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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만둣국

  • 기사입력 2022.01.19 15:08
  • 기자명 이희영
▲ 방산 이희영  

 설날 아침에는 으레 만둣국을 먹는다. 우리 집은 평양에서 6·25 때 피난 내려와 사는 집안이다. 설날이면 으레 만둣국을 먹는다. 어려서 설이 가까워질 때면, 어머니는 늘 평양에서 먹던 그대로 만두를 빚어 끓여주었다. 겨울이 다가오면 마치 김장김치 담그듯 수북이 만들어 며칠을 두고 먹곤 했었다.

 우리 집은 피난 내려와 부산 용두산의 판잣집에서 살았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끝날 무렵 서울로 이사 왔다. 지금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자리에 서울운동장이 있었다. 그 뒤편에 세 들어 살았었다.

 그때는 다 가난했다. 늘 배가 고팠다. 집에서 장충단공원으로 놀러 가려면 을지로6가를 지나야 했다. 길목에 만둣집이 있었다. 만두 찌는 솥 안에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다. 구수한 만두 냄새가 코를 찔러 장까지 전달됐다. 창문 안에는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한창 만두를 빚고 있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창문 너머로 능숙한 솜씨로 빚는 모습도 신기하고 먹고 싶은 마음에 한참을 서서 들여다봤었다. 

 12월이 되면 어머니는 두부를 으깨고 숙주나물과 당면 그리고 당시엔 귀했던 소고기를 다져 넣었다. 그리고 김장김치를 물에 씻어 잘게 썰어 넣은 후,  함께 버무려 속을 만들었다. 둥근 상을 펴고 그 위에서 반죽한 밀가루로 만두피를 만들었다. 얇고 동그란 만두피를 만들기위해선 사이다병으로 누르면서 빙빙 돌려가며 만들어야 했다. 

 어머니, 누나 그리고 나, 셋이 상에 둘러앉아 만들곤 했다. 만두피를 만들 때면 누가 나보다 더 빨리 만들까 싶어 뒤질세라 나는 연신 옆을 훔쳐보면서 끝날 때까지 허리 한번 펴지 않고 만들었다.  

 안 보는 듯하면서도 다 보고 있었던 어머니는 언제나 “에구~ 우리 희영이, 참 잘도 하네~” 그러면서 내 엉덩이를 툭 툭 툭 도닥거려 주었다. 그때마다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또 엉덩이를 도닥이고 칭찬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나는 어머니가 하는 일이면 언제든 열심을 다해 도왔었다. 

 평양식 만두는 반달 모양으로 어른 주먹만 하게 빚는다. 내가 빚은 만두는 양쪽 끝을 손톱으로 꾹꾹 눌러 표시를 냈다. 그리고 먹을 때면 언제나 내가 표시한 만두를 찾았다. 맛도 맛이지만 내가 만든 만두를 먹는 기분이란 그 성취감에 여간 좋은 것이 아니었다. 두부 향이 물씬 풍기며 고소한 고기 맛과 어울린 담백한 맛은 지금껏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그 맛이 그리워 평양만두 전문집을 여러 곳 찾아다니며 먹어봤지만, 늘 실망하고 돌아오기가 일쑤였다. 

 옛날보다 재료도 좋고 솜씨도 더 좋아졌을 텐데 왜 맛이 없을까? 그건 옛 맛을 찾으려는 내 입이 문제려니 생각하면서도, 그 맛을 그리워하는 내가 그리 잘못된 것도 아닌 듯싶다.    

 새해 설날 아침, 마트에서 사 온 인스턴트 만둣국을 먹을 때마다 그 옛날 어머니와 함께 도란도란 둘러앉아 만들어 먹던 그 만둣국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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