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그 아이 머리였을까?

김희재 | 기사입력 2021/11/2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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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그 아이 머리였을까?
 
김희재   기사입력  2021/11/22 [10:25]

▲ 김 희 재(수필가, 한국어 교육 전문가)  

 캄보디아 장교 사므디 씨의 결혼식에 초청을 받아 남편과 함께 떠난 길이었다. 그는 육군대학교에서 나에게 한국어를 배우고 귀국한 장교였다. 스물여덟 살에 최연소로 육군 대령에 진급하여 깜짝 놀라게 했던 총각이었다.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어도 열심히 배우려고 해서 내가 많이 아끼던 학생이었다. 언제든 결혼하게 되면 꼭 참석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사므디와 같은 반에서 공부했던 잇디 소령이 프놈펜공항으로 마중 나왔다. 그는 가족들을 다 데리고 위탁 교육을 받으러 왔었다. 육군대학교에 개설한 ‘위탁 장교 가족 한국어’ 강의도 내가 맡고 있던 터라 장교들은 물론 아내들과 아이들까지 다 내 제자가 되었다. 

 

  한국 생활 내내 그들에겐 내가 엄마였다. 학생들은 다투어 나중에 자기 나라로 나를 초대하겠다고 하였다. 그땐 그저 인사치레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오게 되었다. 잇디 씨는 휴가를 내고 결혼식 참석과 주요 명소 관광 등 모든 일정을 짜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잇디 씨는 매개어(媒介語)인 영어를 쓰지 않고 되도록 한국어로만 말하려고 애썼다. 그의 한국말은 그리 유창하지 못했지만 나는 다 알아들었다. 외국인을 오래 가르치다 보니 눈빛만 봐도 감을 잡을 수가 있게 되었다. 착실한 학생이었던 그는 귀국 후에도 여전히 모범생이다. 차 안에서 공짜로 특별 과외라도 받는 양 즐거워했다. 한국어를 한 번이라도 더 연습하려는 그 태도가 기특해서 나도 성심껏 선생 노릇을 해주었다.

 

  프놈펜에서 앙코르와트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 도로 사정도 좋지 않았다.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은 비포장도로에 자동차와 자전거, 마차와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다. 운전자들이 눈치껏 서로 비켜 가며 천천히 달릴 수밖에 없었다. 

 

  잇디 씨는 운전하면서 창밖 풍경들을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가다가 배고프면 아무 데나 차를 세우고 길거리 음식을 사 먹었다. 생전 처음 보는 열대 과일도 맛보고, 내 눈엔 징그러운 여러 가지 곤충을 요리하여 맛있게 먹는 사람들도 보았다. 그러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하루해가 다 빠졌다. 

 

  낮엔 너무 덥다고 동이 트기 전부터 앙코르와트 유적지 탐방을 시작했다. 주요 장소들을 대충 둘러보고 아침 7시경에 사원에 도착했다. 천장도 없고 돌로 된 골조만 남은 사원이 처절하게 훼손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높고 가파른 돌계단을 조심조심 올라가 안으로 들어갔다.

 

  어둑한 사원의 한쪽 구석에 사람들이 빙 둘러 앉아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남루한 차림의 여자가 무디어 보이는 삭도(削刀)로 남자아이의 머리를 밀고 있었다. 바싹 마른 할머니와 아이들이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묵묵히 머리를 대주며 아무런 표정 없이 허공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는 열 살 정도 되어 보였다. 

 

  무딘 칼끝에서 아이의 머리카락이 조금씩 밀려 나왔다. 거품이나 젤 같은 것도 바르지 않은 마른 털이었다. 마치 살가죽이 벗겨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제사의식을 치르는 사람들처럼 아주 진지했다. 아무도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비스듬히 누워서 머리를 밀고 있는 아이가 두어 번 힐끗 쳐다볼 뿐이었다. 초점 없는 그의 눈이 너무 착해서 더 짠했다. 아이를 승려로 만들려고 준비하는 것일까? 가난에 찌든 그들의 행색이 마음에 걸렸다. 

 

  사원 구경을 하면서도 내 시선이 계속 그들에게 머물자 친절한 잇디 씨가 얼른 뛰어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한참 이야기를 했다. 곁에 있었어도 캄보디아 말이라 알아듣지 못했을 테지만, 멀리 서서 기다리려니 궁금증이 더 일었다. 

 

  "저 아이는 승려가 되려는 게 아니래요. 지금 머리를 밀고 있는 저 여자가 중한 병에 걸렸을 때 이렇게 기도를 했답니다. 자기의 병을 낫게 해 주면 이 사원에 와서 아이의 머리를 밀겠다고 말입니다. 다행히 여자의 병이 다 나았고, 오늘 그 약속을 지키려고 저러고 있답니다."

 

  “아니, 뭐라고요? 자기 병을 낫게 해 주면 아들의 머리를 밀겠다고 서원을 했다고요?”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기 병을 고쳐 주시면 제 머리를 밀겠다고 할 것이지, 생뚱맞게 자식의 머리를? 내 사고방식으론 도저히 납득(納得)이 되지 않았다. 

 

  잉태하여 피와 살을 나눠 주고 힘들여 낳았다 해도, 자식은 엄연히 독립적 인격체다. 부모의 분신(分身)도 아니고 소유물은 더욱 아니다. 성경에도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 누구든지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일 뿐, 설령 부모와 자식 사이라 할지라도 공과(功過)를 대신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여자는 왜 하필 그 아이의 머리를 밀겠다고 했을까? 나는 궁금했지만 더는 알고 싶지 않았다. 여자에게서 ‘제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자식을 드리는 것’이라는 대답을 들을까 봐 겁이 났다. 너무 지극한 모성(母性)이 때로는 이성(理性)을 마비시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잡한 마음으로 돌계단을 내려오려니 올라갈 때 보다 갑절은 더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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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11/22 [10:25]   ⓒ 한국NGO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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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르신 2021/11/24 [09:02] 수정 | 삭제
  • 한국인들 인사치레로 하는 빈 말들이 정말 많은데 캄보디아인들의 묵직함에 사뭇 감동이 이네요... 넘 감성 풍부한 글로 제 마음도 풍부해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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