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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피임약이 여전히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는 까닭은?

  • 기사입력 2021.06.27 20:41
  • 기자명 UAEM Korea

사후피임약은 성관계 이후 짧은 시간 내에 복용하여 인위적으로 임신 가능성을 낮추는 약물로, 응급피임약으로도 칭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최근 5년간 임신 중단 경험이 있는 여성 602명을 설문 조사한 바에 따르면, 10명 중 4명은 사후피임약을 사용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용해본 응답자의 약 10%는 의료인의 거부로 처방전을 받지 못한 적이 있다고 답하였다. 사후피임약은 의사의 진단과 지시에 따라서만 사용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이기 때문이다.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 없는 일반 의약품인 사전 피임약과 비교하면 접근성이 떨어진다. 

접근성의 관점에서 의약품은 일반 의약품과 전문 의약품으로 분류 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 사후피임약은 후자에 해당한다. 때문에 사후 피임약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전문 의약품의 대표적 특징인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경우가 모든 국가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사전 피임약이 일반 의약품으로, 사후 피임약이 전문 의약품으로 구분되지만 대부분 서양권 국가들에서는 그 반대로 의약품 품목이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사후 피임약이 전문 의약품으로 분류되는 경우, 이와 관련된 여러 의약품 접근성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식약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2012년에 심야시간이나 휴일에 야간진료 의료기관 및 응급실에서의 사후피임약 원내 조제를 허용하였다. 하지만, 사후 피임약의 높은 가격은 여전히 접근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남아있다.

한국에서 사후 피임약을 처방 받기 위해서는 진료 비용과 약값을 모두 비보험으로 개인이 부담해야 하며, 대략적으로 합하여 총 4~5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수정을 막는 약인 사후 피임약은 최대한 빠르게 약을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응급상황인 경우가 많지만,  약을 빠르고 저렴하게 구하는 것이 늘 쉽지만은 않다. 평일 저녁 6시 이후에는 기본 진찰료의 30%가 환자 본인에게 추가 부담되고 응급실에서 처방 받는 경우에는 진찰료 외에 ‘응급의료관리료’라는 비용을 별도로 지불 해야 한다.

반면, 사후피임약이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일반 진통제처럼 처방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영국의 경우, 가격이 20~25파운드 (한화로 3만5천원~5만원 정도)이다. 영국에서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는 사전 피임약이 20파운드정도이기 때문에 한국과 달리 영국에서는 사전 피임약과 사후 피임약의 가격 차이가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가격적인 문제는 불법 유통 문제와도 연결된다. 의사의 진료가 어려운 시간에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불법적인 경로로 약을 유통하는 구매 대행 업체가 존재한다. 전문의약품의 불법 유통은 가격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훨씬 심각한 부작용의 위험성이 따른다. 사후피임약은 사전피임약과 달리 압축된 호르몬 성분으로 인해 복용 방법이 매우 중요한데, 사후피임약이 불법 유통되는 경우 복약 지도가 전문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의약품 성분의 안정성 또한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피임이라는 비슷한 목적을 위해 복용하는 사전경구피임약(이하 사전피임약)은 보통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등을 함유한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된다. 4세대 사전피임약은 호르몬 제제의 농도가 높아 전문의약품으로 처방되기도 한다. 에스트로겐은 배란을 억제하고, 프로게스테론은 정자의 운동을 방해하여 수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사전피임약은 첫 복용 시 월경 시작일부터 매일 같은 시간에 1정을 복용하는데, 이것을 21일 동안 복용하고 7일간 휴약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약을 복용하고, 1주일이라는 휴약기를 지켜야 피임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구할 수 있는 사전피임약의 가격은 7000원~10000원 정도로 사후피임약에 비해 저렴하다.

한국에서는 2012년경 사후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사전피임약을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사전피임약은 효과를 보기 위해 장기복용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2012년 8월의 의약품 재분류안이 확정된 이후, 사전피임약은 일반의약품으로 유지해 소비자 접근성을 높이도록 하였다. 부작용 문제는 약사가 복약 안내서를 제시하고, 피임약 광고에 상담이 필요하다는 문구를 기재하는 것으로 해결하고자 하였다.

2016년에도 사후피임약의 재분류에 대한 논란이 일었는데, 역시 같은 결론을 내렸다.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에 다르면, 안전성 측면에서 분류를 전환할 만한 새로운 정보가 보고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결론에 대해서 소비자들보다는 의사와 약사의 이권 다툼의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처방이 필요한 약이 많을수록 유리한 의사들과, 약국 구매용 일반약이 많을수록 유리한 약사들의 인식이 기존 체제를 유지하도록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사후피임약은 높은 가격과 보험 불가, 불법 유통으로 경제적 부담과 건강상 부담을 이중으로 가진다. 그러나 높은 호르몬을 포함한 사후피임약을 일반 의약품으로 전환하는 방안은 약물 오남용과 부작용 위험으로 지금까지 반려되어왔으며, 이와 궤를 같이하는 대안이 필요하다  먼저, 사후피임약을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항목으로 분류해 진료비를 인하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사후피임약의 처방은 전문적인 진료가 아닌 단순 문진만으로 이루어지는데 비하여, 일반 진료보다 훨씬 높게 책정되는 2만원 가량의 진료비를 소비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불공정하다고 느낄 수 있다. 또한 약국에서의 판매가를 적절히 규정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사후피임약의 접근성 향상을 통하여 원치 않는 더 쉽게 예방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쓴이 : 김가은 (연세대학교 과학기술정책학과). 김승아 (고려대학교 언어학과), 이광혁 (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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