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제약사의 지출 투명성과 K-선샤인 액트(Sunshine Act)

"제약사들 정부 지원금 받아 약을 만들곤 약값도 올려"
"지원금 지출보고서 공개 제도 안착시켜야"

  • 기사입력 2022.03.07 08:45
  • 기자명 UAEM Korea

코로나 펜데믹으로 전 세계가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이해 백신 및 치료제 개발 등 바이러스를 극복하기 위한 Research & Development (R&D, 연구개발)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의 여파로 인해 많은 거대 제약 바이오 회사들이 영업 및 판매 등 경영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한편, 대다수의 기업이 R&D에 대한 투자를 확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우리에게 익숙한 화이자 백신, 모더나 백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등 코로나 백신을 개발하는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됐으며, 국내의 경우에도 매출 상위 20개 제약사들의 2019년 대비 2020년 연구개발비 투자가 약 18.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많은 글로벌 제약사가 R&D에 대한 투자를 폭발적으로 늘릴 수 있었던 데에는 정부 지원금의 역할이 매우 컸다. 글로벌 시장 분석사 에어피니티에 따르면,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개발에 사용된 81억 파운드(한화 약 12조6000억원) 가운데 14억 파운드(한화 약 2조1800억원)가 정부 예산으로 투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도 2021년 상반기 SK바이오사이언스, 셀트리온, 제넥신 등 주요 바이오 기업들이 약 500억 원이 넘는 규모의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았으며, 특히 보조금의 약 70%가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는 기업에 집중된 것으로 확인됐다. 

기업에게 제공되는 정부 지원금은 당연하게도 국민 세금의 일부이다. 따라서, 국민은 제약회사에 투입되는 공적 자금과 지원금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알 권리가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제약사들의 구체적인 지원금 사용 내역을 알기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므로 공적 자금과 지원금이 제약사의 신약 판매 및 홍보, 로비에 사용돼도 소비자들은 알 도리가 없으며, 이러한 지출이 약값 인상을 불러오기도 한다. 이미 기초 연구에 대한 공적 자금과 세금 감면 등으로 막대한 지원을 받고 있는 제약회사들이 의약품의 가격을 계속 인상시켜 더 큰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 중 하나는 미국 트럼프 정권 때 실패한 약값 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중 제약업계에 맞서 조제약 비용을 감소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행정부 내 주요 관리직을 제약계 내부자들로 채우는 등 행정부와 제약회사가 연합하는 듯한 관행을 보였고, 이에 대한 직접적인 결과로 약값이 상승하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약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1형 당뇨로 고통받고 있으며, 당뇨를 가진 45명 중 1명은 치솟은 약값으로 인해 필요량보다 더 적은 인슐린을 투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인슐린은 한 병(바이알)에 약 300달러인데, 2018년 미국 의회의 당뇨병 위원회(Congressional Diabetes Caucus)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인슐린 가격이 2배로, 10년 전보다는 거의 3배로 인상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결과인 인슐린 배분 문제가 당뇨성 케톤산증이나 사망을 초래하지만, 많은 미국인들은 인슐린의 높은 가격으로 인해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제약사들의 지출 투명성과 관련된 우려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이에 미국에서는 2010년 건강보험개혁법(Affordable Care Act, ACA), 일명 ‘오바마 케어’가 개정된 후, '의료진 선샤인액트(Physician Payments Sunshine Act)'가 시행되면서 제약 산업이 의대·병원·의사 등 의료계에 지급하는 금액을 기록하고 공개하는 것이 의무화되었다. 오픈 페이먼트(Open Payments) 프로그램을 통해 특정 제약사가 특정 의사에게 지급한 경제적 이익을 확인할 수 있으며 지불한 금액을 제약사별, 기관별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영리 목적의 산업 활동이 의료진의 의사결정 및 의료 비용에 과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약품 리베이트’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의약품 리베이트’란 의사나 약사가 의약품 사용 대가로 받는 여러 형태의 비공식적인 이익을 말한다.

미국에 이어 일본 역시 ‘투명성 가이드라인’ 제도를 도입해 제약산업의 책임과 투명성을 제고하고자 했다. 이는 미국의 선샤인액트 사례처럼 강제성이 있는 법률은 아니지만, 협회의 회원사들간 공동행위로 성립된 자치 규범의 성격을 띄어 대부분의 회원사들이 지침을 통해 정보 공개를 하고 있다. 미국, 일본뿐만 아니라 영국 역시 2016년부터 디스클로저 UK(Disclosure UK)를 운영해 의료진과 의료기관에게 영국 내 제약사가 지불한 금액과 혜택을 공개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제약업계 지출보고서 공개를 담은 약사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작성’ 의무만 있었던 지출보고서의 내용이 2023년부터는 ‘공개’ 의무로 확대되었다. 기존의 지출보고서는 작성 자체만이 의무였기 때문에 일부 제약업계의 영업직원들은 법인카드의 사용형태가 불순하더라도 지출 보고서는 문제가 없어 보이게끔 작성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2019년 10월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한국애보트와 종근당의 지출보고서에서 금액, 보고연도 등에 오류가 확인되었으나, 이를 감시해야 할 보건복지부가 이 사실을 1년 가까이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사례가 있었다. 작성 의무 제도 시행 이후 보건복지부가 지출보고서 제출을 요구한 업체는 종근당, 유한양행, 대웅바이오, 한국애보트 총 4곳에 불과하며, 나머지 6천 8백 개의 업체들의 보고서는 단 한번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공개도 감시도 없는 기형적인 입법이 이루어진 데에는 입법화 과정에서의 문제가 컸다. 최초로 발의된 의료기기법 개정법률안에서는 매년 감독기관에게 업체의 지출보고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되어있었으나, 해당 법안이 국회 내 법안 검토과정에서 여러 반대 의견에 부딪치면서 ‘작성 의무’만을 규정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의견이 대다수였고, 이에 2021년 지출보고서의 공개를 의무화하는 개정 법률안이 통과된 것이다.

지출보고서 공개를 둘러싼 산업계, 의료계, 정부 각각의 입장을 살펴보면, 산업계의 경우 공개 제도의 목적은 살리되 개인정보, 영업비밀 부분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해줄 것을 요구하는 입장이다. 반면, 의료계는 공개제도에 반대하는 가운데 합법적인 경제적 이익제공 행위를 차단하고 음성적인 리베이트를 부추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정부는 지출보고서 공개 시기 및 범위, 방법과 관련해 전문가와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을 수행할 계획이며, 부작용을 최소화해서 공개 제도를 안착시키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지출보고서 공개 의무 전환의 취지는 국민건강 증진 및 국민 신뢰 제고와, 신약개발과 의약품 정보전달에서 제약-의료계 간 긍정적인 상호작용에 있다. 실효성 있는 K-선샤인액트가 이제 막 첫 발을 내딛은 만큼, 의약품 영업 대행 업체(Contract Sales Organization, CSO)는 개정법에 의해 회계 및 세무처리의 투명성과 적정성을 확보하고, 지출보고서 작성, 보관, 제출 의무를 수행할 능력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다. 또 제약회사는 CSO의 업무 과정이 문제가 될 경우 공동으로 그 문제를 떠안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에 대비해 CSO 업무 수행방식의 적정성을 사전에 확인하고, 지속적으로 CSO를 관리, 감독함으로써 지출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글쓴이 : 강주은(을지대학교 간호학과), 고미서(경희대학교 아동가족학과), 최예슬(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정사회
경제정의
정치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