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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둥-태안' 해상 밀입국로 열렸는데…안이했던 군·해경

군 3중 감시 뚫고 보트로 제집 드나들듯…한 달 새 중국인 13명 들어와

  • 기사입력 2020.06.05 17:15
  • 기자명 김진태 기자

 군의 허술한 감시망과 해경의 안이한 판단을 파고든 '중국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충남 태안' 밀입국 루트가 드러났다.

▲ 4일 오전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도 방파제에서 발견된 흰색 고무보트(왼쪽)와 지난 4월 20일 소원면 의항리 해변에서 발견된 검은색 고무보트  

중국인들이 소형 보트에 몸을 싣고 대담하게 우리나라 서해를 옆집 드나들듯 해 왔는데도 주민 신고가 있기 전까지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5일 군과 해경의 설명을 종합하면 지난 4월 18일 오후 5시께 중국인 5명이 고무보트를 타고 산둥성 웨이하이항을 출발해 17시간 만인 이튿날 오전 10시께 태안 일리포 해안에 도착했다.

지난달 20일 오후 9시께에는 또 다른 중국인 8명이 웨이하이항에서 1.5t급 레저 보트에 몸을 싣고 14시간여 항해를 해 이튿날 오전 11시 23분께 태안 의항 방파제 갯바위에 하선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중국인 13명이 이 통로를 이용해 밀입국한 것이다.

이 과정에는 전문적인 중국 밀입국 조직이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황준현 중부지방해양경찰청 수사정보과장은 "두 건 모두 중국에서 중국인 모집책이 채팅앱인 '위챗'을 통해 밀입국 희망자를 모집했다"며 "지난달 밀입국의 경우 개인당 1만위안(한화 172만원), 4월 밀입국은 1만5천위안(한화 260만원)을 모집책에게 송금했고, 모집책이 그 자금으로 보트와 유류 등을 구매한 뒤 밀항 시기에 맞춰 집결해 한국으로 밀입국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 중 검거된 밀입국자들은 모두 과거에 한국에서 체류했다가 불법체류 등의 이유로 강제 퇴거된 전력이 있다"며 "이들은 중국에서 생활고로 인해 불법 취업을 목적으로 밀입국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4일 중국제 엔진의 고무보트가 태안 마도 방파제에서 발견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웨이하이-태안' 서해 뱃길 항로가 우리 군과 해경의 허술한 감시망을 비웃듯, 그들에겐 '별 거침 없는' 공식 밀입국 통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1차로 군에 책임이 있다. 이 지역 경계를 맡은 군은 열상감시장비(TOD)·해안 레이더·해안복합카메라 등 첨단 감시체계를 갖추고 대공 용의나 밀입국 선박을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나, 안방 문을 그대로 열어줬다.

군은 보트로 추정할 수 있는 식별 가능한 상태의 영상 표적을 수차례 확인했으나, 이를 밀입국 보트로 판단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합참 관계자는 "(두 밀입국 보트 모두) 레이더 운용병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통상적인 선박으로 보고 특이사항이 없다고 봤는데, 면밀히 감시하지 못한 건 군의 과오"라고 말했다.

4월 밀입국 당시에는 TOD 영상 녹화 기능이 고장까지 나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해당 TOD 녹화 체계는 밀입국 보트가 찍혔을 것으로 추정되는 4월 19일 오전 5시 30분께부터 약 다섯시간 동안 먹통이었다.TOD 고장에 따른 녹화 실패는 유례가 없는 상황이라고 군은 전했다.

정체불명의 수상한 보트가 며칠 동안 해안가에 있었는데도 번번이 주민 신고를 받고서야 확인한 점도 문제다.

장병들이 순찰하는 방식으로 해안 경계 작전을 사실상 매일 진행하고 있으나, 이번 밀입국 보트들이 국내에 들어온 지 수일이 지날 때까지 몰랐기 때문이다.

군 관계자는 "해안지역이 워낙 넓어 제한된 장비와 인원으로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밀입국 보트가 발견된) 의항 인근은 주민 신고 등 여러 장치로 보완해 왔으나, 이번에 다시 분석해 볼 것"이라고 밝혔다.

해경의 안이했던 판단도 도마 위에 올랐다.해경은 4월 밀입국 보트를 양식장 수산물 절도범들 것으로 추정하며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지난달 밀입국 레저 보트 발견 이후 이보다 앞서 4월에 발견된 보트에 대해서도 밀입국용 아니냐는 의혹이 계속 제기됐었다.

그러나 해당 보트를 유실물로 취급하며 파출소 등에 '보트를 찾아가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어 놓기도 했다. 해경은 그러나 4월 보트 밀입국 용의자 2명을 붙잡은 후에야 밀입국 사건으로 전환했다.

중부지방해양경찰청은 이날 4월 밀입국자 검거와 관련한 언론 브리핑을 열어 "서해안 특성상 표류 보트가 많고, 양식장 절도에 이용되는 보트가 많아 그런 것"이라며 "5월 레저 보트 밀입국 사건을 수사하던 중 (4월 보트) 용의자가 붙잡히면서 수사를 전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보트가 해안에 정박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뒤에도 늑장 대응을 한 사실도 드러났다.

▲ 태안 정체불명 고무보트서 발견된 각종 물품   

주민이 4월 20일 오후 2시 45분께 해경에 "정체불명의 보트가 있다"는 취지의 신고를 했는데, 해경은 관련 사실을 오후 4시 30분께 군 당국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해안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선박을 발견하면 해경은 합동 심문 등을 하기 위해 경찰, 합참, 국정원 등에 곧바로 알리게 돼 있다.

해경은 4월 보트 3명과 5월 보트 4명 등 아직 잡지 못한 밀입국 용의자 행방을 쫓는 한편 4일 발견된 고무보트 용도와 전문적인 밀입국 조직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 확대 등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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