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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재회(天上再會)

  • 기사입력 2022.02.18 14:03
  • 최종수정 2024.02.03 15:22
  • 기자명 김희재 작가
▲ 김 희 재 (수필가, 한국어 교육 전문가)  

평생 처음 대중가수 펜 카페의 회원이 됐다. 여태껏 아무에게도 팬레터 한 번 보낸 적 없는 내가 아들보다도 어린 가수를 열렬히 좋아하게 된 것이다. 어느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그가 부른 ‘천상재회’를 듣고 내 영혼이 반응했다. 그 노래의 가사가 딱 내 심정과 같았다. 평범한 대중가요를 장엄한 명곡으로 만들어 낸 그의 시원한 테너 목소리와 섬세한 감정 표현도 좋았다. 유튜브에서 그 노래를 찾아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났다. 마침 가까운 친구 두 명이 한꺼번에 하늘로 돌아가는 바람에 내가 몹시 힘들어하던 때였다.

 S는 ‘자신이 생존율이 낮은 담도암에 걸렸고, 며칠 후에 수술하게 됐다’고 여고 동창 단체 카톡방에다 고백했다. 단톡방엔 100명 넘는 친구들이 들어와 있었다. 다들 무척 놀라고 당황했다. 그녀는 수술하고 나서 3년 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암세포와 싸우기도 하고 살살 달래기도 했다. 투병 생활 내내 친구들을 버팀목으로 삼았다. 매일 자신의 몸과 마음 상태를 일기 형식으로 솔직 담백하게 써서 단톡방에 올렸다. 그녀의 글은 항상 밝고 유쾌했다.

 나는 그녀와 자주 통화했다. 자잘한 이야기를 나누며 되도록 큰 목소리로 웃고 떠들었다. 가끔 그녀에게 내일 일을 미리 염려하지 말고, 그저 하루에 하루 어치만 살라고 말해 주었다. 즐겁게 하루씩만 연장하다 보면 30년은 거뜬히 버틸 수 있을 거라고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입에 발린 어설픈 위로였는데, 그녀는 언제나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하루에 하루씩만 더하는 것이 뭐 어렵겠냐’며 ‘너보다 오래 살 테니 두고 보라’고 호언장담도 했다. 그녀의 목소리 톤이 높고 명랑해서 더 마음이 아팠다.

 마음과는 달리 S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약해졌다. 점점 항암제도 방사선치료도 신약도 듣지 않게 되었다. 도저히 참기 힘든 통증이 수시로 찾아왔다. 계속 복수(腹水)를 빼냈지만 배는 늘 만삭(滿朔)이었다. 강력한 진통제마저 소용없게 되었다. 마침내 단톡방에다 고통 없는 꽃동산에서 다시 만나자는 작별인사를 남기고,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났다.

 진작부터 예견된 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다들 무척 허둥거렸다. 동년배 친구라 그런지 윗세대 어른의 부음을 접했을 때와는 결이 다른 슬픔이었다. 그저 막연하고 멀게만 느껴지던 죽음이 성큼 다가온 기분이 들었다. 번호표를 받은 것 같아 이루 말할 수 없이 심란했다.

 J는 여고 동창생 중에서 손꼽히는 멋쟁이였다. 환갑이 지났는데도 언뜻 보면 아가씨같이 날씬하고 예뻐서 친구들의 부러움과 시샘을 한몸에 받곤 했다. 마침 동창회 임원을 맡고 있던 그녀는 S의 장례식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켰다. 책임감이 강하고 따뜻한 친구였다.

 처음 J의 부고(訃告)가 단톡방에 올라왔을 때, 다들 상주(喪主) 이름을 망자(亡者)로 잘못 표기한 줄 알았다. 평소 자기관리를 철저히 잘해온 터라 그녀에겐 우리 나이에 흔한 기저질환도 없었다. 그렇다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도, 교통사고를 당한 것도 아니었다. 평소처럼 저녁 잘 먹고 자기 침실에 들어가서는 아침 식사 준비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것도 하필 크리스마스이브 전날, S의 장례를 치른 지 2주일 만이었다. 사인(死因)은 심장마비였다.

 J는 아주 기습적으로 후다닥 다른 세상의 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녀는 죽는 복 하나는 아주 잘 타고난 사람이었다.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순식간에 돌아갔으니 말이다. 하지만 남겨진 사람들에겐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었다. 기쁜 성탄 이브에 우리는 억장이 무너져서 오열했다. 아무런 예고 없이 닥친 일이라 더 황망했다.

 느닷없이 막이 내린 J의 무대를 보며, 나는 죽음이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다는 걸 실감했다. 빈소에서 애통해하던 친구들은 S와 J가 하늘나라에서 재회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슬픔을 달랬다. 그들이 지금 고통 없는 꽃동산에서 반갑게 만났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오다가 쑥 들어갔다. 언젠간 우리 모두 그녀들의 뒤를 따라서 가게 될 것이다. 가는 날까지 열심히 잘 살자. 먼 훗날에 먼저 간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되면, 여한 없이 사랑하며 영원히 함께 살자. 우리는 이런 말로 서로를 위로했다. 막연한 두려움과 착잡함은 ‘먼 훗날’이란 말 뒤에 살짝 감추었다.

 천상재회(天上再會)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회한을 천국 소망(天國 所望)으로 다독이는 내용의 노래다. J의 빈소에서 우리가 나눈 것과 똑같은 이야기에다 진심 어린 가수의 목소리를 더하니 영혼 깊은 곳까지 결결이 스며들었다. 그의 노래 덕분에 나는 깊이 묻어 두었던 다른 슬픔마저 다 해소할 수 있었다. 정말 고마웠다. 어느새 친구들의 2주기(周忌)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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