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표절 충동

  • 기사입력 2021.04.10 22:41
  • 기자명 이오장
▲ 시인 이오장 

표절 충동 

                       고진하

베끼고 싶은 시인들의 시들은

이미 낡았구나

베끼고 싶은 가인의 노래는

이승의 리듬이 아니구나

베끼고 싶은 성자의 삶은

시신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구나

(표절 충동은

창조자인 나를

언제나 슬프게 하지만)

꽃의 꿀을 따 먹으면서도

꽃에 이로움을 주는

나비나 꿀벌의 삶은 베끼고 싶거니

이런 생물들의 꽃자리가 되어주는

대지의 사랑은 베끼고 싶거니

아리스토텔레스는 창조는 모방에서 비롯되었다고 시론에서 밝힌 바 있고 이 세상의 모든 창조자는 기존의 정체된 창조물을 읽힌 뒤에 비로소 자신의 창조물을 창조하게 된다. 모방이 없다면 새로움도 없는 것이다. 모든 물체는 움직이든 움직이지 않든 그것만의 유일한 특성을 가졌고 자연 상태에서 변화는 하되 새로운 창조는 이루지 못한다. 오직 다른 물체에서 모방적인 진화를 거듭할 뿐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예술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없다면 새로운 모습을 만들 수 없어서 자연 속에서든 인위적인 창조물에서든 새로운 것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이것이 예술이 지닌 정의라 할 수 있다. 고진하 시인은 이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모방창조를 주장한다. 앞서간 시들은 이미 낡았고 노래는 이승을 넘어 저승으로 갔다. 성자의 삶도 이미 지난 과거다. 그런 것들은 창조하려는 모든 예술가의 슬픔이다. 모방이 창조의 시초라 하지만 그것을 벗어나 새로운 창조를 이뤄내야 한다. 왜 앞서간 것들에 미련을 가지는가. 꽃에서 꿀을 얻지만 꽃의 수정을 돕는 꿀벌이나 모든 꽃에 꽃자리가 되어주는 대지의 사랑을 본받을 수는 없는 것인가. 이 땅의 모든 시인의 고민을 대변하여 창조의 새로운 정의를 말하는 시인의 정신은 꽃의 자리를 내어주는 대지의 정신이라 하겠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정사회
경제정의
정치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