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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연가

  • 기사입력 2021.11.07 23:42
  • 기자명 이희영
▲ 방산 이희영

유난히도 무덥던 어느 여름날 청계천에 나갔다. 맑고 시원한 물에 유혹되어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첨벙’ 발을 담갔다. 시원하다. 금방 몸 전체가 시원해진다. 어린아이처럼 물장구를 쳤다. 물속에선 팔뚝만 한 잉어들이 유유히 헤엄쳐 다닌다. 서울 한복판에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두 손으로 시원한 물을 떠서 얼굴을 적셨다. 어릴 적 내 모습이 추억으로 떠오른다.

어려서 나는 청계천 옆에서 살았다. 지금은 없어진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 뒤편이었다. 어린 시절 보았던 청계천은 그렇게 깨끗하지도 맑지도 않은 시커먼 물이 흐르던 더러운 개천이었다. 맑은 청(淸) 자, 청계천과 사뭇 다른 청계천은 그야말로 더러움의 대명사였다. 

그런 청계천은 나의 놀이터였다. 그 시절, 개천 물은 시커먼 색깔이었다. 질퍽질퍽 오물이 쌓인 늪지대를 지나 개천 가운데 물이 흐르는 곳으로 들어가면 더러운 물에서도 붕어 같은 것도 나오고 깨끗한 물에서만 산다는 버들치, 송사리 그리고 미꾸라지 같은 것들이 살았다. 아마도 물은 더러워 보여도 화학물질이 없는 물이라 물고기들이 살지 않았을까 싶다. 그곳에서 고무신이나 조그만 그물 같은 것으로 고기를 잡으며 놀기도 했다.

그때 나는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나면 동대문 다리 위로 갔다. 청계천 물이 불어 이런저런 물건들이 둥둥 떠내려오기 때문이다. 나의 타깃은 크고 작은 고무공들이었다. 빠른 물살을 따라 둥둥 떠내려오는 공을 긴 잠자리채 같은 것으로 건져 올리는 것이다. 그 공들은 내겐 큰 선물이었다. 그 공으로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하고 농구도 하고 공만 있으면 어떤 부러움도 없었다. 

청계천이 다 좋은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청계천 변으로는 판잣집들이 빽빽이 지어져 있었다. 종로3가부터 청량리까지 이어졌다. 그 판잣집들은 개천 밑에서 통나무 기둥으로 받쳐 지어서 보기에도 아슬아슬했다. 신기하게도 장맛비로 홍수가 나도 꿋꿋이 견뎌냈다. 사람들은 거기서 용변을 보았는데 그대로 청계천으로 떨어졌다. 늘 청계천 변에는 사람의 인분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는데 홍수가 한번 지나가면 싹 청소해 주곤 했다. 

종로3가는 종삼, 그리고 청량리는 오팔팔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6.25 전쟁 후, 오갈 데 없는 여자들이 몸을 팔며 사는 곳이다. 우리의 쓰라린 과거사다. 

나는 성동중학교에 다녔다. 내가 사는 집에서 학교까지 가려면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청계천 변을 따라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을지로로 가는 길이다. 청계천 길을 따라가면, 낮이긴 해도 누나 정도의 여자들이 길옆에서 서성대고 있다. 약간 긴장해서 걸어가는데 희롱 끼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야∼ 꼬마야! 중학생이네∼ 예쁘게 생겼는데∼ 이리 와 봐!”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데 어느새 한 여자가 잽싸게 내 중학교 모자를 빼앗아 도망을 갔다. 

큰일 났다. 얼굴이 빨개진 나는 빡빡 깎은 민머리를 감싸 쥐며 “내 모자 줘∼” 소리치며 쫓아갔다. 여자들은 재미있다는 듯 또 다른 여자에게 패스한다. 아이고 내 모자가 무슨 농구공이라도 되남? 또 쫓아가면 또 패스한다. 그러면서 ‘깔깔깔’ 거리며 좋다고 웃어댔다. 한참 후에야 어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여자가 “옜다, 꼬마야!” 그리곤 던져 주었다. 나는 ‘아휴 살았다’ 그리곤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런 추억의 청계천이 우리나라 근대화와 함께 새롭게 변화되어 왔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새마을 노래와 함께 산업화를 이루면서 청계천은 복개되어 도로가 되었다. 청계천 변에 살던 그 많던 여자들도 다 사라졌다. 그사이 우리나라 오천 년 역사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기적이다. 

청계천을 덮고 있던 도로는 다시 파헤쳐졌다. 말 그대로 맑은 청(淸) 자 청계천으로 우리 앞에 새롭게 태어났다. 내 앞에서 예닐곱으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청계천 물속에 발을 담그며 즐거워한다. 어린 시절 시커먼 물속에서 고기 잡던 내 모습과 오버랩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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