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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찬의 시마당> 아지랑이가 있는 집

  • 기사입력 2020.08.31 20:24
  • 기자명 안재찬 시인

  

  안재찬 시인

     아지랑이가 있는 집
               

                           이향아

집에는 내 부끄러운 풍속이 있다
밥통 같은
간장종지 같은
요강단지 같은
집에는 부스러진 내 비늘이 있다
머리카락 같은
손톱 같은
살비듬 같은
집에는 내 아지랑이가 있다
빨주노초파남보 세어보는 색깔
집에는 슬픈 껍데기 얼룩진 콧물
그보다 치사한 인정이 있다
집에는 내 냄새가
고집이 있다
앉아서 돌이 되는 집념이 있다

시인의 집에는 풍속이 몇 개 있다. 밥통과 간장종지와 요강단지.
시인의 집에는 비늘이 몇 개 있다. 머리카락과 손톱과 살비듬이.
시인의 집에는 무지개 빛과 껍데기와 아지랑이가 있다. 콧물과 인정도 한 자리 지키고 있다. ‘앉아서 돌이 되는 집념이 있다.’ 시인만이 갖고 있는 우리 고유의 토속적 자산과 지적 감성은 성찰과 겸허의 미학을 일깨운다. 제 잘난 맛으로 세상을 농락하는 인간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죽비를 들고 있다. 낡아서 살갑고 남루해서 온기서린 아지랑이가 있는 집은 서경의 정취를 유감없이 살리고 있다. 사물과 세계의 동일화로, 어둠을 밝음으로 치환시킴에서 시인의 눈과 영혼이 맑다. 부끄러운 심상의 서정이 약점을 강점으로 부각시키며 시 읽는 재미를 더해 주고 있다. 봄날 투명한 불꽃처럼 아른아른 행복과 희열이 집안 가득히 피어오르는 어릴적 고향집 풍경이다. 시인의 소소하고 허름함의 옹고집을 직정적으로 진술하면서 살가운 빛을 발한다. 베르그송은 말한다. “과거의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동시에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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