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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에너지 전환은 사회 정책이다'

  • 기사입력 2021.02.25 08:28
  • 기자명 기후사회연구소 한빛나라 소장

 ‘유럽 그린딜은 외교정책이다.’경제 분야의 세계적 싱크탱크인 브뤼겔 연구소는 최근에 발간한 “유럽 그린딜의 지정학” 보고서에서 유럽 그린딜을 이렇게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유럽의 화석연료 사용 중단은 필연적으로 석유와 가스를 유럽에 수출해온 러시아, 알제리 등의 무역상대국 경제에 큰 부담을 주며, 글로벌 석유 수요의 20%를 차지하는 유럽의 탈석유는 글로벌 유가하락을 초래해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또한 유럽연합의 각종 환경규제는 오염산업의 해외이전을 촉진하여 비유럽국에 대한 탄소누출을 야기하고 국가간 불평등을 악화시킬 우려도 있다.

반면에 유럽은 배터리 등 신재생에너지 기술 확대에 필요한 핵심 원료물질을 중국 등 해외국가로부터 안정적으로 조달해야 하며 자원의 해외의존도를 낮추고 지역 안보를 강화해야 하는 도전적 상황에 놓여있다.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량의 10%를 차지하는 유럽연합이 전 지구적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유럽 밖으로 영향력을 확장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유럽 그린딜은 본질적으로 국제관계, 국제협력 이슈이고 외교정책이라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유럽 사회가 기술적 전환에 몰두하며 간과해온 그린딜의 국제외교적 중요성을 일깨우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기술적 요구와 사회적 요구의 공동최적화가 관건

국가 단위의 뉴딜이 외교정책이라면, 지역 단위의 에너지전환은 사회정책이다. 에너지전환은 비단 에너지원의 전환, 즉 화석연료를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에너지를 둘러싼 사회경제적 구조의 변화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했다. 그런 의미에서 에너지전환은 분산형 에너지, 저탄소 친환경 에너지와 관련한 기술적 측면과 사회구조의 변화를 모색하는 사회운동적 측면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 있다[1]. 그래서 에너지전환에서는 기술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이 똑같이 중요하다.

사회기술 시스템 이론(Socio-Technical System Theory)에 따르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려면 사람과 사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기술뿐 아니라 삶의 질, 사회적 자본과 같은 사회문화적인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 전체 업무의 최적화를 위해서는 “기술적 요구”와 “사회적 요구”의 공동최적화(joint optimization)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 에너지전환과 관련한 사회적 요구는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기술적 요구와 공동최적화할 수 있을까?

지역 에너지전환의 사회운동적 측면을 이해하려면 주민주도형 에너지자립마을 조성과 같은 공동체적 이니셔티브를 떠올리면 된다. 사회운동은 본질적으로 사회혁신을 추구한다. 사회혁신이란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사회관계와 협력을 새롭게 창조하여 사회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지역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에너지자립 방안을 모색하고, 이웃 커뮤니티와 협력하고, 이러한 지역 이니셔티브가 전국 곳곳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것. 이것은 우리나라 지자체들이 바라는 지역 에너지전환의 모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수준의 스케일과 깊이를 가진 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역 커뮤니티의 자발적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자발성은 전환 이니셔티브의 효과가 지속되고 확대되고 재생산되도록 한다. 그러면 자발적 움직임을 어떻게 촉진할 것인가?

지역의 그린뉴딜을 사회적 ‘빅딜’로 만드는 비결

아마도 가장 보편적인 수단이 재원, 즉 기금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금만으로는 자발적이고 주도적인 변화를 끌어내기 어렵다. 지역 주도, 커뮤니티 주도란 계획수립 단계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가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자원을 같이 사용하고 관리하고 재생산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지역주민 주도형 전환은 마을태양광발전소나 마을텃밭 조성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이를 사용하는 주민들의 생활의 변화가 필수적으로 수반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정과 일의 균형에 대한 인식과 물질소비적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근본적인 변화는 공동체, 에너지, 소비생활에 걸친 인식의 대전환에서 시작한다. 여기에 집단적 비전을 수립하고 공유할 수 있어야 하며, 사회혁신적 변화를 위한 깊은 의지와 상호존중에 바탕을 둔 활발한 소통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쯤되면 이러한 역량을 갖춘 커뮤니티가 지향하는 목표도 단순히 GDP 상승이나 비용절감이 아니라, 커뮤니티의 웰빙과 행복일 것이다.

따라서 지역 커뮤니티의 자발적 이니셔티브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뉴딜을 통한 기금 외에도 사회문화적 측면을 고려한 사회혁신적 접근이 필요하다. 실제로 지역 커뮤니티 중심의 에너지전환의 영향은 경제적 편익을 뛰어넘는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제고되고, 더 많은 주민들이 지역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며, 이를 통해 커뮤니티 정체성이 강화되고 사회적 신뢰가 증대되며 커뮤니티의 역량이 강화된다.

이는 곧 지역 에너지전환의 목표가 기존의 비용절감, 효율성 제고,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GDP 증가, 일자리 창출 등의 전통적인 컨셉을 벗어나서,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 협력과 소통 제고, 에너지 빈곤 완화, 민주적 의사결정 훈련 등의 다양한 사회문화적 측면을 포함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에너지전환은 이런 방식으로 지속가능발전목표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결론적으로 지역 에너지전환은 그 결과가 에너지에 국한되지 않듯이 그 시작도 에너지에서만 찾아서는 어렵다. 사회변화와 사회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는 포괄적 로드맵을 개발해서 지속가능발전목표와 연계하고, 기술적 요구와 사회적 요구의 공동최적화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지난 1월, 대전의 대덕구와 한-EU 기후행동사업, 대전에너지전환네트워크가 대덕구의 에너지전환을 위한 협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필자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참여하여 대덕구 에너지전환 로드맵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지역 에너지전환 로드맵은 포괄적인 사회적 가치를 담아야 한다. 지역의 그린뉴딜을 사람 중심의 사회적 ‘빅딜’로 만드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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