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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다섯 시간의 여유

  • 기사입력 2022.02.03 23:13
  • 기자명 이오장

 

딱 다섯 시간의 여유

                                              김두녀

 

걸러낸 엿기름이 고요를 되찾았다

잠시 후 뜨거운 밥알을 맞아

서서히 열을 올릴 터

90도에 육박하는 뜨거움 속

몸 섞는 사랑이라 치자

정해진 다섯 시간

딱 그렇게 너를 사랑하면

내 요술에 걸려들어 백기를 들고 나오리라

 

불덩이 속 뛰어들어도 그렇게 변하지 않지

다섯 시간 족히 너를 품다가 삭아 내린

너의 빈 육신 둥둥 떠오르면

100도가 넘는 뜨거움으로 완성하리라

더 이상 내 말 좀 들어달라고 보채지도

얼굴 붉히지도 않으리라

 

식혜를 끓이는 데도 사랑법이 있다. 사랑은 이런 정성이 없으면 이뤄지지 않겠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작품이다. 식혜를 언제부터 만들기 시작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문헌인 동국이상국집에 나오는 ‘행당맥락’ 편에 감주라는 기록이 보이는데 아마 삼국시대부터 식혜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견해가 굳어지고 있다. 술과 비슷하게 남은 밥을 보관하다가 자연스럽게 발효되는 과정에서 찾아낸 자연식품쯤으로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본다. 엿기름을 알맞게 계량하여 따듯한 물에 껍질째 넣고 주물러서 고운체에 걸러 사기 항아리나 옹기에 웃물을 부어 식힌 고두밥을 넣어 앉히고 일정한 온도로 다섯 시간을 유지한다. 이때 온도가 낮으면 밥이 쉬어버려 실패한다. 너무 온도가 높아도 마찬가지다. 대게는 아랫목에 두고 옷가지로 덮는 방법을 쓰는데 주부라면 경험이 쌓여 만족한 식혜를 만들지만 어설픈 사람은 실패하기 일쑤라서 식혜 만드는 솜씨로 주부의 높낮이를 평가하기도 했다. 우리의 전통식품이 식혜다. 그 과정이 어쩌면 사랑법과 그리 닮았는지 김두녀 시인은 식혜를 만들다가 사랑의 과정을 떠올려 한편의

시를 썼다. 사랑을 겪어 보고 이미 성인이 된 사람들은 사랑의 뜨거움과 차가움을 절실히 느꼈을 것이 틀

▲ 시인 이오장

림없다. 처음 싹틀 때의 도에 넘치는 뜨거움으로 대게는 실패하는 게 사랑이다. 첫사랑은 실패하는 사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며 근접 거리에서 서로를 확인하는 것은 식혜 만들 때와 너무 닮은 게 사랑이다. 밥알이 둥둥 떠오르고 완전히 삭아 달짝지근한 물과 섞여 감미롭게 목을 넘어가는 식혜가 주는 맛으로 사랑을 표현한 시인의 정성이 보채지도 얼굴 붉히지도 않는 감미로운 사랑을 이뤄내어 독자의 가슴 깊이 가라앉은 감정을 끄집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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