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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Humor)의 매력을 아십니까?

  • 기사입력 2021.06.10 09:44
  • 기자명 이석복
▲이석복(수필가, 차세대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1976년 대구지역에서 한국군 육군방공포병교육대가 창설되었다. 기념식에서 미 8군 작전참모(소장)가 축사를 하게 되었는데 통역관을 대동하지 않고 참석하는 바람에 불가피하게 준비없이 통역(通譯)을 맡게 되었다.

공식석상에서 통역은 난생 처음이었기 때문에 잔뜩 긴장해서 조심조심 순차통역(consecutive interpretation)을 시작했다. 그런데 미 장군이 축사를 하는 엄숙한 자리에서 난데없이 '미니스커트(miniskirt)'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순간 잘못 듣지는 않았는지 당황되면서 동시에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졌고, 그 다음 이어진 영어단어를 멍하니 흘려보냈기 때문에 통역을 못하고 있었다. 그 순간 몇 초는 정말 몇 시간이 지난 듯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엉겁결에 “I beg your pardon, Sir!”(장군님!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십시오!) 라고 창피를 무릅쓰고 물어야했다. 다시 들어야만 정확하게 통역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 장군은 만면에 미소를 띠면서 “Just only it was a humor. No need to interpret.(단순한 유머라네. 통역 안해도 되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 순간도 긴장을 하여 어쩔 바를 모르고 있는데 이 장면을 지켜보던 참석한 한국군 참석자 장군들이 “와아!”하고 파안대소(破顔大笑)하면서 겨우 넘어갔다. 아무튼 첫 통역임무를 그럭저럭 마쳤다.

공식 창설기념식을 마치고 이어진 다과회장(茶菓會場)에서 미 8군 작전참모는 나를 불러 “축사는 ‘미니스커트’처럼 짧게 하는 것이 예의이나 기뻐서 좀 길게 말을 했다.”고 아까 통역하면서 당황했었던 얘기를 자상하게 이해해주었다. 그러고보니 미 장군은 이미 나의 통역이 당황할 것을 예견했고 그것을 쉬운 영어로 참석한 한국군 장군들과 유머를 교감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한국군과 달리 미군들은 공식석상에서도 이렇게 가벼운 유머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공식 행사 후 다과회에서나 만찬 때에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서 유머를 자주 활용하는 미국 특유의 사교문화(社交文化)이다. 조크(농담)는 ‘실없이 장난으로 하는 말이나 익살과 같은 우스개’지만 유머(humor)는 ‘남을 웃기는 말이나 행동’으로 진지한 품격을 가지고 있는 우스개로 곧이곧대로 하는 말이나 진지한 이야기에 비하여 보다 다양한 뉘앙스(nuance)를 내포하기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대화가 더 신선하게 들릴 수 있는 ‘매력(魅力)’이 있다. 그래서 유머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나 또한 인생을 살면서 적절하게 유머를 던져서 분위기를 부드럽고 즐겁게 만들어주기도 하면서 살고 있다.

심지어 세계적인 유명인사들도 딱딱한 공식 대화를 하면서도 가볍게 유머를 주고받는다고 한다. 영국의 처칠수상이 유머로 유명한 일화를 많이 남겼는데 특히 2차 대전 중 미국의 루우즈벨트 대통령과 어려운 전쟁국면을 슬기롭게 해결할 때 유머로 미국의 참전을 이끌어냈던 일화는 유명하다.

과거 6.25 전쟁 시 미군지휘관들이 한국군 부대를 방문하면 유머를 했는데 통역관은 잘못 알아듣거나 우리말로 통역하기에 실력이 부족할 경우 “웃기는 말씀을 하셨으니 여러분 웃으십시오.” 해서 “와아”하고 웃고 넘어갔다는 일화도 전해져 내려온다. 그 순간 미군지휘관은 자신의 유머가 한국군을 웃긴 것으로 만족했을 것을 생각하니 그 자체가 또 유머가 된 것이다.

1984년 미국방대학원에서 유학을 했을 때 외국군 장교들에게 처음 입학을 허락한 첫 클래스로써 나(한국군 대령)외에 이스라엘 장군, 이집트 장군, 파키스탄 장군, 사우디 공군 중령(왕자), 브라질 해군대령 등 6개국 장교들이 초청이 되었다. 특히 이스라엘과 아랍권 장교들 간 미묘한 감정의 골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6개국 외국장교를 대표해서 스피치(speech)를 할 경우가 많았다.

