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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운동장

  • 기사입력 2021.09.08 16:24
  • 기자명 이희영
▲ 方山 이 희 영  

오래전 을지로 6가에 있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갔었다. 마치 우주선과 같은 모양으로 멋있게 지어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부드러운 곡선으로 푸른 잔디밭이 있고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공원도 있어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이었다. 내부에는 역사관, 기념관 같은 볼거리가 있고 편안히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에 푹신한 소파들도 놓여 있다. 또한 먹거리도 풍부하고 쇼핑 명소도 있어 하루를 보내는 데는 아주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좋은 곳이지만, 내게는 아주 특별하고도 많은 추억을 가진 장소이기에 더더욱 좋은 곳이기도 하다. 내가 어렸을 적, 그곳은 서울운동장이 있던 자리이다. 서울운동장은 88서울올림픽 때 잠실운동장이 생기면서 동대문운동장으로 바뀌었다가 오세훈 시장이 계획해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만들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산에서 살던 우리 집은 서울로 올라와서 산 곳이 서울운동장 뒤쪽이었다. 서울운동장은 서울에서는 단 하나밖에 없던 넓은 운동장이었다. 그 안에는 축구장이 있고 야구장도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정구장이 있고 끝 쪽으로는 수영장도 있었다. 서울에 한 곳밖에 없었던 유일한 수영장이었다. 

 그 시절에는 지금과 같이 마땅히 놀만 한 장소나 시설이 없었다.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골목길에서 축구나 야구를 하고 딱지치기나 구슬치기 같은 놀이들을 하며 놀았다.

 바로 옆에 서울운동장이 있으니 나는 늘 운동 경기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모든 운동 경기는 그곳에서 열리기 때문에 선수들이 연습하고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흉내 내며 따라 하곤 했다. 

 축구장에서는 축구 외의 모든 육상경기가 치러지고 겨울철이 되면 장내에 물을 부어 얼렸다. 빙판으로 만들어 스케이트장으로 활용했다. 그야말로 다목적 운동장이었다. 겨울 방학이 되면 매일같이 스케이트를 타려 다녔다. 그때 익힌 스케이팅 덕분에 후에 육사 때나 초급장교 시절에 스케이팅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었다.

 그때 겨울은 왜 그리 추운지! 겨울철이면 혹한의 추위에 땅 위에 모든 것은 다 꽁꽁 얼어붙었다. 스케이트장을 가지 않을 때면 동네 골목길에서 변변한 방한화도 없고, 털이 뽀송뽀송한 손장갑도 없이 온종일 놀다 보니 겨우내 내 손과 발은 늘 동상에 걸려 살갗이 찢어져 피가 나고 근질거리는 고통으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매일매일 밖에 나가 놀았다.

 여름철이면 서울운동장 내에 있는 수영장에서 살다시피 하였는데 매일같이 물속에서 헤엄치고 놀다 보니 귀에는 늘 물이 차서 곪아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어머니는 “희영아, 이리 와 봐, 여기 누워~” 그리고는 나를 허벅다리에 머리를 대고 눕게 하고 흰 솜을 말아 붙인 귀이개로 고름과 엉켜서 덩어리진 귀지를 닦아 내면서 “어휴, 이 돼지야!” 그러시곤 했다. 그래도 다음날 또다시 수영장을 찾지만, 금쪽같은 외동아들이 귀가 곪아 터져 큰일이 나게 생겼는데 어머니는 좀 말리기라도 하련만 그냥 내버려 두니 내가 돼지가 아니라 내 어머니가 돼지라는 생각이 든다. 

 가을이 되면 육·해·공군사관학교의 3사체전이 매년 열리곤 했는데 그 일사불란하고 현란한 응원과 함께 ‘쿵쾅쿵쾅’ 울려대는 군악대 소리와 서로 뒤질세라 질러대는 함성과 응원가 소리에 내 어린 마음도 ‘쿵쾅쿵쾅’ 뛰었다. 

 아무리 내가 구경하고 싶어도 입장객이 제한되어 운동장 정문이 잠겨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 화려한 응원과 경기를 그냥 두고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서울운동장은 벽돌 담장으로 둘러져 있었다. 운동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담장을 넘어가거나, 담장 밑에 땅을 파서 개구멍을 만들어 기어들어 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이 두 가지 방법으로 사관학교의 열띤 운동 경기와 함께 ‘짝짝짝 삼삼칠 박수’ 소리와 현란한 카드섹션을 보면서 어린 내 마음은 흥분되고 황홀했었다. 

 그런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육군사관학교를 들어갔다. 도둑처럼 담장을 넘어 사관학교 운동경기와 열띤 응원을 보면서 어린 마음의 동경이 되었던 육군사관학교를 들어갈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사관생도로서 서울운동장 육사 응원단석에 앉아 어린 시절 서울운동장에서 펼쳐진 화려한 응원을 지켜보던 생각을 하면서 목이 터져라 응원했었다.

 나이가 들어 군에서 만기 전역을 하고 어릴 때 추억이 담긴 서울운동장과 내 놀던 그 골목길을 찾아보았다. 여기인가? 싶은 자리엔 옛 모습은 간 곳 없고 높고 큰 쇼핑센터만이 세워져 있다. 매년 가을 이맘때면 열렸던 3군사관학교 체전이 무슨 연고로 사라져 버렸다. 젊은 사관생도들의 포효했던 함성 소리가 듣고 싶다. 꽁꽁 얼어붙은 골목길에서 공차기하던 친구들도 보고 싶다. 곪아 노란 고름이 나오는 내 귀를 닦아주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추석이 다가오니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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