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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전개된 몽골 제국의 후예, 무굴 제국 탐방

[연재 37회]

  • 기사입력 2022.03.26 00:00
  • 기자명 김석동
▲ 필자 김석동 

인도 여행은 여행자들의 로망 중 하나이다. 그동안 델리, 아그라, 뭄바이 등 몇 군데를 다녀온 바 있었으나 기마군단이 건설한 세력 중 가장 마지막까지 남았던 제국의 하나인 무굴 제국의 잔영을 둘러보고자 다시 북인도 여행에 나섰다. 인도의 면적은 329만 km2로 세계에서 7번째로 크다. 우리나라의 약 33배 정도이다. 인구는 12억 2천만 명으로 세계 2번째, 우리나라의 25배이다. 워낙 큰 나라이고 곳곳에 수많은 유적지가 남아있지만 그중에서도 북인도 지역은 무굴 제국의 심장부로 제국의 옛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많은 유적이 있다.

기원전 3000~1500년경 꽃핀 인도의 인더스 문명은 세계 4대 문명의 하나이다. 모헨조다로, 하라파 유적은 기원전 2500년경 정교한 계획하 에 건설된 도시 문명의 흔적이다.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1500년경 아리 아인의 침입 등으로 갑자기 사라졌고 이후 고대 도시국가, 마우리아 제국, 굽타 왕조 등으로 이어졌다.

11세기 초, 아시아 기마유목민인 투르크가 인도 북부에 진출하면서 이슬람 왕조가 성립했다. 투르크의 가즈나 왕조 때 인도인들이 대규모로 이슬람을 받아들였고 이후 ‘델리 투르크 술탄국’으로 통칭되는 고리스, 큐비스, 하락족 등 투르크의 여러 세력이 15세기 초까지 북인도를 지배했다. 한편, 14세기에는 사마르칸트의 ‘철 의 군주’ 티무르가 몽골 제국 재건을 기치로 중앙아시아에 380만 km2에 달하는 ‘티무르 제국(1370~1526년)’을 건설한 후 비단길과 자신의 제국 을 보호하기 위해 한때 북인도를 점령했다.

▲ 무굴 제국의 국기 

티무르 제국 멸망 후 16세기에 중앙아시아 카불 지역의 티무르 5대손 ‘바부르’가 연고권을 내세우면서 다시 북인도에 진출하여 델리를 점령하고 무굴 제국을 세웠다. 2대 ‘후마윤’과 3대 ‘악바르’ 대에는 북인도 전역과 북서부 펀잡, 인더스 하류, 데칸 지역, 아프가니스탄 등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대제국을 형성했 다. 4대 ‘자한기르’에 이은 5대왕 ‘샤 자한’은 데칸을 정복했으나 티무르 제국의 수도였던 사마르칸트를 회복하는 꿈은 이루지 못했다. 대신 그는 수많은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을 남겼다. 올드델리, 레드포트, 자마마 스지드, 타지마할 등이 그의 ‘꿈’을 웅변하고 있다. 6대 ‘아우랑제브’는 1687년 데칸 지역을 완전 정복하고 인도 전역을 지배하는 최대 판도를 이루었으나 인도의 이슬람화를 고집하여 힌두교도 등을 탄압하면서 제 국은 분열되고 마침내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열강의 세력 다툼의 틈새에서 세력이 약해지고 1857년 영국이 ‘세포이 항쟁’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굴 제국은 330년 만에 멸망했다. 이렇게 무굴 제국은 인도 전역을 지배했으나 북인도 지역이 제국의 중심부였다.

인천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9시간 정도 지난 저녁 무렵에 인도의 수도 델리의 인디라간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델리는 인구가 1,680만 명에 달하는 수도로 북부 갠지스강 지류인 야무나강 기슭에 있다. 올드델리와 새로 건설한 뉴델리 등으로 구성되며 올드델리는 오랫동안 무굴 제국의 수도로 샤 자한 때 건설됐다. 이튿날 델리에서 붉은 요새를 뜻하는 레드 포트를 둘러보았다.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성으로 샤 자한이 10년에 걸 쳐 지은 높이 18m의 성벽이 2.4km에 달하는 인도 최대 규모의 성이다. 이어 방문한 자마 마스지드 역시 샤 자한에 의해 건축된 인도 최대의 모스크이다. 역시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39m 높이의 2개의 미나레트가 예 배실을 호위하는 모습이다. 이어 인도 고대 건축 양식으로 지은 힌두교 최대 사원인 악차르담, 힌두교에 대한 이슬람교의 승리를 기념하는 이슬람 건축의 유산 쿠툽 미나르 등을 둘러보고 다음 날 아침 일찍 국내선 비행기로 3시간 남짓 걸려 ‘바라나시’로 향했다.

▲ 쿠룹 미나르  

바라나시라는 이름은 ‘영으로 충만한 도시’란 의미를 가졌다. ‘바라나시를 보지 않았다면 인도를 본 것이 아니다’라고까지 한다. 마크 트웨인은 “역사보다, 전통보다, 전설보다 오래된 도시”라 했다. 바라나시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힌두교와 불교의 손꼽는 성지로 연간 100만 명이 넘는 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해서 갠지스강에서 목욕하면서 심신을 달랜다. 7세기 초 신라 승려 ‘혜초’가 다녀간 후 《왕오천축국전》을 기록했고 이에 한 세기 앞서 당나라의 현장에 방문하고 《대당서역기》 를 남긴 바 있다.

