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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효심, 39세

  • 기사입력 2022.02.04 20:04
  • 최종수정 2024.02.03 15:23
  • 기자명 김희재 작가
▲ 김 희 재(수필가,한국어 교육 전문가)   

살다 보면 아주 가까이 지냈던 사람도 까맣게 잊어버리게 되는데, 그저 이름밖에 모르는 그녀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르니 신기한 일이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20여 년 전 종합병원 암 병동 입원실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수술하고 며칠 만에 퇴원시키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수술 부위가 거의 아물고 정밀 조직검사 결과가 다 나올 때까지 병원에 붙들어 놓았다. 나는 근 한 달가량 입원실 신세를 졌다. 

그녀는 처음 만난 날부터 헤어질 때까지 그저 누워만 있었다. 양팔과 손발에서는 혈관을 잡을 수 없게 되어, 목에 있는 굵은 혈관에다 주삿바늘을 심어 놓고 링거를 맞았다. 근육이 많이 빠져서 날씬하다기보다는 앙상하다고 표현해야 맞는데도, 아주 예뻤다. 특히 깊고 그윽한 눈매가 매력적이었다. 화장기가 전혀 없는 여자의 얼굴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고 놀라웠다. 

 ‘장 효심(가명), 39세, F.’ 그녀의 침대에 달린 명찰을 보고 이름과 나이를 알게 되었다. 6인실 문간에 놓인 침상에 누워서 오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유일한 낙인 그녀는 말기 암 환자였다. 췌장암 수술을 하려고 개복해 보니 암세포가 온 장기에 다 퍼져서 손도 대지 못하고 덮었다고 했다. 가만히 누워서 지내지만, 그녀는 심심한 입원환자들 입에 단골로 오르내리는 유명인사였다. 살아날 가망이 전혀 없어서 주치의가 아예 포기했다느니, 그저 진통제나 맞지 뾰족한 수가 없다느니, 암만해도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라느니. 

 아침마다 우리 방에 마실 오는 영은 씨는 상태가 매우 양호한 유방암 초기 환자였다. 정밀검사 결과 항암 주사는 맞지 않아도 된다며 무척 좋아했다. 그녀는 약간 수다쟁이였지만 잔정이 많고 심성도 착했다. 붙임성 좋은 영은 씨 덕분에 나도 병동 사람들과 언니 동생 하며 지내게 되었다. 효심이는 여섯 살 많은 나를 언니라고 불렀다. 

 효심이에겐 간병인도, 상주하며 돌보는 가족도 없었다. 누운 채로 곽에 든 두유만 조금씩 빨대로 마실 뿐 아무것도 못 먹었다. 남편은 1주일에 한 번 정도 얼굴만 잠깐 비치고 가고, 여동생이 가끔 두유와 휴지 등을 챙겨다 주었다. 오롯이 그녀 혼자서 두렵고 아픈 순간을 견디고 있었다. 그 방에 마실가서 오늘은 좀 어떠냐고 물으면, 언제나 대답 대신 해맑게 웃었다. 그래서 더 짠했다.

 먼저 퇴원한 영은 씨 뒤를 이어 나도 집에 가게 되었다. 아침 일찍 그녀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갔다. 누구에게서 내 소식을 들었는지, 그녀 얼굴엔 서운함과 부러움이 가득했다. 

  “언니는 좋겠다. 수술하고 퇴원도 하네. 나는 수술조차 못 했는데..."

  나는 괜히 미안했다. 마땅히 해 줄 말도 없었다.  

 “효심아, 누가 뭐라고 해도 낙심하지 말고 치료 잘 받아요. 그러면 너도 분명히 좋아져서 집에 갈 수 있을 거야. 나는 당분간 통원치료를 받으러 다닐 거야. 병원에 올 때, 너를 보러 올라올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여기서 꼭 기다려야 해. 알았지? ” 

 내 궁색한 작별인사에도 그녀의 눈이 빛났다. 고맙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며 내 손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 죽어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퇴원할 때의 약속과는 달리 나는 그녀를 보러 가지 못했다. 병원에 가긴 해도 선뜻 입원실에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도 아직 심란한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환자라 문병객이 되기 힘들었다. 그러면서도 퇴원할 때 해놓은 약속 때문에 계속 마음이 쓰였다. 

 그럭저럭 시간이 꽤 지났다. 많이 아픈 사람에게 빈말한 것이 영 마음에 걸려서 큰맘 먹고 입원실로 올라가 보았다. 그녀는 방에 없었다. 그녀가 누웠던 침대에는 다른 이름표가 달려있었다. 그 사이 방을 옮겼나 싶어 간호사 스테이션 칠판에 적힌 입원환자 명단을 샅샅이 훑었지만, 어디에도 장효심은 없었다. 

 무거운 발길을 돌리는데 누가 뒤에서 내 어깨를 확 감싸 안았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영은 씨였다. 자기도 약을 받으러 온 김에 병동에 볼일을 보러 올라온 것이라며 수선스럽게 반가워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효심이 근황을 아느냐고 물었다.

 “효심이요? 버얼써 죽었어요. 우리가 퇴원하고 얼마 안 지나서 죽었다니까 근 석 달이 다 되어 가네요. 그때 병원이 한바탕 시끄러웠대요. 효심이가 살아있을 땐 코빼기도 안 보이던 남편이랑 친정 식구들이 대판 싸웠다네요”

  “아니, 왜요?”

  “글쎄 효심이가 들어놓은 보험금이 어마어마하더래요. 그 돈이 법적으로 자기네 거라고 서로 우기면서, 초상 치를 생각은 않고 생난리를 쳤다네. 에고, 그놈의 돈이 뭔지...” 

  그녀는 아무 감정도 섞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남의 말을 하는데, 나는 예리한 날에 베이는 것 같이 몹시 쓰리고 아팠다. 서둘러 영은 씨와 작별하고 혼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서 있자니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왜 우느냐고 물으면 딱히 한마디로 대답할 수도 없었다. 마음이 복잡했다. 급히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문을 잠그고 소리 죽여 펑펑 울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그건 단지 죽은 이를 추모하는 눈물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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