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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 기사입력 2021.09.22 10:39
  • 기자명 이오장
▲ 시인 이오장   

           경계선

  

                                한순안

 

사과를 깎다가

무심코 경계선을 넘어버린

날 선 칼날에 손가락을 베었다

 

손가락에 입은 상처야

벌겋게 부어오르다가 쿡쿡 쑤시고

곪아 터지거나 가려우면 그뿐이지만

 

작심하였거나 무심하였거나

날이 선 언행에 베인 상처는

일회용 밴드로 봉합이 어려운 법

아무리 새살이 돋아도 마음에 흉터가 남는다

 

당신과 나 사이에도

지켜야 할 안전거리

넘지 말아야 할 중앙선이 있건만

가끔 빨강 신호등 무시하고

전력 질주하다 상처를 낸다

 

마음에 입은 상처는

진심을 담은 사과가 명약이지만

사과를 건네줄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닫혀 있다

경계선은 양쪽을 나눈 것을 말하지만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인간은 태초부터 혼자였기 때문이다. 아담과 이브 시절에 경계선이 있었다면 인류는 그것으로 끊겼거나 영원불멸의 시간을 두 사람이 가졌을 것이 틀림없다. 경계선이 없었기 때문에 둘이 하나가 되고 그 하나가 분열하며 인류는 지구를 차지하였다. 그런 경계선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인류가 남을 의식했을 때부터다. 수가 많아지자 내 것을 알게 되고 남의 것을 탐하는 욕심이 생겨 자연스럽게 넘지 말아야할 선이 생긴 것이다. 그 후부터는 사람이 사는 곳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경계선이 생겨났고 지켜야 할 약속이 점차 늘어났다. 그 경계선은 물질만이 아닌 마음에서 시작되고 속에 품은 뜻이 밖으로 노출되어 엄격한 잣대로 측정하게 되는데 마음의 경계선은 물질의 경계선보다 더 엄격하고 그만큼의 상처를 입는다. 한순안 시인은 그러한 사람의 심리를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손가락의 상처쯤이야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저절로 치유되지만 사람 간의 경계선이 침범당하면 설사 치유된다 해도 흉터가 깊숙이 남아 원수가 되던가 아니면 죽음까지 불사하는 행동으로 옮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 간의 경계선이 무너져 상처를 받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진심을 담은 뉘우침과 사과가 명약이지만 실제로는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게 사람이다. 한순안 시인은 이것이 안타깝다. 경계선을 내세워 경각심을 주고 그것을 교정할 방법을 제시하였다. 사람에게 얻은 마음의 상처는 얼마든지 치유할 수 있다는 신념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경계선이 없는 사회가 아담과 이브의 시절로 돌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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