미국방대학원장이 우리 외국장교들을 초청한 만찬에서 “우리는 파일럿(Pilot)이 아니지만 파일럿 클래스(Pilot Class)에 입학한 이상 최선을 다해서 졸업할 때는 날수(to fly) 있도록 하겠다.”고 유머를 해서 분위기가 확 풀렸던 적도 있었다. 여기서 ‘파일럿 클래스’는 ‘항공기 조종사학급’이란 말도 되지만 처음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학급’이란 뜻이 있어 이런 의미를 이용한 가벼운 유머였다. 

한미연합사(CFC ROK/US) 근무 시 개리 럭(Gary E, Luck)연합사령관이었는데 한미군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유머를 곧 잘 하였다. 언젠가 한•미군의 전투식량에 대하여 대화를 하다가 미군 전투식량을 MRE(Meal, Ready to Eat)라고 하는데 별로 맛이 없다는 뜻의 유머를 했다. 럭 장군의 유머에 의하면 MRE(엠알이)라는 이름이 “미군이 이라크의 모래사막에서 전투식량(MRE)으로 식사를 하는데 낙타가 위에서 머리를 내밀고 휙 뺏어 먹다가 맛이 없어서 뱉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하면서 MRE가 원래 “Meal, Rejected Even by camel"(낙타 마저 거부한 식량)이라고 해서 모두를 웃겼었다. 그렇다고 누구도 럭 사령관이 미군전투식량을 비난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다른 유머로 미 해병대(US Marine)가 용감하지만 머리는 좀 별로라며 놀려대는 농담이다. 한 신병입대자가 의사에게 와서 자기는 IQ(지능지수)가 너무 높아서 공군에 가야 되는데 정작 자기 희망은 육군이라서 기계로 IQ를 좀 내려 달라고 했다. 의사가 막 기계를 동작시키는데 전화가 와서 전화를 받다가 그만 시간이 지나 IQ가 너무 낮아져서 결국 해병대로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해병대를 놀리는 유머지만 해병대 장교들도 같이 웃었다. 사실 전투에서의 용기는 이성적인 머리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전역 후 “동북아시아 비핵지대” 설치에 관한 비정부기구 한국대표단으로 참석하여 만찬 시 했던 유머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소련의 고르바초프 수상, 영국의 대처 수상,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한국의 노태우 대통령이 4개국 회담 후 만찬장에서 자기나라 자랑을 시작하였다. 고르바초프 수상이 자기 이마(넓은 이마에 지도 같은 무늬가 있음)를 가리키며 ‘광대한 국토’라고 하자, 대처 수상이 자기 젖가슴을 만지며 ‘풍부한 자원(북해유전을 상징)’이라고 받아쳤다. 레이건 대통령은 바지를 내리고 ‘강력한 무기’라고 으쓱해 하자, 노태우 대통령이 일어서서 바지를 내리고 그리고 뒤로 돌아서서 ‘분단된 조국’이라고 외쳤다.”라고 신체의 특징으로 자국의 힘을 은유한 유머를 했는데 모두들 박수를 치며 좋아했던 추억이 있다.

끝으로 미국의 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도 유머 잘하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에 관한 유명한 유머를 소개하고자 한다. 남북전쟁당시 두 여인이 누가 전쟁에서 이길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A 여인 : 내 생각에는 제퍼슨(남군 대통령)이 이길 것 같아!

B 여인 : 왜 그렇게 생각하지?

A 여인 : 왜냐하면 그는 성실히 기도하거든!

B 여인 : 링컨도 기도를 하는데...

A 여인 : 나도 알아, 그렇지만 하나님은 링컨이 기도하는 것은 유머하는 

         것으로 생각하실 거야!

이 유머는 링컨이 대통령으로서 얼마나 유머러스한 성품인가를 보여주는 것으로 아무도 실없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외에도 내가 경험한 조크는 참 많다. 반면에 우리 사회에는 유머가 부족하다. 정치지도자가 국민들과 시민들에게 자신있게 유머를 던지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 우리 사회는 진지하다기 보다 유머가 부족한 편이다. 위트있는 유머가 생활화된 미국 사회와 같이 우리 사회에 생기를 더하고 윤활유가 되는 유머가 더 많이 활용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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