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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DNA를 찾아서(21회) 한민족 역사 기록의 시작:환국, 환인

  • 기사입력 2021.10.04 18:46
  • 기자명 김석동

 

▲ 필자 김석동 

한민족 역사와 관련한 기록에 처음 나타나는 나라와 통치자라 할 수 있는 이름은 ‘환국桓國’, ‘환인桓因’이다. 아직까지 유적이나 유물, 관련 사서들에 의해 나라의 존재 시기나 위치 등을 확증할 수는 없으나 여러 사서에서 이 이름에 대한 기록들을 남기고 있다. 따라서 한민족 상고 역사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 가야 할 부분이다.

고려 충렬왕 때 일연(1206~1289년)이 지은 《삼국유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고조선 이전에도 나라 또는 통치자가 존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옛 기록에 이르기를, 옛적에 환인桓 이 있었다(제석을 이른다). 서자부에 환웅께서 계셨다. 항상 천하에 뜻을 두었으며, 인간 세상을 탐구하였다. 아버지께서 자식의 뜻을 아시고 삼위태백을 살펴보시니 가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 곳이라. 이에 천부인 삼개를 전수하시고, 그 이치로써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께서 무리 3천 명을 이끌고 가셨다. 태백산 정상(즉 태백은 현재의 묘향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가셨다. 이름하여 신시이며, 환웅천왕이시다.”1

이 기록은 사학자이자 고고학자인 손보기 교수가 보관하다 연세대에 기증한 조선 초기 간행본인 《삼국유사》 파른본의 내용이다. 한편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된 조선 중종 때 간행된 정덕본正德本에는 환인이 환국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조선조에 발간된 《삼국유사》의 판본들에서는 두 가지 기록(환인-환국)이 나타나고 있다. 아마도 조선 시대에는 상고 역사의 시작인 환인, 환국을 같이 인식하고 있었던 데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수산修山 이종휘는 조선 후기 영조·정조 때의 학자로 《수산집》이라는 문집을 남겼다. 이 문집의 일부인 《동사東史》에서 고조선, 삼한, 부여·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다루고 있는데 한국사에서 처음으로 <단군본기檀君本記>를 서술했다. 그는 고조선을 신화가 아닌 실존했던 나라로 인식하고 고구려 중심의 고대사를 전개했다. 그리고 환인-환웅-단군檀君-부루夫婁로 이어지는 세계世系를 밝혔다. 고조선 이전에도 세계가 있었다는 얘기다.

다음은 《동사》 <단군본기>의 기록이다. “조선왕 단군의 할아버지는 신인神人 환인桓因이다. 환인에게는 환웅이라는 서자가 있었다. 환웅은 태백산에 살았는데 신웅神熊의 이적으로 박달나무 아래서 (단)군을 낳았기 때문에 단군檀君이라고 이름하였다.”

1462년 조선 세조 8년 권람이 쓴 《응제시주應製詩註》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옛 기록에 이르기를 상제上帝 환인에게 서자부에 대인 아들이 있었는데 웅雄이라 불렀다. 아래 세상으로 내려가 교화하고자 뜻이 있었기에 천부인을 받으시고 3천 명을 거느리고 신단수 아래로 내려 오셨으니 이름하여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불렀다.”

영의정을 지낸 조선 후기 현종·숙종 때 문인 남구만은 《약천집藥泉集》에서 《삼국유사》를 인용하여 환국의 존재를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옛 기록의 설명에 이르기를 옛적에 환국이란 나라가 있었다. 제석을 이른다. 서자부 환웅께서 계셨다.”

조선 영조·정조 시대의 성리학자 유광익은 그의 호를 따서 지은 《풍암집화楓巖輯話》에서도 《삼국유사》의 환국을 인용하고 있다. 내용은 《약천집》과 같다. 

조선 중기 중종·인종 시대의 문신인 정황의 《유헌집遊軒集》에는 다음의 기록이 있다.“책상 위의 티끌은 3년의 세월이 두텁게 쌓였구나. 나라의 근본이 하나의 깃발로 휘날리는구나. 어찌 환국을 삼가 기억하지 않겠는가?”

조선 후기 영조·정조 시대의 문신 이복휴는 상고 시대부터의 우리 역사를 시로 읊은 《해동악부海東樂府》에서 환국을 기록했다. “옛 기록에 이르기를 옛적에 환국이란 나라가 있었다. 서자부 환웅께서 계셨다. 환국에는 환인이 계셨고, 환인에게는 환웅께서 계셨다. 부친께서 자식에게 명하기를…”

조선 시대 후기 순조·헌종 시대의 문신 홍경모는 그의 문집 《관암전서冠巖全書》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잡기에 이르기를 조선 이전에 환국이 있었으며, 제석의 서자부에 환웅께서 계셨다. 천부삼인을 전수받으시고 그 무리들과 더불어 태백산 아래로 이주하시니라. 그 산 위에 신단수가 있었다. 옛날에 환웅은 신시의 천왕이셨다. 그리고 환웅의 자손이 단군이라 불렀다.”

이외에도 고려 충렬왕 13년 1287년에 이승휴가 쓴 《제왕운기》, 《조선왕조실록(세종, 단종, 성종, 선조, 현종, 영조, 정조편)》, 《세종실록지리지》 등에도 환인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아래는 위서 논란이 있으나 주목할 만한 사서들이다. 여기서 환국과 환인의 기록을 살펴보자.

