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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투표해라

"투표는 합법적 쿠테타(coup d’État)다"

  • 기사입력 2022.03.03 21:29
  • 기자명 김승동 대표 기자
▲ 대표기자 김승동/정치학 박사

3.9 대선이 한 주도 채 남지 않으면서 막판 선거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각 당이 자체 판세를 분석하고 여론조사 기관들도 선거 전망치를 내놓고 있지만 투표함의 뚜껑을 열 때 까지는 정확한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 다만, 정권교체 분위기가 여전히 높은 것 같다. 특히 윤석열.안철수의 단일화로 더욱 더 그렇다. 그러나 더 분명한 것은 투표 참가율이 이번 대선의 당선자를 결정한다. 어느 선거든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여러가지이나 지지자들이 얼마만큼 투표에 실제로 참여하느냐에 따라 당선자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어떤 후보가 자기 지지자들을 많이 갖고 있으나 그들이 막상 투표를 안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민주주의의 역사는 투표권 취득의 역사이고 참정권은 투쟁의 산물이다. 오늘날과 같이 성인 남·여이면 저소득과 고소득, 직업의 귀천에 관계없이 모두 각자 1인 1표씩 행사하는 보통선거권은 결코 공짜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Chartist Movement)과 같이 한 세기에 걸친 수 많은 사람들의 피나는 노력과 희생을 통해 쟁취한 것이다.

주요국의 참정권 역사를 살펴보면, 1776년 7월 4일에 독립선언을 발표한 미국의 선거 제도도 처음에는 보통 선거가 아니었다. 초기 미국 선거법에는 “선거권은 백인, 남성, 21세 이상, 재산 소유자, 납세 능력이 있는 자에게만 부여된다”라고 돼 있다.

다방면의 선진국으로 알려진 미국도 선거인의 자격에 재산ㆍ신분ㆍ성별ㆍ교육 정도 따위의 제한을 두지 아니하고, 성년에 도달하면 누구에게나 선거권이 주어지는 보통선거를 1920년에야 실시했고 물론 인디언까지 포함하면 1930년에야 1인 1표의 완전한 보통선거를 실시한 것이다. 따라서 선거제도에서는 미국이 선진국이라고 볼 수가 없다.

1861년 통일된 이탈리아도 초기에는 '선거권은 재산이 있는 21세 이상의 남성으로, 글을 아는 자에게만 부여된다'라고 하여 글을 알아야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제한선거를 시행했다. 전 세계에서 보통선거를 최초로 실시한 국가는 과연 어느 나라일까? 보통선거는 여성참정권이 허용돼야 완결되기 때문에 여성참정권 역사를 더듬어 보다 뜻밖의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으로 여성의 투표권을 보장한 나라는 1893년 뉴질랜드다. 결국 뉴질랜드가 지구상에서 보통선거를 최초로 실시한 국가인 것이다. 그 다음으로 호주가 1902년에 여성 참정권을 허용했으며 유럽에서는 핀란드가 1906년 유럽 최초로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면서 보통선거를 실시했다. 이어서 인접 노르웨이가 1913년, 덴마크와 아이슬란드가 1915년 여성 참정권을 보장하는 등으로 도미노처럼 여성참정권이 유럽의 인근 국가로 퍼져나간 것이다.

이때까지 지구상의 선진국으로 불리면서 모든 것을 앞서 나가던 영국과 미국 프랑스는 여성까지 투표권을 행사하는 보통선거는 실시되지 않았다. 오히려 서방측으로 부터 공산국가로 비난받던 소비에트 연방이 미·영·프보다 빠른 1917년에 여성의 투표권을 허용했다. 영국과 미국, 프랑스 등 민주주의 전통이 일찍 확립된 국가에서 여성참정권이 늦은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고 하겠다. 

