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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단 하나뿐인

  • 기사입력 2021.08.29 21:44
  • 기자명 김희재 작가
▲ 김희재(수필가,한국어 교육 전문가)     

세계에서 가장 깊고 맑은 물로 유명한 바이칼호에는 숨은 명물이 많았다. 그 중엔 우리말 발음으론 전혀 다른 의미가 되는 ‘오물’이라는 이름을 지닌 생선도 있었다. 오물은 이 지구상에서 오직 이 호수에서만 사는 청어과에 속한 물고기였고,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였다. 특히 바이칼호 주변 지역 출신 사람들에게는 유년의 추억을 소환하는 그리움이고, 향수(鄕愁)를 달래주는 고향 음식이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오물은 바이칼호 지역을 넘어 시베리아를 대표하는 먹거리가 되었다. 대개 훈제해서 굽거나 꾸덕꾸덕 말려서 먹었다. 

  선착장 옆에 우리나라 시골 장터 같은 작은 시장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잣, 인형 등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은 거의 개업 휴점 상태였고, 복판에 떡하니 자리를 잡은 생선구이 가게 두 집만 북적거리며 분주했다. 연기가 위로 빠지게 만들어 놓은 커다란 화덕 앞에서 남자들이 부지런히 생선을 구워냈다. 조금 이른 아침 시간인데도 좌판 위에는 다 구워진 민물 생선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훈제로 구운 오물이었다. 누구도 생선 기름 타는 비린내를 탓하지 않는 걸 보면 구운 오물이 시장의 대표 품목임이 분명했다. 

  시장을 한 바퀴 돌아 보고 나오는 길에 금방 구워낸 따끈한 오물을 넉넉하게 샀다. 기름종이에 둘둘 말아준 생선의 값이 생각보다 많이 저렴해서 놀랐다. 배를 타고 가면서 점심 식사에 곁들여서 먹었는데, 내 입엔 딱 청어 맛이었다. 내장도 안 뺐고, 잔가시가 많아서 먹기가 사나웠다. 아무 추억도 없는 내게 오물은 그저 흔히 먹는 만만한 생선이었다. 대충 살만 발라 먹고 버려도 아깝지 않은 가격이 고마울뿐이었다.

  10월 초순인데도 불구하고 바이칼호에는 이미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레이트 바이칼 트레일’(Great Baikal Trail) 중에서 가장 경관이 좋은 구간을 골라 12km 정도 걸을 예정이다. 

  원래 이 선착장에서 ‘그레이트 바이칼 트레일’의 여러 구간을 오가는 여객선을 탈 수 있었는데, 동절기(冬節期)를 앞두고 정기운항이 멈추었다. 겨울엔 호숫물이 꽁꽁 얼어서 배를 띄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호수 저편에 있는 산책로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작은 배를 하나 전세 내야 했다. 

  ‘시베리아의 푸른 진주’라고도 불리는 호수는 아주 맑고 잔잔했다. 바이칼 탐방로를 품고 있는 산은 온통 노을빛 장관이었다. 우리는 배를 대기 적당한 기슭에서 내려 곧장 산등성이로 올라갔다. 거기엔 호수를 따라 빙 돌 수 있는 좁은 산책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자작나무와 잎갈나무 잎이 전부 노랗게 물들었다. 언제든 낙엽 되어 쌓일 준비를 다 마친 절정의 색깔이었다.

  처음 걷기 시작한 지점에서는 길이 판판하고 좋았는데 갈수록 점점 울퉁불퉁 사나워졌다. 물가에 바짝 붙은 비스듬한 능선 위에 난 좁고 가파른 길엔, 만만히 의지하고 붙잡을 수 있는 안전장치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행여 미친 바람이라도 불면 그대로 날려가 호수에 수장될 것 같아서 무서웠다. 

  다행히 자작나무 숲에 햇살이 가득하고 바람도 한 점 없어서 좋았다. 하늘이 눈이 시리게 푸르니 호수의 물도 덩달아 맑은 청록색으로 빛났다. 나는 발끝에 온 신경을 다 모으고 비탈길을 조심조심 걸었다. 사실 우리가 도착하기 전 며칠 동안 바이칼호 인근에는 진눈깨비와 바람이 겹친 사나운 날씨가 계속되었다. 오늘 새벽에야 간신히 해가 반짝하고 바람도 잦아들었다. 산책길이 미끄러워 위험할까 봐 인솔자는 여기로 오는 내내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막상 와 보니 걷기 딱 좋게 보송보송 말라 있었다. 

  내가 어릴 적부터 간직해 왔던 버킷리스트를 환갑 진갑 다 지난 지금에야 지우게 되었다. 그저 막연한 꿈으로만 여겼던 바이칼호를 내려다보며 걷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나는 일행을 따라 부지런히 걸으면서 눈으로 본 풍경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카메라에 담으려고 애썼다. 

  걷다 보니 커다란 나무에 무심하게 걸려 있는 작은 팻말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다. 네모반듯하고 진회색과 황토색으로 얼룩덜룩하게 칠한 목판(木板)에 까만 글씨가 가득했다. 러시아어로 쓴 것이라 암만 들여다봐도 무슨 말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걸 보고는 한국말을 잘하는 현지 가이드가 다가와서 친절하게 번역해 주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기(自己)를 보십시오. 여기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바이칼호입니다.’

 처음엔 동네 철학자가 써 놓은 뻔한 글귀라 여겨 그냥 듣고 흘렸는데, ‘걸음을 멈추고 자기를 보라’는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 바람에 남은 코스를 걷는 내내 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무슨 일이든지 목표가 정해지면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하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내놓고 자랑할 만한 것도 없으면서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만큼 종종걸음치며 살았다. 날마다 반복되는 먹고사는 일에 치어서 한가하게 나를 돌아볼 겨를이 별로 없었다. 내겐 언제나 가족이 먼저였고, 일이 우선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내 삶 속에서 나 자신을 가장 배려하지 않았다. 절대로 닮고 싶지 않았던 옛날 어머니들처럼 병들어 눕기 전에는 내 몸을 아낄 줄 몰랐다. 엄마, 아내, 며느리, 딸 등의 역할에 충실하려면 나의 희생(犧牲)과 헌신(獻身)은 당연한 덕목이라고 채근하기도 했다. 이는 자라면서 학습된 유교적 사고의 틀에 갇힌 탓도 있고, 평생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까닭이기도 했다.

  그런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객관적으로 나를 조명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어쩌면 나무에 달린 그 글을 보게 된 것부터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내 삶에 쉼표 하나 제대로 찍어 주시려고 거기에다 예비해 놓으신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세상에 단 하나인 것이 어디 바이칼호뿐이랴. 

  산책을 마치고 다시 배에 오르며 나는 팻말을 쓴 그 사람에게 이렇게 화답했다. ‘덕분에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를 다시 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진짜 나답게, 나만의 속도로 쉬엄쉬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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