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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에 들다

  • 기사입력 2021.11.16 07:52
  • 기자명 이오장
▲ 시인 이오장  

 

적막에 들다

                                                                 김선진

 

적막이 적막 속으로 파고든다

적막의 껍질을 깨고 들어선 적막이

다시 고요해졌다

나무는 잎사귀마다

진초록 물을 그득하니 머금고

가끔 기침을 한다

그때마다 적막이 잠시 흔들렸다

길섶 마타리, 산초, 달맞이꽃, 개망초

좁쌀풀, 달개비, 갈퀴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호랑나비가 길을 터주는

이천 양돈 연수원 팔월의 오솔길

가끔씩 내뱉는 내 숨결에

적막이 화들짝 놀라

가슴을 쓸어내린다

발자국 소리만 

내 뒤를 자꾸만 따라온다

 

 소통이 없다면 삶을 유지할 수가 있을까. 사회적 동물인 사람이 개인의 울타리에 갇혀 담 밖의 세상을 모른다면 살아있어도 살아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끝내는 생을 마칠 것이다. 자신이 찾던가 아니면 누군가가 찾아주어 통로를 만들어야 비로소 사람 구실을 하며 삶을 윤택하게 가꿀 수 있다. 그렇다면 소통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가. 고요하고 쓸쓸한데서 부터 소통의 길은 만들어진다. 말을 하게 되고 글을 읽을 수 있고 자신이 사회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섰을 때 소통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 적막으로부터 응어리진 사유의 결정체가 소통의 개체를 찾게 되고 그 개체는 적막으로부터 시작된 삶의 동체다. 이것은 개인마다 다른 게 아니라 거의 다 똑같은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유아기를 벗어나 소년기에 접어들었을 때 만들어진다. 사물을 판단하게 된 사람이 계속된 의문을 품게 되고 그것의 해답을 찾아내려는 노력으로 소통의 질은 높아지며 그 높낮이에 따라 삶의 질도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적막은 사람을 바로 서게 하고 새로운 출발을 시도하게 하는 필수요건이다. 들판에 혼자 있던가, 아니면 방에 혼자 앉아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며 모자란 부분을 채우는 방법이나 낯선 곳의 진입 방법을 찾아내고 잊어버린 과거와 앞으로의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참으로 현명한 방법이다. 김선진 시인은 적막의 고요 속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적막의 껍데기를 깨고 적막이 들어선다. 겹친 적막 속에 내면 깊숙이 자라난 나무들이 무성한 숲을 이뤄 작은 충돌을 일으켜 기침하며 깨어난다. 무엇인가의 고민이 시인을 혼자 걷게 했으나 적막 속에 적막이 들어 불현듯 사물의 깊이가 보인 것이다. 길가에 줄줄이 늘어선 온갖 풀과 꽃들이 호랑나비와 함께 맞이해주는 환상의 들길, 여기는 소리가 없는 발자국이 추억을 일깨우는 소리를 내고 화자의 숨결은 파도 소리보다 크다. 그렇다. 시인은 적막에 빠져들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정원을 보고 자신과의 소통을 이뤘다. 타인보다 더 중요한 자신의 내면과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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