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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밀어닥친 기병을 보고도 침착했던 '치마바위' 왕후

'7일 간의 왕후' 단경왕후 신 씨의 생애

  • 기사입력 2022.01.26 12:42
  • 기자명 장경순 대기자
▲ 경복궁에서 바라본 인왕산의 모습.  © 장경순 대기자

깊은 밤, 한 무리의 기마병들이 큼직한 저택을 에워쌌다. 저택의 주인은 이 나라 임금(연산군)의 서류상 동복동생인 진성대군이었다.

진성대군은 지난 12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살얼음 위의 날들을 살아온 이 나라의 제1 왕제(王弟. 왕의 동생)였다. 돌이킬 수 없는 폭군의 길로 접어든 왕이 언제든 아우에게도 칼날을 겨눌 수 있는 날들이었다. 겉으로는 그 많은 동생 가운데 특별한 아우라 해서 우대를 하는 것도 더욱 불안하게 했다.

심장이 터질 듯한 두려움이 밀려오는 진성대군과 달리 부인 신 씨는 무척이나 침착했다. 부인은 부리는 사람에게 “어서 나가 말머리가 어디를 향했는지 보고 오거라”고 명했다.

하인이 돌아와 “말들이 대군저를 등지고 바깥을 향해 있습니다”고 고했다.

신씨 부인은 극도의 불안으로 벌벌 떨고 있는 진성에게 “안심하소서. 저들은 대군을 해치러 온 것이 아니라 지키러 온 군사들입니다. 만약 대군을 해치고자 했다면 말머리가 집을 향해 있을 것입니다”고 말했다.

바로 이 순간, 두려움에 빠진 왕자 진성대군에게 천명이 내리고 있었다. 박원종 성희안 등이 이른바 중종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옥좌에서 몰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지혜가 출중하고 심지가 깊었던 신씨 부인의 면모를 전하고 있는 일화다. 하지만 신씨 부인은 같은 시간 엄청난 비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전혀 몰랐다.

그의 친정아버지 신수근은 반정세력의 우선 목표가 돼서 살해당했던 것이다.

진성대군이 연산군 치세 12년 동안 그럭저럭 죽을 위기를 모면한 것은 연산군의 왕비 신씨의 도움도 있었던 까닭으로 전해지고 있다. 왕비는 신수근의 여동생으로 진성대군 부인인 신씨의 고모였다.

박원종은 신수근에게 “매부를 택하시겠소, 사위를 택하시겠소?”라며 반정 동참의사를 물었다. 신수근은 “매부는 뭣이고 사위는 무엇이요? 세자께서 영명하시거늘”하며 일언지하에 박원종의 제의를 뿌리쳤다. 반정세력은 바로 신수근을 살해했다고 한다.

왕비 신씨는 비록 폐출된 왕후지만 조선왕조실록은 그가 매우 덕망이 높았던 여인으로 전한다. 연산군 일기에는 “폐부(廢婦) 신씨는 어진 덕이 있어 화평하고 후중하고 온순하고 근신하여, 아랫사람들을 은혜로써 어루만졌으며, 왕이 총애하는 사람이 있으면 비(妃)가 또한 더 후하게 대하므로, 왕은 비록 미치고 포학하였지만, 매우 소중히 여김을 받았다. 매양 왕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음란, 방종함이 한없음을 볼 적마다 밤낮으로 근심하였으며, 때론 울며 간하되 말뜻이 지극히 간곡하고 절실했는데, 왕이 비록 들어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성내지는 않았다. 또 번번이 대군·공주·무보(姆保)·노복들을 계칙(戒勅)하여 함부로 방자한 짓을 못하게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서는 울부짖으며 기필코 왕을 따라 가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조카인 신씨 부인과 마찬가지로 그 인간됨과 생각함이 대단히 깊었던 사람이다.

신 씨 부인은 하루밤 사이에 남편이 임금이 된 대가로 아버지를 비참하게 잃고 말았다. 반정과 함께 신 씨는 왕후가 됐지만 역적의 딸이라는 이유로 7일만에 폐위됐다.

하지만 임금이 된 남편(중종)과의 부부의 연은 반정공신들이 함부로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인왕산에 거처를 정한 신 씨는 인왕산 특유의 큼직한 바위에 자신의 치마를 걸어 남편이 경복궁 뜰에서도 볼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이 치마바위의 전설이다.

조강지처와 생이별한 중종은 38년 간 재위하다 1544년 승하했다. 신 씨는 남편이 떠난 세상을 13년 더 살고 일흔한 살에 생을 마감했다.

신 씨가 세상을 떠나고 182년의 세월이 흐른 영조 15년이 됐다. 선비 김태남이 “중묘조(中廟朝)의 폐비 신씨의 억울함은 지금까지 수백 년이 되었어도 어제 일처럼 억울하게 여기고 탄식합니다”라며 “대개 당초에 폐위한 것은 한때의 뭇 의논이 핍박한 것에 지나지 않고 중묘의 본의가 아니었습니다”라고 상소했다. 그가 신 씨의 복위를 청하자 논의가 일사천리로 이뤄져 영조는 그에게 단경왕후의 시호를 올렸다.

정진해 문화재 전문대기자가 25일 본지에서 소개하고 있는 경기도 양주시의 온릉이 단경왕후 신 씨가 영면하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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