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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라는 동질성과 다문화사회

  • 기사입력 2021.04.27 20:14
  • 기자명 이진경
▲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이진경 특임교수   

근래 들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단체 카톡방에 초대되는 일은 흔히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자신들만의 옳음을 강요하다 의견을 달리하면 심지어 나가달라는 주관적 횡포도 볼 수 있어 보는 이들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한국 특유의 연줄문화 네트워크는 사회적 관계 차원의 학연, 지연, 동일 국가 등과 물리적 차원의 외모나 행동, 공동소유의 유사성 또는 개인적 관계 차원에서 사고방식, 성격 등 어느 차원에서든 유사한 특성이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의 동질성 유지를 위해서는 내집단과 그와 관련되어 있는 타집단 간에 만들어지는 비교에 기반 한 범주화 과정이 필요하다. 이때 대부분 자신들의 자아 존중감을 높이기 위해 자신이 속한 내집단을 타 집단과 비교해 더욱 높이고자 한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렇다보니 한국사회의 일부 집단들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외부와의 교류 허락과 교량적 사회적자본 네트워크 형성에는 인색하다는 평이다. 

예로, 몇 년 전 김도언 소설가의 인터뷰 내용이 떠올랐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시인들은 자기가 파고든 세계 안에서만 안전한 존재예요. 그 울타리만 넘어가면 상당히 불안하고 위태롭죠. 그래서 시인들은 다른 쪽에 있는 시인과 연대하고 결속하려는 의지가 강해요. 내가 가지고 있는 영역을 보여주면서 서로 교류하는 거죠. 그래야지만 내가 더 강해지고 안전해질 수 있으니까.” 

이렇게 한집단의 예를 들었지만 결과적으로 배타적 집단의 시작은 우리사회의 집단 간 동질성을 자각하면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대가 우리에 속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남인가? 그 평가에서 ‘우리’로 인식된 집단이라면 정성을 쏟을 테고, ‘남’으로 인식될 경우 적대적이고 불친절해지기도 한다. 

‘우리’ 라는 동질적 경계에서 ‘남’이 들어설 때, 소통, 설명, 이해, 수용, 환대는 배제된다. 이렇게 구별하여 대인 관계적 상호작용 행동은 차별화하는 것이다. 심지어 동질적 특성을 지녔다 손 치더라도 집단지성의 배타성은 경계부터 세우는 또 다른 다양성의 수용에 한계를 보인다.  

집단 지성에 대한 개념을 최초로 발표한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레비(Pierre Levy)는 “어떠한 사람도 모든 것을 알지 못하지만 모든 지식은 결국 인류 안에 있다. 사람들이 서로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여 중요한 가치를 다양성 안에서 식별하고 실제 참여로 이끌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집단지성이다”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었던 터라 우리나라 문학을 말하자면 전반적인 사회구성원들의 인식수준을 끌어올리기에 제일 효율적, 계몽적 역할을 했던 역사를 지녔다는 점이다. 이제 특정한 사람들만의 엘리트주의 리그로써 안주함과 배타적인 권위를 넘어 다문화, 다인종, 다민족과 함께 살아가는 변화에서 집단지성인들의 선구자로써 높은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을 발휘해주길 기대해본다. 

그럼에도 배타성에 머무른다면 평화적, 통합적 다문화사회는 택도 없는 소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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