영국은 1918년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제한적으로 참정권을 부여했다가 10년 뒤 21세 여성까지 확대했다. 결국 영국은 1928년에야 여성을 포함한 보통선거를 실시한 것이다. 미국은 1870년 흑인 노예에게는 1870년에 참정권을 줬다. 그러나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한 것은 1920년이었다. 여성 상위국가로 알려진 미국이 여성에게는 노예보다 50년이나 더 늦게 참정권을 허용한 것이다.

특히 프랑스의 여성 참정권 행사는 실로 지난(至難)한 투쟁의 결과였다. 1789년 8월 프랑스혁명 중 라 파예트(La Fayette)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프랑스 인권선언)’을 발표했지만 이 ‘인간’에서 여성은 제외됐다. “모든 인간은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 이 프랑스 인권 선언의 핵심 메시지인데도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여성혁명가 올랭프 드 구즈(Olympe de Gouges)는 ‘여성과 여성시민의 권리선언’을 통해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분야에 있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여성의 국민투표를 주장하는 벽보를 붙이다 체포돼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 단상에도 오를 권리가 있다”는 절규를 남긴 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구즈(Gouges)의 죄목은 ‘남성만의 평등을 위한 혁명에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었다. 이후 프랑스에서는 기나긴 암흑기를 거친 끝에 1944년에야 여성에게 참정권이 허용됐다. 이는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역사적 아픔의 실제 사례를 보여준 것으로서 2015년 프랑스에서 여성과 남성 장관이 똑같이 17명씩 남녀평등 내각이 탄생하기까지 무려 220년이 걸린 셈이다.

또한 여성참정권을 허용하지 않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015년 12월에야 여성들에도 처음으로 투표권이 허용돼 큰 국제뉴스가 됐다. 

대한민국은 참정권 면에서는 복을 받은 나라다.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제헌국회를 구성하기 위해서 실시한 첫 번째 국회의원 선거에서 처음으로 국민투표를 실시했는데 만 21세에 이상의 남녀 모든 국민에게 투표권이 부여됐다. 물론 이 첫 번째 선거는 좌익계의 방해공작 등으로 제주도가 총선거에서 제외되는 상태에서 치러지긴 했다.

어쨌든 우리는 어느 나라보다 너무 쉽게 아무런 희생이나 어려움 없이 보통선거의 참정권을 행사한 것인데 이는 당시 남한을 신탁 통치했던 미국이 자기들이 시행하고 있던 민주적 선거제도를 이 땅에 그대로 접목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너무 쉽게 투표권이 주어져서 그런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참정권을 얼마나 어렵게 쟁취했는지에 대한 역사적 인식도 없이 투표일은 그저 뜻밖에 횡재한 노는 날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 실망스럽기도 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너무도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 북의 안보위협과 경제침체, 젊은이들의 삼포(결혼.취직.주택) 문제, 리더십의 부재 등 참으로 암담한 총체적 어려움이 대한민국의 내일과  각자 삶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내일 4일부터 시작되는 사전 선거를 앞두고 이제 남은 것은 국민들의 선택뿐이다. 투표는 우리 대리인을 뽑는 것이고 미래에 대한 우리 삶이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기 위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투표 결과가 기대에 어긋날 때도 있지만 역사를 더듬어 크게 보면 그렇지가 않다.

선거는 좋은 일꾼을 뽑기도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일꾼을 교체하기도 하는 제도이다. 어쩌면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기도 하나 투표에 참여해야 더 나은 세상이 열릴 수 있다. 

1948년 유엔 세계인권선언의 초안 작성에 참여한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살아있는 전설 스테판 에셀(Stephane Hessel)는 『분노하라』에 이어 몇 년 전 『참여하라』라는 책을 통해 사회에 대한 무관심은 그 자체로 죄악이라며 "분노했다면 참여하라! 참여가 세상을 바꾸는 첫 번째 발걸음이다!" 라고 부르짖었다.

플라톤은 "정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받는 벌 중 하나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신은 투표를 외면한 대가를 받고 싶은가?

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투표해라.

투표가 세상을 바꾼다. 투표는 합법적인 쿠테타(coup d’État)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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