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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 troops out!

연재 25회

  • 기사입력 2022.03.13 01:01
  • 기자명 이철원 전 아라우 파병부대장

6월경 타클로반 시내, 사람이 많이 다니는 중심도로 건물 외벽에 누군가가 붉은색 락커로 ‘US troops out now! BAYAN’ 라는 ‘반미’ 구호를 써놓았다. (BAYAN는 애국자라는 의미로 제국주의로부터 국가 및 사회를 해방시키고자 하는 반정부 조직)

필리핀은 327년간의 스페인 식민지배로부터 독립 후에 다시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되자 강하게 저항하며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1899~1902년 4년간의 필리핀-미국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종료되었고 이후 43년간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독립전쟁 기간 중에 사마르 주에서 미군 48명이 필리핀 독립군에 의해 희생되자, 미국이 보복의 일환으로 독립군 주거 마을의 10세 이상 남자를 모두 학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60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미군이 1942년 일본에 패해 필리핀에서 철수를 하게 됨으로 일본군에 의해 많은 필 리핀 국민이 희생되었는데 일부 주민들은 “미군이 아무런 대비책 없이 철수하여 일본에게 많은 피해를 받았다”라고 얘기한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한 이후 1992년까지 미군이 필리핀에 주둔하면서도 미군과 필리핀 주민 사이에 많은 갈등이 야기되었다. 필리핀 주 민의 반미감정은 미 해병대 병사가 필리핀 여성을 강간하고 살해한 죄로 체포되어 필리핀 경찰로부터 미 헌병에 인계시 필리핀 TV 방송매체를 향해 손가락 욕을 함으로써 폭발하였다. 또한 미군이 주둔하였던 수빅 해군기지와 클라크 공군기지에 유동성폐기물을 땅에 버린 후 미군이 철수하면서 콘크리트로 덮어 은폐했었다. 이로 인해 주변지역 주민은 생활터전이 오염되어 각종 암과 피부병에 시달렸다. 결국 주민들이 미국과 필리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필리핀 주민들이 미군 주둔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미국이 철수한 이후 남중국해에 영토분쟁이 심화 되자 필리핀에 미군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미국과 필리핀은 우리 가 파병기간 중인 2014년 4월 28일, 중국과 남중국해 분쟁으로 인해 미군의 복귀(재 주둔)를 합의하는 군사협정을 채결하였다. 2014년 6월에는 미 태평양사령부가 주관하는 Pacific Partnership 훈련 중에 미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일본, 싱가폴 6개국 병력이 우리가 활동하고 있었던 타클로반 일대에서 학교와 병원 복구 및 의료지원 활동을 실시했다. 

미군의 필리핀 재주둔 결정, 연합훈련 등 양국의 안보협력 강화활동과 태풍피해 직후 군 병력 파견을 통한 피해복구와 구호활동으로 지역주민의 반미감정이 점차 감소하는 추세에 있었다. 그런데 미군이 재해복구 활동 간에 작업지역에 접근하는 주민의 출입을 금지시키는 과정에서 일부 주민과 마찰이 발생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벽에 그려진 반미구호는 과거사에 대한 앙금과 최근 주민과의 마찰로 인한 반미 성향의 일부 주민이 우발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그러다가 10월에 미군과 필리핀 양국간의 대규모 합동훈련을 위해 필리핀 수빅만에 상륙한 미 해병대원이 필리핀 ‘트렌스젠더’를 살해 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필리핀의 반미시위가 연속 발생하여 양국은 반미기류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었다. 10 월 20일 레이테 상륙작전 70주년 행사에 참석한 주필리핀 미국대사 는 “필리핀의 안보공약 준수의지를 약속하면서 양국의 군사협력 확대가 필요하다”라고 역설하였고 필리핀 대통령은 “살해 사건을 이유로 양국의 군사교류협정을 폐기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미 태평양사령관은 이번 사건에 유감을 표시하며 필리핀 정부의 수사에 충실히 협조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결국 현지인 살해사건 용의자 스콧 일병은 10월 22일 필리핀 검찰로 인도되었으며, 양국 간의 갈등이 진정국면으로 전환되었다. 

나는 일련의 사건들과 관련하여 “반미감정이 반한감정으로 전환되지 않도록 재해복구 활동간 각별히 유의하여 우리와 접촉하는 한 사 람의 주민도 한국에 대하여 불만이 없도록 관리를 해야 한다”라고 병력들을 교육시켰다. 또한 현지 언론사 사장, 기자단과 수시로 간담회를 실시하여 여론을 모니터하면서 우리의 활동을 우호적으로 보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였다. ‘탑을 쌓기는 어렵지만 무너지기는 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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