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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연구자들 "가습기살균제 무죄, 연구결과 잘못 이해한 것"

  • 기사입력 2021.01.19 14:15
  • 기자명 차수연 기자

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 등 가습기살균제 제조·유통 업체 관계자 전원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무죄로 선고한 지난주 법원 판단에 대해 환경·보건 연구자들은 재판부가 과학적 인과관계의 논리를 잘못 이해했다고 비판했다.

▲ 김성균 서울대 환경보건학과 교수가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주최로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애경산업 전 대표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과 관련해 열린 전문가 기자회견에서 성명서를 읽고 있다.

피해자 조사에 참여한 박동욱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19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판결은 피해자들을 뭉뚱그려 '기저질환이 있다'는 식으로 가습기살균제의 (폐질환) 인과관계를 무시했다"면서 "서너살 아이들이 나이가 있어야 걸리는 폐질환을 얻은 이유를 따로 설명할 수 없음에도 개인 인과를 완전히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동물실험 결과 가습기살균제 속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이 폐질환을 유발한다고 보기 어려웠다고 본 재판부에 판단에 대해 "동물실험은 옵션일 뿐 탈리도마이드, DDT 등 동물실험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독성도 많다"고 반박했다.

연구자들은 추론과 보완·합의라는 '학술의 논리'가 통상적인 '재판의 논리'와 달리 작동하는 것임을 법원이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학술적으로는 어떤 사실이 반증 되지 않을 경우 받아들이게 되는데 법원에서는 입증해야 한다"며 "폐질환도 인과관계의 특성상 많은 연구자가 '반증이 안 된다'고는 하지만 '입증됐다'는 식으로는 이야기하지 않는데 학술집단과 법원이 서로 이해를 잘 못하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전문가들 각자 하는 분야가 다르다 보니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었고, 재판에서는 서로 입을 맞추지 말라는 이야기도 나왔다"며 "불일치하는 게 있으면 (대화를 통해) 객관적 사실을 찾아 봉합하는 게 연구자들의 방식"이라고 했다.

변호사인 박태현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사건은 과학에 의존해 재판을 한 전례 없는 사법과정"이라며 "과학의 진실추구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무결점만 진실로 인정한다면 사실 대부분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2심 재판부는 물질과 피해 간의 인과관계를 엄격히 입증하기 어렵다는 것을 감안해 증명 정도를 낮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며 "과학자로 구성된 자문패널을 구성할 필요성도 있다"고 제안했다.

한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지난 12일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에 관해 "공소사실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가 폐질환이나 천식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 등은 CMIT·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해 사상자가 발생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CMIT와 MIT 등은 앞서 일부 제조사 관계자들이 유죄 판결을 받은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나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와 다른 성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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