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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정신성 식욕억제제가 대체 뭐길래?

  • 기사입력 2021.11.26 22:49
  • 기자명 UAEM Korea

 

지난 10월 23일 방영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나비약과 뼈말라족’이라는 제목으로 향정신성 식욕억제제 오남용을 다뤘다. 방송에서는 식욕억제제를 복용했다가 심각한 환각 현상을 비롯한 각종 부작용을 겪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법적으로 처방을 받을 수 없는 어린 중고등학생들이 온라인으로 식욕억제제를 구하여 복용하고 있으며, ‘프로아나’라는 명칭으로 극단적 체중 감량을 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프로아나’는 찬성의 의미를 가진 접두사 ‘Pro-’와 거식증을 뜻하는 ‘Anarexia’를 합성하여 만든 단어로서, 거식증을 동경할 정도로 마른 몸을 갈구하는 사회적 현상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또한, 이렇게 자학적인 현상이 여러 미디어 매체를 통해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도대체 식욕억제제가 무엇이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의존성 및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이를 복용하고 있는 것일까?

1. 향정신성 의 정의, 효능 및 부작용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제공하는 의약품 상세정보에 따르면, 디에타민정(펜터민염산염)은 흰색 나비넥타이 모양의 정제이다. 이는 적절한 체중감량요법에 반응하지 않는 초기 체질량지수(BMI) 30 이상, 또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다른 위험인자가 있는 27 이상인 비만 환자를 위해 체중감량요법의 단기간 보조 요법으로 사용된다.

단, 이 약의 오남용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복용량과 기간에 기준을 두었다. 환자가 첫 4주 이내에 최소 1.8kg 이상 체중 감량이 있거나 의사와 환자 모두 만족할 만한 체중 감량이 있다고 판단하였을 때에 한해 이 약으로 치료를 지속할 수 있다. 그러나 부작용의 위험이 있으므로 복용기간은 최대 3개월을 넘기지 않아야 하며 다른 식욕억제제와 병용하지 말 것으로 권고된다.

디에타민, 푸링, 푸리민 등의 식욕억제제들은 마약 중 하나인 덱스트로 암페타민과 유사한 작용을 하는 펜터민 성분의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인체에서 도파민의 분비를 증가시켜 신진대사를 높이고 포만감을 줌으로써 식욕을 줄여 체중감소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마약류에 해당하기 때문에 과다 복용 시 의존성과 내성이 생길 수 있어 주의하여 복용해야 한다.

디에타민을 포함한 펜터민 식욕억제제의 대표적인 부작용은 과자극작용 및 불안감, 어지럼증, 두통, 두드러기 등의 경미한 증상부터 조현병과 유사한 증상의 피해망상·환청·환각 등 정신장애, 조울증·우울증·불면증 등의 질환이 유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중증 심장 질환, 폐동맥 고혈압, 판막 심장병 등 신체 주요기관에서 장애를 일으키기도 하며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폐동맥 고혈압과 판막 심장병의 경우 디에타민 약을 단독으로 사용했을 경우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으나, 다른 식욕억제제와 함께 사용하여 권장량 이상을 복용하거나 장기적으로 투여했을 때 발병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각 식욕억제제는 반드시 단독으로 복용해야 한다.

디에타민은 의사 처방 하에 복약 지시를 지키며 적절히 사용하면 효과적일 수 있는 약물이지만, 이처럼 의존도, 중독성, 내성 및 부작용이 마약류만큼 높기 때문에 복용 시 경각심이 필요하다.

디에타민과 같은 향정신성 식욕억제제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의하여 마약류로 분류되고 있다. 강한 정신적 의존성 및 심각한 사회적 기능 장애와 연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향정신성 식욕억제제를 판매, 제공하는 행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또한,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디에틸프로피온, 마진돌 성분 제제는 소아에 대한 안전성 및 유효성이 평가되지 않은 약물로서 16세 이하의 소아청소년에게는 투여하지 않도록 하고 있으며, 로카세린 성분의 식욕억제제는 성인에게만 처방하도록 허가된 의약품이다. 

2. 식욕억제제 문제 현황

향정신성 식욕억제제 문제는 지난 2019년, 인천에서 2-30대 여성 6명이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펜터민 성분이 함유된 식욕억제제를 판매하여 마약류관리법 위반으로 입건되었던 사건으로 인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2020년 국정감사에서 언급되면서, 온라인에서 거래되는 의약품 판매 금지 및 정부의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국회의 대처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사건은 연달아 발생했다. 2021년 6월, 중국인 C씨가 처방전 수백장을 위조 후 펜디메트라진이 포함된 식욕억제제인 ‘푸링정’을 약 1만 2천 정 가량 처방받아 판매한 것이다. 위조 처방전임을 알고도 약을 처방해준 약사 D씨와 대리 처방을 받은 C씨는 각각 약사법 위반, 사문서 위조/마약류 유통 등의 혐의로 2년과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처럼 마약류 관리법으로 향정신성 의약품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에서는 디에타민정, 푸링정 등 식욕억제제를 무분별하게 거래하는 상황이 드물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SNS상에서 흰색 나비넥타이 모양의 정제를 나타내는 은어 또는 초성을 검색하면 수없이 많은 식욕억제제가 공공연하게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20년 한 해에만 약 333만명의 환자가 다양한 향정신성의약품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았으며, 최근 3년간의 식욕억제제 처방 건수는 무려 969만 건이 넘는다. 처방량이 상당한만큼, 약물의 부작용을 잘 알지 못한 채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위해 오남용하고 있는 사람도 많다.

