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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희생을 ‘땀’으로 보답하다

아라우(태양)의 후예(5회) "We are here to repay your sacrifices of blood with our own sweat drops."

  • 기사입력 2021.08.28 09:28
  • 기자명 이철원
▲ 전술토의 중인 아라우 부대 참모회의     

세계 공통적으로 모든 군부대에는 역사와 전통에 근거하여 부대의 특징을 상징하는 부대구호가 있다. 이러한 부대구호는 부대원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고 부대원을 단결시키며, 적개심을 고취시키거나 특정한 행동을 요구하기도 한다. 우리 군에서 유명한 부대구호는 특전사의‘안되면 되게 하라', 해병대의‘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백골사단의‘필사즉생 必死卽生 골육지정 骨肉之情' 등이 있다.

아라우부대가 파병되기 前 12월 초에 태풍 피해지역 현지 정찰을 다녀온 후, 필리핀에 대한 한국군의 보은 報恩 파병의 의미를 구현할 수 있는 캐치프레이즈(구호)를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 대부분 가족을 잃은 주민들은 주거환경이 파괴되어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의존하여 위로받고 싶은 마음과, 살아가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정찰 간에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당시에 각 군에서 선발된 아라우 부대원들은 사명감과 책임감보다는“재난을 당한 가난한 나라를 도와주러 간다”는 마음으로 약간 들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잘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필리핀은 과거에 우리 국민들이 이민을 희망할 정도로 잘 사는 동경의 나라였다. 이 때문에 최초의 현대식 체육관 건물인 장충체육관을 필리핀이 자본과 기술을 제공하여 건설했다는 잘못된 속설이 퍼지기도 했지만 실제 장충체육관은 대한민국의 순수 기술과 자본으로 건설됐다.

▲ 장충체육관 : 예산(서울시, 5일), 설계(건축기 김정수), 시공(삼부토건), 공원 ( 1960, 3 / 1962,12)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고민 끝에 도움을 받아야 하는 필리핀 사람들의 자존감을 세워 주고 파병에 임하는 아라우 부대원들의 마음 자세를 바로잡기 위해 고민 끝에 다음과 같은 부대구호를 만들었다.

“피의 희생을 땀으로 보답한다.”

We are here to repay your sacrifices of blood with our own sweat drops.

▲ 복구현장의 구호 프랭카드     

인간은 심리적으로 논리적 판단보다는 정서(감정)에 의해 움직인다고 한다. 그래서 감정을 자극하는 상징적 언어인‘피’와‘땀’을‘희생’과‘보답’이라는 단어로 대조법을 사용하여 보은 파병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고 인상적이며 간결하게 표현했다. 이 구호의 사용은 아라우 부대원들이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임무수행 태도를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우리는 재난을 입은 주민들을 도와준다면서 교만하게 행동하기 보다는 은혜에 보답한다는 겸손한 마음과 진정성이 있는 태도를 갖도록 노력하였고 이를 내면화하기 위해 점호, 출동신고 등 병력이 모일 때마다 몸동작과 함께 구호 제창을 생활화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병력들의 마음과 행동이 조금씩 달라짐을 스스로 느끼게 됐다.

  © 상륙함

구호는 부대 밖에서 잘 보이도록 강당 외벽에 크게 써 놓았고 의료지원, 건물복구, 부대행사 등 활동 간에도 플래카드로 제작하여 현지 주민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했다. 모든 공식행사 연설시에는 우리가 필리핀에 파병을 온 이유를 이 구호를 사용해 설명했다.

주민 감동 전략 (1)

12월 초 부대가 파병되기 전에 현지정찰을 하면서 군수송기에서 내려다 본 모습은 매스컴에서 보도된 것보다 더욱 참혹하게 다가왔다. 섬 전체의 코코넛 나무들은 오른쪽으로 쓰러져 있고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바닷물은 시커멓게 고여 있었다.

해안가의 일부 시멘트 건물들은 골조만 남아 있고 대다수의 목조건물은 흔적만 보였으며 내륙의 건물들도 대부분 지붕이 날아간 상태였다. 태풍이 지나간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주민들은 아직도 여기저기에서 가족의 시신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휑한 눈빛으로 공포에 질려있는 어린이들을 보니 가슴이 미어져 눈물이 핑 돌았으며‘우리가 파병을 와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이들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고 삶에 희망을 줄까?’하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더욱이 현지에 많은 UN의 구호단체와 다른 나라의 군대들이 활동하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의 파병목적을 달성하고 국위를 선양하기 위해 ‘어떻게 접근하고 구별되게 행동하여야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하는 부분에 대한 고민이 컸다.

▲ 어린이들의 감사편지   

첫 인상이 마지막 인상이다. 내가 과거 티모르, 이라크에서 경험한 바로는 사람도 첫인상이 중요하듯이 부대도 첫인상이 매우 중요하며, 특히 민사작전의 성패 成敗 는 작전초기에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개 현지 주민들의 외국 군부대에 대한 첫인상이 끝까지 가기 때문에, 처음에 주민들의 인식과 반응이 부정적이면 나중에 이를 바로잡기가 힘이 들며 오래 걸린다.

우리 정부와 필리핀과의 파병협정서에‘한국군의 파병기간을 6개월로 하되, 양국간 상호동의가 있는 경우 6개월을 연장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였으므로 우리가 임무수행을 잘 못하면 6개월 만에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파병부대장으로서 초기에 현지 주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 우호적인 반응을 얻어야 했다. 당시 필리핀에 재해복구지원부대로 한국군이 파병하는 것에 대해 현지 주민과 언론은 겉으로 환영 의사를 표명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일부 부정적인 요인이 있었다.

▲ 어린이들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고 있는 아라우 부대   

첫째, 필리핀에서 1992년 미군이 철수한 이후 외국 군대가 들어오는 것은 한국군이 처음이었다. 따라서 필리핀 정부가 한국에 요청한 파병이지만 주민들 마음속에는 기대감과 더불어 스페인, 미국,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당했던 역사적 배경에 의한 외국군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둘째, 당시 이슈가 되고 있던 코피노 문제로 불편한 감정과 함께, 한국 남자들이 여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한국군이 들어오면 필리핀 여자들이 어려움을 당할 수 있다는 일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셋째, 긴급구호 시기가 지난 재해복구 시기에 군인들이 들어와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라는 일부 UN기관과 NGO(비정부기구), 현지 지방자치단체들의 냉소적인 반응도 걸림돌로 작용했다.넷째, 현지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이었다. 아라우부대가 파병된 타클로반 지역은 필리핀 정부가 파병 요청을 한 지역이 아닌 우리가 선정한 지역이었고, 현 필리핀 대통령의 정적이라 할 수 있는 이멜다 여사의 고향이자 정치적 배경이 되는 지역으로 현 정부에 비우호적인 지역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임무수행을 잘하여 주민들의 호응이 좋다고 하더라도 한국군의 파병이 현 정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미지수였다.

  

12월 초 현지정찰 간에 확인된 이러한 부정적 요소를 조기에 해소하고 현지 주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작전 초기부터 확실한‘임팩트’를 줄 수 있는 전략이 필요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먼저 상대방을 감동시켜라” 라는 말이 있듯이 주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전략의 중점을 주민 감동'에 두고 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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