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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자 이정빈 가천대 석좌교수 “제가 정인이였다면 제발 빨리 죽여달라 빌었을 것”

"전신에 지속.악랄한 학대 가해져… 부검생활 40년중 가장 감정 요동쳐"
"정인이는 ‘발로 밟아 췌장 손상'됐을 것"

  • 기사입력 2021.02.06 07:44
  • 기자명 김다원 기자

“감정인이 변사자였다면 ‘더 괴롭히지만 말고 제발 빨리 죽여 달라’고 오히려 빌었을 것이고….”

▲ 이정빈 법의학자(사진=동아일보)   

그는 지난해 세상을 떠난 입양아 ‘정인이’의 양모를 지난달 살인죄로 기소하는 데는 아이의 부검 결과를 재감정한 결과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국내 최고의 법의학자인 이정빈 가천대 석좌교수(75)다. 그런데 이 교수는 이번 정인이에 대한 보고서를 몇 번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고 한다.

이정빈 교수는 “각 분야 전문의 등을 직접 찾아가 의견을 나누고 양모가 (아이를) 발로 밟았단 사실을 확신했다”며 “재감정을 맡으며 느낀 사적인 소회를 감정서 마지막 단락에 썼다가 객관성을 고려해 제출 직전에 뺐다”고 했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 교수가 지운 대목을 보면 정인이가 생전에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말을 할 수 있는 나이였다면 정말 ‘차라리 죽여 달라’고 했을 법하다.

“정인이 부검 사진을 보면, 가끔 TV 모금 광고에서 마주치는 아프리카 빈곤층 아이와 흡사합니다. 이렇게 어린아이를 어떻게 이리 아무 망설임 없이…. 정말 끔찍한 광경이에요. 아이는 어쩌면 숨진 뒤 구천에서 ‘(죽여줘서) 고맙다’고 했을 거예요.”

이 교수는 지금까지 40여 년 동안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부검을 수십여 차례나 맡았다.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이번처럼 감정이 요동쳤던 적은 처음”이라고 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서는 ‘일정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학대 부위가 처음엔 종아리 같은 곳이었다가 조금씩 엉덩이, 옆구리로 바뀐다. 이 교수는 “학대 정황을 숨기기 위해, 혹은 굳은살이 생겨 아이가 덜 아파하면 더 아픈 부위로 옮겨가는 것”이라며 “결국 가슴이나 머리까지 학대 부위가 옮겨가 아이가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정인이 역시 전신에 걸쳐 지속적이고 악랄한 학대가 가해졌을 겁니다. 이미 알려진 두개골 골절과 장간막 손상, 췌장 절단 외에도 허벅지와 옆구리 등 전신에 발등과 같은 넓은 부위로 걷어차인 흔적이 보였어요. 갑상샘(갑상선) 조직과 턱 아래쪽까지 출혈과 손상이 있었습니다. 이런 흔적은 기도가 있는 목 주변을 손날로 치거나 한 손으로 꽉 움켜쥐며 조를 때나 생길 수 있어요.”

이 교수는 법의학이란 “단순히 시신의 상흔을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다. 사건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정인이 부검 보고서에 단순히 ‘둔력에 의한’으로 표현하지 않고 ‘발로 밟아 췌장이 손상됐을 것’이란 내용을 담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인이 겨드랑이 안쪽 뼈에 생긴 움푹 파인 ‘압박 골절’의 원인은, (양모가) 정인이가 방어하지 못하도록 팔을 들게 한 뒤 때렸기 때문일 겁니다. 이 부위를 맞은 정인이는 아마 팔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을 거예요. 제가 이 부위의 고통 정도를 체험해 보려고 실제로 동료에게 부탁해 몽둥이로 맞아본 적이 있어서 아주 잘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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