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아라우(태양)의 후예(7회) "빨리 친해지는 방법은 '갑'이 아니라 '을'"

“낯선 외국 땅에서 현지인의 마음을 얻는 것은 남녀 간의 사랑만큼 어렵고 정성이 필요한 것 같다.”

  • 기사입력 2021.09.17 20:34
  • 기자명 이철원
▲ 2013년 발생한 필리핀 태풍 하이옌 피해복구 합동지원 단장 및 파병부대장 전 이철원 대령

‘갑'이 아니라 '을'

아라우 부대 임무를 수행하면서 남을 돕는 것이 내 마음 같지 않고 쉬운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배웠다.

현지 정찰 간에 만난 한 초등학교 교사가 "일부 구호단체들이 자기 것도 아닌 다른 사람 것을 가져다 전달해 주면서 생색내고 우리를 무시 한다” 라는 말을 했다. 워낙 많은 여러 나라의 구호단체와 인원들이 활동하다보니 구호품을 분배할 때 현지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우리도 좋은 일 한다고 도와주면서 잘못하면 오히려 욕을 먹을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많은 국가와 단체에 소속된 인원들이 전쟁터보다 더 참혹한 이곳에서 태풍 피해자들을 도와주고 있었지만, 현지인들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면 도와주는 의미가 퇴색될 것이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은 만족감과 기쁨, 주변으로부터 인정 등 유익함을 얻지만, 반면에 도움을 받는 사람은 필요가 충족되는 것에 고마워하면서도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상할 수도 있다. 따라서 도와주는 사람은 도움을 받는 사람이 있기에 이러한 돕는 자의 유익을 누리게 되므로 도움의 기회를 제공한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현지인들을 도와준다고 하면서 거만한 마음을 가지고 경솔한 말과 행동으로 주민들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면, 겉으로는 감사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우리의 도움을 진심으로 고마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곳에 도와주러 왔다”라는 우월의식을 버리고 '갑'이 아니라 '을'이며, 도움을 받는 현지인이‘을’이 아니라‘갑’이다”라는 마음가짐으로 행동할 필요성이 있었다. 나는 지휘관으로서 수시로 이를 병력에게 강조하며 생활화 하도록 했다. 이러한 ‘을’의 입장을 헤아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 하는 마음가짐 하나가 성공적인 임무수행의 밑거름이 됐다.

▲ 아이들 눈 높이로 몸을 낮춰 초코파이를 주는 아라우 부대원들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냥 느낌상 좋은 사람은 좋은 것이다. 그런데 좋아지려면 먼저 친해져야 하는데 언어가 같든지 종교가 같으면, 낯선 사람 특히 외국인과도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다.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미군 내에 회교도들은 문화적, 언어적 통역관으로서 주민들과의 교량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미군 수뇌부는 분쟁지역에서 이들의 역할에 대해 인정하고 정보획득과 미군과 주민 사이의 갈등을 완화시키는 등 성공적인 작전을 위해 아랍계 군인들을 모병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카톨릭 신자가 많은 필리핀에서도 최초 상륙지원함에서 생활할 때 부터 천주교 신자는 현지주민들과 같이 지붕이 날아간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고 개신교 신자들도 한 달에 한두 번은 현지교회에서 주민들과 함께 주일 예배를 드렸다. 또한 모든 행사를 기도로 시작하는 이곳 풍습에 따라 주민들과 행사시에는 현지 신부나 군종목사가 기도를 했다. 이렇게 한국군이 자기들과 같은 종교를 믿는다는 사실은 현지인들에게 친구로서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 어린이들에게 학용품을 나눠주는 아라우 부대원들 

또한 “필리핀은 한국과 같이 가족 중심으로 결속력이 강하다. 어른을 공경하고 춤과 노래를 좋아한다, 손기술이 뛰어나다, 인정이 있고 인간미가 넘친다." 등 한국과 필리핀의 유사점을 의도적으로 언급하여 친근감을 갖도록 했다. 간혹 주민들이“필리핀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고 물으면,“밝고 명랑하다.”, “친절하며 사교적이다.”등 긍정적인 표현과 칭찬을 해 주었다.

그 외에도“한국과 필리핀은 똑같이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공산주의와 맞서 싸운 혈맹으로 1950년도 한국전쟁부터 지금까지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필리핀에 한국인 관광객이 제일 많이 방문하며 한국에는 필리핀 근로자가 54,000여 명으로 외국인 근로자 중에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언급하며 한국과 필리핀이 매우 밀접한 관계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나를 수행하는 운전병과 통역장교는 필리핀에서 대학을 나와 필리핀어(따갈로그어)를 잘하는 인원들로 선발해 가급적 공식 행사에서 영어보다는 현지어로 통역하도록 했고 나도 잘하지는 못하지만 현지어를 많이 사용하면서 친근감을 주려고 노력했다.

