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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노조와해' 2심도 줄줄이 유죄…이상훈만 '위법증거' 무죄

강경훈 부사장 징역 1년 4개월 실형…원기찬·정금용·박용기 집유 유지

  • 기사입력 2020.08.10 17:36
  • 기자명 이윤태 기자

자회사의 노조 와해 공작에 가담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던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사장)이 항소심에서는 무죄 판단을 받았다.

▲ 법정에 출두하고 있는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이 전 의장을 제외한 삼성그룹 계열사 전·현직 임직원들은 모두 1심처럼 유죄 판단이 유지됐다. 다만 일부 형량이 깎인 이들도 있다.

◇ 이상훈 전 의장, 1심 법정구속 → 2심 무죄 석방

서울고법 형사3부(배준현 표현덕 김규동 부장판사)는 10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상훈 전 의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는 1심에서는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판단이 180도 뒤집혔다. 8개월 가까이 수감생활을 해 온 그는 이날 무죄 선고에 따라 석방된다.

1심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의 형량은 징역 1년 4개월로 약간 줄었다.

원기찬 삼성라이온즈 대표(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정금용 삼성물산 대표(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박용기 삼성전자 부사장(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은 1심과 같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형량이나 집행유예 기간만 조금씩 줄었다.

실무를 책임진 최평석 전 삼성전자서비스 전무(징역 1년), 목장균 삼성전자 전무(징역 1년), 박상범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징역 1년 4개월) 등에게는 실형이 선고됐다.

삼성전자의 노사 전략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노무사는 1심과 같은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양벌규정으로 기소된 두 법인 중 삼성전자서비스에는 벌금 5천만원을 선고하고, 삼성전자는 1심과 같이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이 전 의장 등 삼성 임직원들은 2013년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에 노조가 설립되자 일명 '그린화 작업'으로 불리는 노조와해 전략을 그룹 차원에서 수립해 시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 '미전실부터 협력사까지' 공모 인정…"광범위한 부당노동행위"

1심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에서 '비노조 경영 방침'을 관철하기 위해 만든 노조 와해 전략이 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협력업체 순으로 이어진 공모관계에 따라 실행됐다고 보고 혐의 중 상당 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강성 노조가 설립된 하청업체를 '기획 폐업'시키거나 노조원들에게 불이익을 준 혐의 등이 대표적이다.

사망한 노조원 유족에 무마용 금품을 건네기 위해 회삿돈을 빼돌리고, 노사협상을 의도적으로 지연한 혐의 등도 있다.

2심 역시 1심에서 인정된 혐의 구도 자체는 그대로 유지했다.

재판부는 "미전실을 중심으로 노사전략을 수립하고 각 계열사에 전파하고, 계열사에서는 상황별 시나리오를 만들어 대응했다"며 "피고인들은 광범위한 부당노동행위를 했고, 헌법상 권리인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무시해 근로자들의 정신적 고통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26명 중 25명이 똑같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단 한 명, 피고인 중 가장 지위가 높은 책임자인 이상훈 전 의장만이 무죄로 판단이 바뀌었다.

중요한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된 것이라 사용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 MB 수사 중 확보한 자료 '위법수집' 판단…"공모 없다는 것 아냐"

이 사건의 수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를 수사하던 중 삼성 측이 사무실의 하드디스크 등을 숨기려 하다가 들통나면서 시작됐다.

1심은 이렇게 확보한 증거들의 압수수색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고 봤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 과정이 위법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후 추가적으로 적법하게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거나 임의제출을 통해 확보한 증거들과, 관련자들의 진술은 적법한 증거라고 보고 이를 토대로만 유·무죄를 판단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하드디스크에서 발견된 CFO(최고재무책임자) 보고문건 등을 증거로 사용할 수 없게 됐고, 나머지 증거들로는 이상훈 전 의장의 혐의를 증명하기 부족하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다른 피고인들의 경우 이 전 의장처럼 모든 혐의를 벗지는 못했지만, 마찬가지로 표적 감사 의혹 등 증거가 부족해진 일부 혐의가 무죄로 바뀌면서 형량이 줄었다.

재판부는 이 전 의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이례적으로 "최종적으로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하지만, 결코 피고인에게 공모·가담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재판부는 "기록을 보면 원심과 동일한 결론에 이를 가능성도 있었으나,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가 없다고 가정하고 나머지 증거로만 결론을 내려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며 "과연 이게 정확하게, 합리적 심리로 이뤄진 것인지 상당한 고심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이상훈 피고인의 경우 CFO 보고문건이 위법수집 증거가 되는 바람에 직접적 증거가 없고, 다른 피고인들의 진술만으로는 공모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법리적으로 그렇지만, 만약 보고 문건의 증거능력이 인정된다면 상당 부분 원심 판단을 유지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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