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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 날을 무엇으로 기억하고 있나?

목사가 왜 그렇게 세상 직함이 많은지?
목사가 왜 그렇게 세상일로 바쁜지?

  • 기사입력 2021.10.31 12:42
  • 기자명 김승동 대표 기자
▲ 대표 기자 김승동     

10월의 마지막 날은 각자에게 어떤 날일까?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시월의 마지막 밤을"으로 시작하는 유행가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먼저 생각 나기도 할 것이다.   

또 '할로윈 데이'를 떠 올릴지 모르겠다. 이 할로윈 데이는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무덤에서 깨어나 돌아온다고 여기는 로마의 켈트 문화에서 유래된 것으로 찾아오는 죽은 사람들의 영혼들을 내 쫓기 위해 기괴한 복장과 분장을 하고 호박등을 켜놓은 집에 찾아가 사탕과 과자를 받는 풍습인데 우리나라에도 몇 년 전부터 들어와 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꽤 늘어나는 것 같다. 

그러나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10월의 마지막날인 오늘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종교개혁을 외친지 504년째 되는 날이다. 전세계 교회가 이를 기념하는 종교개혁 주일이다.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31일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의 수도사이면서 신학교수인 루터가 로마교회의 부패와 면죄부 판매 등의 부당성에 대해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대학 게시판에 써 붙이면서 시작됐다.

그 효과는 루터 자신의 예상을 뛰어 넘어 유럽 전체에 파급되는 대운동으로 발전하면서 각 나라마다 종교개혁이 이루어졌기에 교회마다 매년 10월 마지막 주일을 종교개혁 기념 주일로 지키고 개혁의 정신을 되새기고 있다.

▲ 면죄부를 파는 종교개혁 당시의 카톨릭교회와 신부들     

당시의 군주들은 십일조, 임직세 등 다양한 세금과 소작료 등을 로마교황청에 납부해야 했는데 독일의 경우는 그것이 국민 총수입의 40%나 돼 국내 재산의 유출을 막기위해서라도 루터의 종교개혁을 지지함으로서 루터의 종교개혁은 독일인들로부터 특별한 민족적 지지를 얻었다.

루터는 중세의 참회제도와 수도원에서 구원을 얻기 위하여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자기를 훈련했지만 그 고행은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인간적 노력을 더 하면 더 할수록 더 깊은 절망을 느꼈다. 그러다가 루터는 성경을 읽으면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는 말씀에 붙잡히게 됐다.

이것이 바로 “오직 믿음으로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이신득의(以信得義)’요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의 핵심 사상이자 종교개혁의 혼이였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속죄와 구원은 인간의 행위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①오직 믿음으로(Sola Fide) ②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③오직 은혜로(Sola Gratia) 라는 슬로건을 종교개혁의 3대 원리로 삼았다.

Sola의 의미는 모든 인간의 권위를 거부하는 신본주의 정신이다. 노회도 총회도, 교회나 목사나 장로나 그 어느 것도 이 Sola에 버금할 수 있는 지위나 권위는 없다. 모든 것이 성경의 권위 아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 아래 세상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어야 한다.

이러한 루터의 주장은 로마 가톨릭 교회 편에서 볼 때 대단한 도전이요 반항이었기 때문에 개신교를 흔히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반항자)라 부르게 되었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핵심은 교회의 의식 개혁에서부터 시작돼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교회 예배 의식(儀式)이 크게 달라졌다. 성직자 중심의 예배로부터 예배자 모두가 참여하는 예배로, 의전중심의 예배로부터 ‘말씀’ 중심의 예배로 변했다.

중세 가톨릭교회의 예배는 성직자 외에는 알아듣지 못하는 라틴어로 진행됐기 때문에 알아듣지 못하는 회중은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교회에서 성경은 성직자만이 읽을 수 있는 책이었고 성만찬에서 일반 신도들은 떡만 받고 포도주 잔은 받을 수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뜻하는 포도주를 실수로 흘려서는 안된다는 구실이었지만 사제들의 특권의식이 근저에 깔려 있었다.

루터는 이러한 모든 관행에 종지부를 찍었다. 예배는 모든 독일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독일어로 진행하게 되면서 오랫동안 막혔던 예배자들의 입과 귀가 열리게 됐다.

성만찬에서 모든 예배자는 떡과 잔을 받게 됐다. 루터는 또한 예배를 위한 찬송가를 직접 작사.작곡해서 모든 예배자가 한 목소리로 찬양함으로 예배는 활기가 넘쳤고 교회에 신선한 새 바람이 불게 됐다.

그 뿐만 아니었다. 루터는 ‘하나님 말씀의 선포’를 예배의 중심에 놓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설교’를 통해서 선포된다고 루터는 주장했다. 따라서 당시까지 틀에 짜인 정형화된 의전 중심의 예배로부터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 중심의 예배로 바뀌게 됐다. ‘하나님 말씀의 선포’를 강조했던 루터는 그 자신이 위대한 설교가였다.

루터는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겨주신 또 하나의 사명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번역작업은 전혀 예기치 않았던 시기에 예상치 못했던 장소에서 시작됐다.