실제 필리핀 사람들은 순박하고 인정이 많아 존중하고 인정해 주면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으니 우월감보다 따뜻한 인간미로 교류하여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이렇듯 모르는 사람이 친해지기 위해서는 내가 낮아져야 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가 먼저다.

▲ 아라우 부대원들이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급식을 주는 장면  

사소한 요청사항에 대해서도 반드시 응답하다.

재해복구지원을 하면서 주민들이 지원요청서를 너무 많이 보내서 고민거리였다. 개인부터 단체에 이르기까지 아라우부대 캠프로 직접 도움을 요청하는 문서를 위병소에 매일 두고 가고, 길을 가다가도 한국군을 보면 요청문서를 주곤 하는데, 요청서대로 다 지원할 수 없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주민들은 외부의 도움과 지원으로만 살다 보니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식'의 요청을 많이 했다. 지원 여부에 대한 답장이 없어도 특별히 불평이나 원망하지 않았지만 간혹 요청해서 지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성향이 있었다.

관공서도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정부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후원 가능한 단체부터 찾았다. 이는 과거 식민지 지배를 받은 역사적 배경과 오랫동안 이어온 정부에 대한 불신의 결과였다. 따라서 태풍 피해가 발생한 지 9개월이 지났는데 정부예산이 아직 투입되지 않아 학교나 주립병원, 보건소, 마을회관 등 관공서들이 복구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이렇게 정부가 예산지원을 하지 않는 이유는 UN, NGO, 종교단체 등으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받기 위해서다. 라고 얘기하는 주민도 있었다. 실제 폐허가 된 대부분의 학교, 병원 등은 정부예산이 아닌 외부 단체의 지원에 의해 복구되고 있었다.

우리는 개인, 민간단체, 행정기구 등에 의한 모든 요청문서를 검토하여 지원이 불가 시에는 그 이유와 사과의 내용을 작성하여 일일이 답신을 보냈다. 지원이 불가한 대부분의 이유는 작전지역이 아니거나 개인 집 수리, 마을회관의 농구장 복구, 마을축제 지원 등의 재해복구와 공공목적이 아닌 경우들이었다. 그러나 작전지역이 아니더라도 의료지원과 관련된 내용은 반드시 지원하였다. 임산부 등 위급환자는 앰블런스를 보내었고, 발이 썩어 들어가 절단을 해야 하는 환자 등 거동이 어려운 환자는 별도로 방문하여 진료했다. 

또한 부대에서 수술할 수 없는 환자에 대해서는 외부병원의 수술비를 지원하기도 하였다.주민들은 요청편지를 보낸 후 지원이 불가하다는 우리의 답장에“이렇게 답신을 받기는 처음이다. 우리가 지원은 못 받았지만 이에 대해 충분히 이해했으며 관심을 보여준 한국군에 감사하다”라고 했다.

이와 같이 아라우 부대는 타 기관 및 단체와 다르게 지원 요청문서에 대해 무시하지 않고 일일이 공식적인 문서로 응답함으로써 현지 기관 및 주민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주었다.

▲ 어린이들과 놀아주는 아라우 부대원  

지방자치단체장과 필리핀군을 높여주다

현지인들을 만나면서 인간관계 불문율인“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내가 높임을 받으려면 남도 높여 주어야 한다"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현지 방송매체와 인터뷰시에는 필리핀 정부가 태풍피해 복구지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팽배해 있으므로, 한국군이 필리핀 대통령의 요청에 의해서 왔고 필리핀 정부가 태풍 피해복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했다. 공식 또는 비공식 행사에서 연설을 하거나, 주민들과 미팅을 할 때는“주지사와 시장이 훌륭한 지도자이며 진정으로 주민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칭찬하며 높여 주었다. 

또한 건물복구나 의료지원, 구호품 분배시에도“특별히 시장이 요청해서 지원 한다”라고 말하여 시장의 체면과 위신을 세워주었다. 그러다 보니 지자체장들은 한국군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고 무슨 행사만 있으면 나에게 참석하여 연설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장들과 주민들 앞에서는 필리핀군을 항상 칭찬하여“필리핀군이 경계지원을 잘하여 우리가 안전한 상태에서 임무수행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완공식에서는 나보다 먼저 필리핀군 대표자가 연설하도록 했으며 시장과 학교장의 축사에는 우리뿐 아니라 필리핀군에게도 감사하다는 표현을 넣도록 요청했다.

 리 장병들에게도“필리핀군 장병들과 항상 친하게 지내고 자존심과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언행에 조심하라”라고 수시로 교육했다. 작업장에서 간식은 우리와 똑같이 필리핀군에게 분배했으며, 군부대에 컴퓨터, 구호장비 등 구호품을 우선적으로 지원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정사회
경제정의
정치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