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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의 눈물 젖은 아리랑

연재 17회

  • 기사입력 2022.01.15 11:01
  • 기자명 이철원 전 아라우 부대장
▲ 참전용사에게 평화의 사도 메달 수여 

한국전쟁 참전지원국인 필리핀이 태풍 ‘하이옌’이란 유래 없는 재난을 당하자, 우리 국민들은 그동안 잠시 잊어버렸던 참전지원국에 대한 보은을 다시 기억해 내게 되었다. 일제식민지라는 기나긴 고난의 터널 끝에서 얻게 된 대한민국을 덮친 전쟁이란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자유민주주의와 경제적 번영을 쟁취하게 된 토대가 우리가 흘린 ‘피와 땀’과 더불어 ‘이름도 모르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낮선 땅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피를 흘린 참전지원국의 숭고한 희생에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 것이었다.

물론, 아라우부대의 파병 이전에도 보훈처 주관으로 해외참전용사 국내 초청행사를 비롯해 한국전쟁 참전국과 해외참전용사에 대한 선양사업에도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러한 지원사업과 아라우부대의 파병이 구별되는 점은 그동안 은연 중 우리 국민들이 갖고 있었던 한국전쟁 참전국에 대한 국민적 부채감을 필리핀에 대한 ‘보은의 파병’을 통해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을 체감하는 자신감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지에 도착해 보니 참전용사를 찾아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확실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레이테주 재향군인회 사무실이 태풍으로 완전 소실되어 확인이 제한되었다. 뿐만 아니라 낙후된 IT 시스템으로 참전 용사에 대한 데이터가 전무하여 필리핀 중앙 재향군인회를 통해서도 찾을 길이 없었다. 우선 급한 대로 작전지역 구석구석 방역활동을 하는 의무대를 활용하여 마을별 홍보활동을 펼쳤고, ‘참전용사 지원 TF’를 편성하여 수소문한 끝에 큰 아들과 함께 피난 중인 첫 번째 6·25 참전용사, 로브리고옹(87세)을 만났다. 이어 로브리고옹의 자문을 받아 바닷가에 허물어져 가는 수상가옥에 살고 있는 그레솔라옹(86세)을 찾을 수 있었다. 처음 방문했을 때 가벼운 치매증상과 지병으로 거동이 불편함에도 직접 대문까지 나와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대화 도중 기억마저 온전하지 못한 고령의 참전용사가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서 ‘아리랑’을 어눌한 한국말로 부르며 65년이 지나서 다시 만난 한국군 앞에서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에 모든 부대원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레솔라옹의 말에 의하면 당시 필리핀군은 한국에 파병되어 ‘아리랑’과 ‘반달’ 두 가지 노래를 배웠는데 ‘반달’은 기억하지 못하고 ‘아리랑’은 기억하고 있었다.

부대에서 찾은 세 번째 참전용사는 테베즈(86세)옹이었다. 참전용사의 소재에 대한 제보가 들어와 만나게 되었는데 5분마다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는 치매를 앓고 있었다. 마지막 참전용사는 현지언론을 통해 아라우부대의 6·25 참전용사 지원사업이 수회 방영되어 이를 보고 자신이 직접 부대를 방문하여 참전용사임을 밝혔다. 이렇게 부대에서 확인한 레이테주에 생존해 있는 네 분의 참전용사와 5월에 돌아가신 한 분의 참전용사를 포함하여 다섯 분의 참전용사 가족이 있었다.

부대는 생존해 계신 참전용사 네 분의 가옥을 모두 복구하면서 한국전쟁 참전용사라는 명패를 크게 만들어 문 앞에 설치하였다. 거동이 불편하고 귀가 어두운 참전용사를 위해 휠체어와 보청기를 제공해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신경 썼으며, 건강을 위한 의료진료를 겸해 정기적으로 안부 방문을 했다.

이와 함께 사망 직후에 확인된 참전용사 한분을 위해서는 부대에서 묘역을 조성하고 장례식을 지원하였으며, 6·25 기념일에 맞춰 레이테주에서 확인된 모든 참전용사와 가족 120여 명을 초청하여 한국전 참전용사 메달을 수여하고 손자손녀들에게 1년 치 대학 등록금과 노트북을 지원하는 등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기꺼이 희생한 필리핀 6·25 전쟁 참전용사의 용기와 헌신을 기리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또한 참전용사의 손자를 우선적으로 중장비직업학교와 한국어 교실에 입소시켜 한국에 가려는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그리고 파병 철수 전에는 한국군 파병 기념공원에 생존한 참전용사 네 분의 모습을 한국전 참전 기념 동상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본인들의 동상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했다. 우리가 이렇게 한국전 참전용사를 진심으로 예우하는 모습은 필리핀 주민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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