, 활동 내용, 제3자와의 제휴, 연간 지급액이 연간 예산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사람의 이름 등이다.

20일 오후 정의기억연대 부실회계, 안성 쉼터 고가 매입 의혹과 관련, 검찰의 압수수색이 진행중인 서울 마포구 정의기억연대 사무실에서 츄ㅣ재진이 취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모금의 목적 역시 정확히 기재해야 한다.

ITZ 스스로 이 기준에 맞춰 낸 내부 회계 보고서는 2018년도에만 67페이지 분량에 달한다.

ITZ의 전체 회원 단체는 1천307개에 달한다.

ITZ에 가입해 제시된 기준대로 서류를 만들고 이를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하면 기부자들과 대중에게 당당해지는 셈이다.

'독일사회문제연구센터'(DZI)는 ITZ보다 오래전부터 비영리단체의 회계 감시 역할을 해왔다.

자금 사용처 등 비용구조뿐만 아니라 기금 지원 사업의 효과 등을 분석한다.

비영리단체의 관리와 홍보 비용이 모금액의 30%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DZI는 회계 감시를 통해 모범단체 인증을 하고 있다. 200여 개 비영리단체가 인증을 받았다.

DZI의 인증을 받게 되면 모금액이 상승한다. 많은 사람이 기부에 앞서 자선단체의 신뢰성을 저울질하고 있는 셈이다.

'피네오'라는 컨설팅·회계 기업도 비영리단체의 회계 감사 활동을 하고 있다. 2010년 이후 1천 개 이상의 비영리단체를 감사했는데, 이 가운데 4분의 1 정도의 기관에만 투명성 인증을 해줄 정도로 까다로운 회계 요건을 적용하고 있다.

물론 독일에서 모든 비영리단체가 외부 회계 감사를 받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비영리단체 수는 63만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전국적으로 모금 활동을 하는 단체는 3천여개 정도로 알려져 있다.

주요 시민단체들이 외부 회계 감사를 받는 것은 기부금 모금이 점점 수월치 않은 이유도 있다.

독일에서 2018년 기부자 수는 2005년과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회계와 활동의 투명성을 통해 기부자에게 확신을 줄 필요성이 점점 커진 것이다.

외부에서 회계 감시를 받기 전에 비영리단체는 세무당국에도 허투루 세무 신고를 할 수 없다.

비영리단체는 세무당국에 서류 제출 시 세무사를 고용해 검증을 받아야 한다.

더구나 3년에 한 번씩 세무신고 내역과 수익사업 여부 등에 대해 세무당국으로부터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를 통해 비영리단체의 인가 유지 여부가 결정된다.

코리아페어반트의 한정화 대표는 통화에서 "독일에서 시민단체의 회계 투명성은 제도와 환경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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