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일장기를 태극기로

아라우의 후예(13회)

  • 기사입력 2021.11.08 20:28
  • 기자명 이철원 전 아라우 파병부대장
▲ 전, 아라우 부대장 이철원 대령 

 작전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초등학교 벽에는 일장기가 그려져 있다. 이는 과거에 필리핀 교육부가 노후된 초등학교를 대대적으로 보수하기 위해 일본의 차관을 끌어들여 초등학교를 보수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건물 전체를 보수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가장 잘 보이는 교실만을 보수하고 벽에 일장기를 그려놓은 것이다. 교육감 말에 의하면 필리핀 정부가 차관을 다 상환하였다는데, 기증한 것도 아니고 ‘돈을 빌려 주어 복구한 건물에 빌려 준 사람의 이름을 써 넣는다’라는 것은 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것도 학교를 지어주거나 또 전체를 보수한 것도 아니고 학교 중 한 건물을 보수(Repair)한 것인데 말이다. 

2013년 12월 초 사전 정찰을 하는데 무너져 버린 초등학교 벽에 희미하게 그려져 있는 일장기가 내 시선을 끌었다. 대부분의 초등학교에 일장기가 그려있으니 ‘아직도 이곳이 일본의 식민지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보기가 싫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초등학교를 집중적으로 복구하여 일장기를 모두 지워버리고 태극기를 그려야겠다’라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래서 일장기가 그려져 있는 초등학교에 발생할 것에 대비하여 필리핀군과 아라우부대가 협력하여 학교를 복구한 것으로 문구를 작성하고 필리핀군과 교육청의 동의를 받아 필리핀 국기와 태극기를 동시에 그려 넣었다. 

이렇게 6월 말, 1진이 철수 시까지 복구한 22개 학교 중에 14개 초등학교의 일장기를 태극기로 바꾸어 놓았다. 일장기가 하나씩 하나씩 태극기로 바뀌어 갈 때마다 우리는 가슴 뿌듯함과 희열을 느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들이 1, 2진 교대시기에 한국 기자단이 부대활동을 취재하면서 “아라우부대가 초등학교를 복구하면서 벽면에 일장기 대신 태극기를 그려 넣고 있다”라고 조선일보(2014년 6월 28일자)와 일부 인터넷뉴스에서 보도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2004년 이라크 파병시 미군캠프에서 해프닝으로 인한 일본의 항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당시에 이라크로 파병되는 모든 다국적군은 이라크 전역戰域으로 들어가기 전에 쿠웨이트의 미군캠프(버지니아 캠프)에서 사전 적응훈련을 받아야 했다. 대기장소인 캠프에는 이라크로 투입되거나 철수하는 다국적군으로 항상 붐볐고 그중에 일본의 자위대도 있었다. 그런데 한국군 병사들이 자위대병사들과 같이 찍은 사진을 장난삼아 인터넷에 올린 것이 문제가 되었는데 한글로 “독도는 대한국민 땅”이라고 쓰여 있는 현수막을 같이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강력한 항의가 있었음은 물론이고 이후 자위대 병사들은 우리 병사들을 만나면 피해 다녔다.

  

신문기사는 당시 한일관계가 아주 좋지 않던 시기에 일본 NGO의 강한 항의를 불러일으켰으며 이로 인해 초등학교에 일장기를 태극기로 바꾸는 작업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었고 철수할 때 까지 일본과 보이지 않는 힘들고 외로운 싸움을 해야만 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정사회
경제정의
정치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