신라 시대 승려 안함로가 지은 《삼성기 상三聖記 上》과 고려 공민왕 때 원동중이 지은 《삼성기 하三聖記 下》, 고려 말 행촌 이암李嵒이 지은 《단군세기檀君世記》, 이암의 현손이며 조선 연산군-중종 시대 학자인 이맥李陌이 편찬한 《태백일사太白逸史》, 고려 공민왕 때 범장范樟이 저술한 《북부여기北夫餘記》 등의 사서를 일제강점기인 1911년 계연수가 한 권의 책으로 엮어 《환단고기桓檀古記》라고 이름 지었다.

이 사서들에서 기술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삼성기 상》의 기록이다.

“우리 환국을 세운 것은 아주 오랜 옛날이다. 한 신이 사백력의 하늘에 있으면서 유일한 신이 되어 밝은 빛을 우주에 비추었다. 이에 권능으로 형체를 변하여 만물을 생기게 하였으며 오래 살면서 그것을 보고 항상 즐거워하였다. 지극한 기를 타고 다니니 묘함이 자연과 어울렸고, 형체가 없이도 보며, 하는 것이 없어도 만들며, 말하지 않고 행하였다. 어느 날 동녀 동남 800명을 흑수와 백산 땅에 내려 보냈다. 이때 환인은 감군이 되어 하늘에 살면서 돌을 쳐서 불을 만들어 음식을 익혀 먹는법을 가르쳤다. 이것을 환국이라 하며 환인을 천제환인씨 또는 안파견이라고도 한다. 7세를 이어 내려왔으나 그 햇수는 알 수가 없다.”

《삼성기 하》 에도 다음의 기록이 있다. “옛날에 환국이 있었는데, 백성들이 부유하고 또 수도 많았다. 처음에 환인이 천산에 살면서 도를 얻어 오래 살고 몸에는 병이 없었다. 하늘을 대신하여 사람을 교화하여 싸움이 없게 하고 사람들은 스스로 힘을 내어 일을 하므로 굶주림과 추위가 없었다. 혁서 환인, 고시리 환인, 주우양 환인, 석제임 환인, 구을리 환인으로 이어져 지위리 환인에 이르렀다. 

지위리 환인을 혹 단인이라고도 한다. 고기에 말하기를, 파내류 산 아래에 환인 씨의 나라가 있었다. 천해 동쪽 땅을 파내류국이라 한다. 그 땅의 넓이는 남북이 5만 리, 동서가 2만여 리인데 이것을 모두 환국이라 한다. … 7세를 이어 그 역년이 모두 3301년인데…”

또 《태백일사》에도 환국 기록이 있다. “전에 말하기를, 삼신의 뒤를 환국이라 하고 환국은 하느님이 사는 나라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삼신은 환국보다 먼저 있었으며 나반이 죽어서 삼신이 되므로 삼신은 영원한 생명의 근본이다. 사람과 만물이 다같이 삼신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삼신을 한 뿌리의 조상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환인이 삼신을 대신하여 환국의 천제가 되었다.”

“《삼성밀기》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파내류 산 밑에 환인 씨의 나라가 있었다. 천해의 동쪽 땅도 파내류국이라 하는데 그 땅의 넓이는 남북이 5만 리 동서가 2만여 리이다. 이것을 통틀어 환국이라 한다’.” “《조대기》에 이런 기록이 있다. 옛날에 환국이 있었는데 백성들의 생활이 부유하고 풍족하였다. 처음에 환인이 천산에 있으면서 도를 얻어 오래 살고 몸을 다스려 병이 없었다.”

1675년 조선 숙종 때 북애北崖가 쓴 《규원사화揆園史話》에도 관련된 기록이 있다. 《규원사화》는 고려 공민왕 때 이명李茗이 《진역유기震域遺記》와 40여 사서를 바탕으로 쓴 것이라 하는데 《진역유기》는 예로부터 존재하던 고대 사서 《조대기朝代記》를 보고 썼다고 한다. 이 사서는 1972년 국립중앙도서관의 이가원, 손보기, 임창순 3인의 고서심의위원이 1675년에 작성된 진본임을 확인하고 귀중본으로 지정한 책이다.

“상계上界에는 문득 하나의 큰神(신)이 있었으니 그는 환인이요 온 세상을 다스리는 무량無量한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발해 건국자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이 727년에 저술한 《단기고사壇記古史》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환씨전桓氏典에, 동방에 부여족이 태백산 부근에 흩어져 살았는데, 그중 환인은 관대하고 도량이 커서 가옥의 건축과 의복제도를 시작하고,아들 환웅을 낳으니, 그 뛰어난 모습을 호걸이라 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 상고사와 관련하여 고조선 건국 이전 최초의 나라 또는 통치자로 생각해볼 수 있는 환국-환인에 대해 여러 기록이 남아있다. 한편, 《삼성기 상·하》와 《태백일사》 등의 기록에 의하면 환국은 넓이가 남북 5만 리, 동서 2만 리에 달했다 한다. 또한 환국의 군장인 환인은 7대를 이었고 환국이 지속된 역년이 3301년이라 한다. 

단군을 군장으로 하는 고대 국가인 고조선마저도 한편의 민족설화나 신화로 치부되는 상황에서 기록이 남아있는 단군 이전의 상고 역사는 어떻게 평가받아야 할 것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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