▲ 델리 뒷골목 

이곳을 흐르는 갠지스강은 길이가 2,460 km에 달하며 히말라야 산맥에서 발원해서 델리 북쪽을 지나 힌두스탄 평야로 흘러들어간다. 때문에 힌두교도들에게는 성스러운 강이다. 인도인들은 이 강에서 목욕을 하면 이생의 죄를 면하고, 죽어 화장해서 이 강물에 흘려보내 면 내생에 극락에 간다고 믿는다. 시내에서 갠지스강까지 ‘릭샤’라는 자전거형 인력거를 타고 30분 정도 갔다. 매캐한 매연과 먼지로 뒤덮인 혼 잡한 거리를 수많은 인파와 인력거들이 아슬아슬하게 피해가는 장면이 마술같이 연출됐다. ‘진정한 인도의 모습’이라는 이 광경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갠지스 강변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계단 아래로 내려가 강 물에서 목욕을 하고 있고 또 강 한편에서는 시신을 화장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갠지스 강가에서 죽은 자를 화장해서 떠내려 보내는 이 장면을 보는 이들은 만감이 교차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갠지스 강에서 작은 배를 타고 보는 강변의 휘황찬란한 야간 축제도 기억에 오래 남았다. 갠지스강 주변에는 수많은 힌두교 성지가 있다. 바라나시 인근에는 불교 4대 성지 중 하나로 석가모니가 득도한 후 최초로 설법했다는 곳인 지금도 불교 유적지가 다수 남아있는 ‘사르나트’가 있다.

▲ 갠지스강으로 가는길  

다음날 새벽 다시 갠지스강으로 가서 일출을 본 후 ‘카주라호’로 향했다. 버스는 짙은 안개로 산속을 헤매다 당초 예상했던 시간을 훨씬 초과해 14시간 가까이 걸려 카주라호에 도착했다. 카주라호는 1세기경 번창 했다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찬델라 왕조의 유적지로 20여 개 이상의 힌두교와 자이나교의 사원이 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서쪽에 위치한 사원에서는 야릇하고 에로틱한 부조와 조각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어 방문객의 시선을 모았다. 카주라호에서 기차를 타고 무굴 제국의 심장부라 할 아그라로 향했다. 기차역은 수많은 인파로 혼잡스러워 전시 피난 열차를 타려는 장면이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막상 수많은 인도 여객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편한 표정을 하고 있다.

▲ 갠지스 강변에서 본 야경  

아그라는 델리에서 야무나강을 따라 남동쪽으로 약 200 km 떨어진 곳에 있는 지방도시로 기원전부터 존재해온 고도이다. 15세기 중반 로디 왕조가 수도로 삼은 후, 무굴 제국 3대 악바르 대제가 1564년 천도하여 1658년까지 약 1세기 동안 제국의 중심으로 번창했던 도시이다. 아그라에서는 인도의 상징이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타지마할이 여행객을 기다린다.

▲ 아그라 성  

타지마할은 샤 자한이 사랑했던 아내 뭄타지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22년 동안 기능 인력만 2만 명을 동원하여 대리석과 사암 그리고 세계의 보석들로 1653년 완성한 건축물이다. 좌우가 정 대칭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보는 이들마다 감탄을 금하지 못하며, 백색의 대리석 외장은 태양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오묘하게 변하면서 사람들을 마술 속으로 이끈다. 타지마할 맞은편에는 아그라의 대표적인 요새인 아그라성이 있다. 이 성은 아그라가 무굴제국 수도일 당시 황제들의 거주지이자 군사요새였다. 5대왕 샤 자한이 6대 왕 아우랑제브에 의해 폐위되어 죽을 때까지 유배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무굴 제국의 권력을 상징하는 이 거대한 성은 붉은색 사암으로 지어져 붉은 요새Red Fort라고도 불리며 해자와 함께 2.5 km에 달하는 성벽이 요새를 둘러싸고 있다.

▲ 시크리   

다음 행선지는 아그라에서 약 37km 거리에 있는 ‘파테푸르 시크리’이다. 악바르 대제가 1570년부터 1585년까지 수도로 삼았던 도시로 ‘승리의 도시’라는 뜻을 지녔다. 왕궁을 비롯한 모스크 등 다양한 건물과 흔적이 남아있다. 수도를 다시 아그라로 옮긴 후 400년간 인적이 드물게 되어 지금까지 비교적 잘 보존된 무굴 제국의 건축물을 볼 수 있다. 시크리에서 델리로 돌아와 무굴 제국의 산실 북인도 여행을 마무리했다. 무굴 제국은 가장 오래까지 남았던 기마유목민들이 건설한 제국 중 하나이다. 동아시아에서는 1100만 km2에 달했던 청나라(여진)를 끝 으로 1912년 중국사로 편입되었고, 서아시아와 동 유럽 지역에서는 560만 km2에 달하던 오스만 투르크(돌궐)가 19세기 이후 발칸반도, 이집트, 아랍 등을 차례로 상실하고 현재의 터키 지역으로 축소되었다. 남아시아에서는 무굴 제국(몽골)이 영국에 의해 멸망한 후 인도사의 한 왕조로 편입돼 기록되었다. 이로써 2500년간 유라시아 대초원을 누비며 세계사를 써왔던 기마민족, 초원 제국의 역사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현대에 들어와 인도와 우리는 중요한 교역 대상국으로 부상하였고 양국간의 교류도 확대되고 있다. 한-인도는 2010년 CEPA(포괄적 경제동반 자협정) 발효 이후 무역투자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인도는 우리나라 9번째의 수출시장이다. 인도의 성장 가능성은 세계가 인정한다. 인도는 2016년 GDP 규모가 2조 2,638억 달러로 미국, 중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다음으로 큰 나라이며 2030년대에는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의 거대 경제국가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나라이다. 아무쪼록 한-인도간 협력관계가 새로운 미래의 성장동력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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