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중대재해법 시행령 제정안 확정···경영계, 노동계 모두 반발

직업성 질병 범위에서 뇌심혈관계 질환 등 제외
경영계, "현장 혼란 가중"···노동계, "노동자 시민 요구 외면"

  • 기사입력 2021.09.28 14:06
  • 기자명 김종덕 기자
▲ 사진 연합뉴스

중대재해법 시행령 제정안이 최종 확정됐다. 최종 시행령 제정안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직업성 질병 범위에서 뇌심혈관계 질환 등이 제외됐다. 그러나 경영계와 노동계가 모두 중대재해법 시행령 제정안에 대해 반발하고 있어 향후 진통이 예상된다. 

중대재해 발생시 경영 책임자 처벌···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
정부는 28일 국무회의에서 중대재해법 시행령 제정안을 의결했다. 중대재해법은 노동자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밝혀지면 처벌하는 법이다.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다. 단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시행령 제정안은 법 시행 세부 사항 등을 규정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지난 7월 12일부터 8월 23일까지 입법 예고 기간을 통해 경영계와 노동계의 의견을 수렴했다. 

당초 입법 예고 당시 논란이 됐던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인 직업성 질병의 범위는 그대로 유지됐다. 중대재해법은 동일 유해 요인에 따른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할 경우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인 중대 산업재해로 규정했다. 시행령 제정안은 이에 해당하는 질병으로 화학적 요인에 의한 급성중독을 포함, 24개 항목을 명시했다.

특히 노동계가 뇌심혈관계 질환, 근골격계 질환, 직업성 암 등을 직업성 질병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지만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시행령 제정안은 직업성 질병 항목에 포함된 열사병의 의미를 '고열 작업 또는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서 하는 작업으로 발생한 심부 체온 상승을 동반하는 열사병'으로 구체화했다.

경영 책임자 등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도 일부는 입법 예고안보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규정됐다. 유해·위험 요인을 확인하고 개선하는 업무 처리 절차를 마련해야 하는 의무와 관련해 제정안은 해당 절차에 따라 유해·위험 요인의 확인과 개선이 이뤄지는지 반기 1회 이상 점검해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안전보건에 관한 인력 등을 갖추는 데 적정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의무와 관련해서도 해당 예산의 의미를 '재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안전보건에 관한 인력, 시설, 장비 구비와 유해·위험 요인의 개선에 필요한 예산'으로 구체화했다.

이 밖에도 시행령 제정안은 안전보건 관리 책임자의 업무 수행에 필요한 권한과 예산을 부여할 것을 명시하는 등 업무 수행 지원 방안을 구체화했고 안전보건 교육의 내용과 절차도 정비했다.

시행령 제정안 확정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중소기업 경영 책임자 등도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가이드북을 발간하고 중대재해법의 해설서를 배포할 예정이다. 또한 중대재해법 위반 사건 수사 담당 근로감독관을 대상으로 수사 실무 교육 등도 시행한다. 

경영계, "모호한 규정으로 산업현장 혼란 가중"

경영계는 "모호한 규정으로 산업현장의 혼란을 가중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유예기간 부여, 재개정 등 보완책을 촉구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경제계의 간절한 요청에도 시행령 제정안이 불명확성을 해소하지 못한 채 국무회의를 통과한 것에 유감을 표한다"며 "모호한 규정으로 산업현장 혼란이 가중됨은 물론 경영 위축, 불필요한 소송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안전 관리 역량이 부족한 영세기업일수록 더 큰 애로를 겪을 것"이라며 "정부와 국회는 안전보건 조치 내용을 명확히 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준수를 위한 준비기간을 고려해 유예기간 부여 등의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경영계는 그동안 불분명한 경영책임자 개념과 의무내용 등이 시행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돼야 한다고 수차례 건의했다"면서 "이러한 산업계의 우려가 충분히 검토·반영되지 않은 채 통과해 매우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근본 이유는 중대재해법 자체의 모호성과 하위법령으로의 위임 근거 부재 등 법률의 흠결"이라며 "중대재해 예방의 실효성을 높이고, 과잉처벌의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개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번 시행령은 사업주가 안전보건 관계 법령 전반을 준수하도록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전문가도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사업주 의무를 중소기업이 알아서 준비해야 하기에는 법 시행이 4개월 남짓 남은 상황에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세부 가이드라인을 조속히 보급하고 계도 중심으로 현장을 지도하면서 최소 1년 이상의 준비 시간을 줘야 한다"며 "사업주에 과도한 불안감을 조장하는 것은 재해 예방을 어렵게 만들 수 있으므로 더욱 근본적으로는 과도한 처벌 등을 규정한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들의 우려가 충분히 해소되지 않은 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확정된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평가했다.

대한상의는 "시행령은 안전보건 의무와 관계 법령 등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기업들은 법을 어떻게 준수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라며 "정부는 하루빨리 명확하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보완 입법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노동계, "노동자 시민의 요구 외면"

노동계는 "노동자 시민의 요구를 외면했다"며 문재인 정부를 강력히 규탄하고 있다. 민주노총·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반쪽짜리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사회적 지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경영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를 비롯한 노동시민사회 및 전문가의 수천 건의 의견서가 제출된 바 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그러나 '법령 점검의 민간위탁 금지, 직업성 질병의 전면 적용, 광주 학동 붕괴 등 적용'은 끝내 외면한 시행령이 통과됐다"면서 "급성 중독으로만 한정한 직업성 질병의 범위로 과로나 직업성 암으로 사람이 죽어 나가야 경영책임자가 처벌 대상이 되고, 식물인간으로 살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은 계속되게 됐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1년에 3명 이상 급성 중독이 발생해야 적용되는 시행령으로는 단 한 건도 적용대상이 될 수 없으니 전면 적용해야 한다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철저히 외면당한 것"이라며 "법령에 대한 점검을 민간기관에 위탁하도록 하는 안전의 외주화를 금지하라는 요구도 거부됐다.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에서 수차례 적발됐던 전문기관의 부실 점검, 기업과의 유착 현실은 깡그리 무시되고 점검의 외주화로 경영책임자에게 오히려 면죄부를 주는 시행령이 제정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시행령에 광주 붕괴를 명시하라는 요구도 거부됐다. 시민의 생떼 같은 목숨을 앗아간 제2, 제3의 광주 학동 붕괴 참사가 발생해도 진짜 책임자 처벌은 요원하게 된 것"이라면서 "시행령 제정은 죽음의 고리를 끊는 정부의 의지를 확인하는 시험대였다. 그러나 피해자와 노동자 시민들이 입법예고 의견서를 제출하고, 토론과 공론의 장을 요구했으나 시민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은 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5인 미만 적용 제외와 인과관계 추정 조항 삭제를 비롯해 직업성 질병, 광주 붕괴, 민간위탁 금지 포함 등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즉각 개정 ▲작업중지권 보장, 노동자와 시민의 참여 보장 강화, 위험의 외주화 금지, 전체 노동자에게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적용, 작업 중지 명령 개정 등 근본적인 법 제도 개정과 건설안전특별법 즉각 제정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정부의 감독행정 전면 개혁, 산안법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위반 사업주 강력 처벌을 주문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정사회
경제정의
정치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