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안재찬의 시마당> 밀경(密耕)

  • 기사입력 2020.07.04 17:15
  • 기자명 안재찬
  안재찬 시인

                                                      밀경(密耕)

                                                                                     김시중

 

세월이 내 얼굴을

밭으로 착각하고,

버섯농사를 짓는다

 

지난 해엔 없던 검버섯이,

내 얼굴 여기 저기에

올해 여러 포기 돋아났다

 

검버섯은 늙음의 표상이다. 종말로 가는 길, 거무스레한 빛깔로 신호체제를 갖추는 통과의례다. 프란츠카 카프카는“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검버섯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무수한 지난한 길을 성찰케 해주는 의미를 부여한다. 삶의 완성은 죽음이다. 시인의 ‘밀경’에서는 얼굴이 밭이다. 밭주인의 허락도 없이 검버섯 농사를 짓는 무례함에도 주인은 속수무책이다. 검버섯 농사가 풍년일수록 죽음은 한걸음 더 다가왔음을 화자는 인식한다. 작년에는 말끔하던 얼굴이 듬성듬성 갈색 무늬로 겨울을 재촉하고 있다. 노년의 얼굴은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는 관음 대상이다. 전도서는 성공한 자나 실패한 자나 어떤 삶이건 모두 인생의 종말은 덧없다는 허무의 종말론적 신학을 함의하고 있다. 시인은 얼굴에 돋아난 검버섯을 초조하지 않고 담담하게 익살로 수용한다./안재찬 시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정사회
경제정의
정치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