1521년 독일 황제 카를(charles) 5세는 루터가 보름스 청문회에서 자신의 신앙적 주장을 굽히지 않자 루터를 추방하고 범죄자로 정죄하는 보름스 칙령을 선포했고 이에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위기 상황에 처한 루터는 작센(Sachsen)주 선제후 프리드리히(Friedrich)의 도움으로 그의 영지 바르트부르크(Wartburg) 성채로 피신했다.

루터는 이 성채에서 가명을 쓰고 머리와 수염을 길게 길러 변장을 한 채 10개월 동안 도피생활을 했다. 이 기간은 루터에게는 모세의 미디안 광야와 같은 시기였고 고난과 시련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실은 루터를 향한 하나님의 은총의 시간이었다. 루터가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것은 바로 이 기간이었다.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그는 오로지 성경번역에만 집중했고 결국 신약성경 전체를 번역할 수 있었다. 놀라운 일이였고 수난의 시간에 하나님은 루터에게 은혜를 부어주시고 루터를 통해 신사도행전을 기록한 것이다.

물론 종교개혁이 루터에 의해서만 시작된 것은 결코 아니다. 이미 그보다 100년 앞서 위클리프(John Wycliffe)와 후스(Jan Huss)같은 종교개혁의 선구자들이 있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15세기 중엽부터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인쇄술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의 인쇄 혁명으로 루터의<95개조 반박문>이 독일어로 번역 출판되어 15일 만에 독일 전역에서 읽혀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고 1517년부터 1520년까지 루터가 쓴 30종의 저술들이 30만권 이상 팔려나간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루터의 종교개혁은 시작부터 그 이전의 위클리프나 후스와는 다른 토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위클리프와 후스의 피가 아니었으면 루터의 종교개혁은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루터가 종교개혁의 개척자라 한다면, 캘빈(Jean Calvin)은 그것의 완성자라 할 수 있다. 캘빈은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자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4년전 종교개혁 500주년은 물론 매년 종교개혁 주일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이를 기념하는 토론회 등 각종 행사가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나 본질에 대한 접근이 없고 그야말로 일회성 마케팅 행사와 같아 마치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찾아볼 수 없는’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 종교 개혁을 부르짖은 루터

종교개혁의 본연은 ‘오직 믿음과 성경과 은혜로’ 모든 성도가 왕 같은 제사장의 자리를 회복케 함으로 누구나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 죄를 고백하고 찬양하고 예배를 드리는 만인제사장(萬人祭司長)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목사님들과 인사 할 때 받은 명함을 보면 OO기관 경목, OO기관 OO위원, OO기관 협회장 등 명함 앞 뒷면이 10여개가 넘는 직함으로 도배한 분들도 여럿 있다. 목사가 왜 그렇게 세상 직함이 많은지? 목사가 왜 그렇게 세상일로 바쁜지? 목사는 교회일로 바뻐야 되지 않는가? 목사가 세상 일로 바쁘려면 목사 직함내 놓고 그길로 가야 하지 않는가?

또 과부의 두렙돈 등 성도들의 귀한 헌금으로 하나님께 바쳐진 헌금을 자기 주머니의 쌈지 돈 처럼 마구 사용하는 삯꾼 목사들이 너무 많다.총회장,부총회장, 심지어 노회장 선거 등 자신의 교계 감투 마련을 위해 교회 재정을 사용하는 목사가 얼마나 많은지...그게 자기 돈이냐? 진정 양을 먹이고 교회를 섬기고자 하는 선한 목자라면 목사 스스로가 그런 생각과 행태를 보여선 안된다. 꼭 교계 감투를 쓰고 싶다면 자기 월급 안에서 자기 재산으로 해야 되지 않겠나? 목사만 탓할게 아니라 교회 재정을 담당하는 장로, 집사님들부터 그런 일에는 담대히 노(NO)라고 하는 청지기적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것 뿐인가? 십계명에서 이웃집 아내나 여종을 탐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성도들을 성폭행해 뉴스에 나오는 삯꾼 목사들은 왜 그리 많은지? 

물론 어려운 환경에서 복음전파 사명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역할을 충실히 잘 감당하는 선한 목자들도 많이 있지만 개신교계가 로마 카톡릭과 똑 같은 짖을 할 바에야 카톨릭과 합치든지 그 밑으로 들어가든지? 정말 작금의 기독교계 행태를 볼 때 제2의 종교 개혁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이를위해선 무엇보다 한국교회가 대형 교회를 지향하는 성장과 물질중심의 맘몬(Mammon)적 행태에서 벗어나고, 특히 예수님 대신 목사를 교회의 머리로 섬기고, 예수님이 다 버린 온갖 세상권세와 명예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목사를 주의 종이라 우상숭배하는 우(愚)에서 벗어나지 한다. 그렇지 않는 한 한국의 종교개혁은 여전히 미완성 상태에 있다고 할 것이다.

오늘 종교개혁 주일을 맞아 목사를 비롯해 한국교회 성도들은 혹시 오직 믿음 대신 오직 '돈'을, 오직 성경대신 오직 '세상권세'를, 오직 은혜 대신 오직 "대형 교회'를 소망하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진단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은과 금은 가득있으나 예수가 없거나 예수를 팔아 먹고 사는' 지금의 한국 교회와 목회자들이 변하고 개혁하는 것이 루터가 부르짓던 종교개혁이고 더 나아가 사회개혁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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