실제로 2020년 6월 대한민국의학한림원에서 성인남녀 1,0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식욕억제제의 중독 또는 의존성을 알고 있다는 응답은 겨우 22% 남짓한 수준에 그쳤다. 5명 중 1명만이 부작용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수많은 의사들이 일반인을 상대로 약물을 처방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식욕억제제를 사용해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후기들을 찾아보는 것은 매우 쉬우며, 약물 복용자들은 ‘다이어트 약’이라는 명목으로 이를 타인에게 추천하고 있다. 부작용은 감추면서, 극단적인 효과와 약물 획득 수단만이 부각되며 더 많은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다.

3. 마약류 식욕억제제의 과다처방과 불법처방

한편, 마약류 식욕억제제의 위험성 및 복용법에 대한 정보 부족은 처방의 문제로 이어져 법적 물의를 일으킨다. 크게 ‘과다 처방’과 ‘불법적인 방법을 통한 처방’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한 과다처방자의 경우에는 2019년 한 해에만 103회에 걸쳐 15,145정을 처방받았다. 이는 식약처에 기록된 최대처방 사례이다. 또한 2020년까지 이어져 한 사람이 95회에 걸쳐 7,606정을 처방받는 등 수많은 과다처방 사례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식욕억제제 복용 기준인 4주 이내, 최대 3개월이라는 기간을 생각해보면 하루에 수십 정씩 복용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만약 본인이 복용한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판매했다고 가정해도 마약류 관리법에 위반되는 사항이므로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불법처방의 사례로는 사망자의 명의를 도용하거나 폐업한 병원의 처방전을 위조하여 식욕억제제를 처방받는 등의 사건이 있었다.

향정신성의약품인 식욕억제제를 처방하기 위해 위와 같은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는 점, 그리고 하루 2-3정이라는 적정 복용기준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을 의사와 약사가 하루 최대 40정 이상 복용가능한 양을 처방했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16세 이하 소아청소년에게 향정신성 식욕억제제를 처방하는 것도 불법처방에 해당한다. 그러나 2019-2020 두 해 동안 16세 이하의 마약류 식욕억제제 처방 현황을 보면, 총 1,247명에게 3,374회가 처방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최연소 환자는 10세로, 무려 13명이 37건의 처방을 받았다. 초등학교 3학년 정도의 아동이 ‘마약류’에 해당하는 약물을 복용했다는 점에서 국가 차원의 법적·사회적 조치가 시급한 상황이다.

더불어 연령이 올라갈수록 환자수와 처방건수가 증가하는 추세라는 점도 눈여겨볼만하다. 이들 중 16세의 경우 681명이 1,869건의 처방을 받았는데, 이는 전체 16세 인구의 약 0.14%에 달한다. 그러나 식약처에 기록되지 않은 16세 이하 복용자들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병원의 처방 없이도 온라인으로 식욕억제제를 손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 불거지자, 식약처는 의약품 및 마약류의 온라인 판매 광고 및 알선 행위를 엄격히 금지시키고, 소비자 피해예방을 위해 위법한 판매성향이 있는 게시글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을 통해 약사법, 마약류관리법 위반 사이트 차단과 같은 공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빠르게 발전하는 인터넷 기술과 미디어와 문화의 흐름을 정부의 조치가 따라가지 못하여, 처방·복용량에 비해 법률 및 행정적 규제가 아직 미비한 실정이다. 

                 

4.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최근 인터넷이 발달하며 시공간의 제약 없이 범죄들이 펼쳐지고 있으며 의약품 문제도 이를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이에 더해 마른 몸을 지향하고 비만을 혐오하는 외모지상주의적 사회분위기가 팽배하고 이를 유도하는 대중 문화 미디어 등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따라서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인해 향정신성 의약품의 물리적인 접근성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 발맞추어, 의약품의 적절한 사용과 마약류 관리법에 대한 교육을 장려하는 등 정보접근성도 향상시켜야 한다. 이러한 식욕억제제 오남용 사태는 결국, 의약품 정보접근성에 비하여 지나치게 높아진 물리적 접근성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국민도 본인과 주변인을 위하여 의약품 오남용을 지양하고 처방 및 복용법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미디어계 종사자와 문화를 주도하는 공인들 또한, 자신이 대중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여 개인의 신체에 대해 보다 건강하고 긍정적인 인식을 지닌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게끔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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