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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인민대중제일주의》에 숨겨놓은 비밀

"인민대중제일주의’를 마치 우리의 ‘국민’ 중심적인 정치이념으로 받아들이면 큰 오해"
‘사람’도 보편적 의미의 ‘사람’이 아닌 ‘사상 개조’로 만들어진 '공산주의적 인간'

  • 기사입력 2022.03.29 22:07
  • 기자명 유판덕 객원 칼럼니스트
▲ 평양 노동신문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은 2016년 5월 제7차 당대회 총화 보고에서 “인민대중제일주의를 구현하는 것은 우리 당의 본성적 요구”라고 했다. 또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 시정연설에서는 “혁명의 지도사상인 김일성-김정일주의의 본질을 인민대중제일주의로 정식화한다”고 밝혔다. 마침내 북한은 2021년 1월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개정된 당규에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사회주의 기본정치방식’으로 명시했다. 즉, 김정은 시대의 북한을 지도 및 통치하는 정치이념을 ‘인민대중제일주의’로 정식화한 것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인민대중제일주의’란 무엇일까? 김정은은 ‘인민대중제일주의’ 개념을 “인민대중을 혁명과 건설의 주인으로 보고 인민대중에게 의거하며 인민을 위하여 멸사복무할 데 대한 정치이념”이라고 밝혔다. 이 개념은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이 정립한 주체사상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인 ‘인민대중의 지위와 역할’을 강조한 “주체사상의 사회역사원리”를 차용(借用)하여 자신의 정치 이데올로기로 개념화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김정은의 ‘인민대중제일주의’는 특별히 새로운 정치이념이라기보다 당규약에 ‘김일성-김정일주의’로 규정하여 두 선대수령을 같은 반열에 올려놓은 것처럼 ‘사회정치적생명’으로 영생하는 수령들의 ‘계승성과 동일체성’을 전제로 볼 때 ‘주체사상’의 한 아류(亞流)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또 이 개념을 자세히 보면 미국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Gettysburg) 명연설 형식과 매우 유사해 보인다. ‘인민대중을 혁명과 건설의 주인으로 보고’를 ‘of the people’로, ‘인민대중에게 의거하며’를 ‘by the people’로, ‘인민을 위하여’를 ‘for the people’로 바꿔 놓고 보면 너무 흡사하다. 미국을 “철천의 원수”로 여기며 반미·반제국주의 선봉에선 북한의 입장을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그럼, 북한 지도부가 ‘인민대중제일주의’에 숨겨둔 비밀이 무엇인지 김정은이 정의한 개념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네 가지 비밀을 들춰 내본다. 

첫째, ‘인민’이란 개념에 숨겨둔 비밀이다. ‘인민대중제일주의’라고 하여 마치 우리의 ‘국민’ 중심적인 정치이념으로 받아들이면 크게 오해 할 수 있다.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국민과 유사한 의미에서 ‘인민’을 위한 정치이념이라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기본권인 거주이전과 직업 선택의 자유를 박탈하며, 수십만의 인민을 굶겨 죽이겠는가? 

북한은 주체사상을 ‘사람 중심의 철학사상’이라고 한다. 여기서 ‘사람’은 우리가 말하는 보편적 의미의 ‘사람’이 아니라 ‘사상 개조’를 통해 수령이 주는 ‘사회정치적 생명’을 가진 ‘주체형의 공산주의적 인간’을 지칭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집단이 ‘인민대중’이다. 따라서 ‘인민대중제일주의’는 수령인 김정은의 유일지배 체제와 북한식 사회주의에 순종하는 집단만을 위한 정치이념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혁명과 건설의 주인이 인민대중”이란 어구(語句)에 숨겨둔 비밀이다. 여기서 ‘혁명과 건설’은 사회주의혁명 투쟁과 북한을 사회주의 강국으로 건설한다는 의미다. 과연 북한 인민들이 북한의 진정한 주인일까? 주체사상에서는 인민대중이 주인으로서 지위를 갖고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먼저 수령의 영도를 받아야 하고, 수령의 혁명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여 수령과 당에 끝없이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아 놓았다. 그들의 이론적 논리에 따라도 ‘주인’이란 표현은 대외적 선동 언어일 뿐이고 사실상 ‘수령의 노예’인 것이다. 

셋째, “(혁명과 건설은) 인민대중에게 의거하며”란 어구에 숨겨둔 비밀이다. 세 번째 비밀은 두 번째 비밀과 이어봐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북한 주민을 ‘혁명과 건설의 주인’으로 추켜세워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각종 강제동원에 종속시킬 수 있도록 사상이론적 명분과 근거를 제공한다. 현재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가 이 같은 사상이론적 근거를 바탕으로 주민들을 수령과 당의 영도에 맹종하는 집단으로 만들어 국제제재와 경제난, 식량난, 질병 등으로 약해진 ‘체제 지탱력’을 회복하고자 고안한 것이 ‘인민대중제일주의’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넷째, “인민을 위하여 멸사복무할 데 대한 정치이념”이란 어구에 숨겨둔 비밀이다. 네 번째 비밀은 김정은이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주창한 배경과 시점과도 닿아 있다. 김정일의 급사로 권좌를 물려받은 김정은은 집권 초기 할아버지 김일성의 외형 복제와 부인 이설주를 내세운 ‘퍼스트레이디’ 정치로 ‘정상국가의 지도자 이미지’ 선전에 몰두했다. 이러한 노력은 아버지 김정일에 비해 약한 카리스마와 권력의 정통성을 조기에 강화하려는 의도로 짐작할 수 있다. 이 같은 시도는 고모부 장성택 처형과 이복형 김정남 독살을 비롯해 무자비한 정적 제거 전까지는 스위스 유학을 통해 서양문화를 경험한 ‘인민을 사랑하는 젊은 지도자의 리더십’에 기대를 갖게 하기도 했다. 

김정은은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인민을 위해 멸사복무하는 정치이념’으로 미화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2020년 10월 10일 늦은 밤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축하 연설에서 ‘인민’들을 향해 “고맙다.”며 울먹이는 ‘읍소(泣訴) 쇼’를 벌인 데 이어, “나는 우리 인민의 하늘 같은 믿음을 지키는 길에 설사 몸이 찢기고 부서진다 해도 그 믿음만은 목숨까지 바쳐서라도 무조건 지킬 것(당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위대한 우리 인민을 내 운명의 하늘로 여기고 참된 인민의 충복답게 위민헌신의 길에 결사 분투할 것임을 엄숙히 선서(제8차 당대회)” “현시기 가장 중요하고 사활적인 혁명과업은 인민 생활을 안정 향상시키는 것(최고인민회의 제4기 5차 회의)” “인민들에게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고 애로를 제때 풀어주는 것은 우리 당과 국가가 최 중대사로 내세우는 활동원칙(당중앙위 제8기 제3차 전원회의)” 등 기회 있을 때마다 ‘인민’을 추켜세웠다. 하지만 김정은은 지난해 4월 제6차 노동당 세포비서 대회 폐회사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자연재해, 국제제재로 굶주림과 삶에 지친 인민들에게 또다시 ‘고난의 행군’과 ‘자력갱생’을 내세우며 허리띠를 더 조여 맬 것을 강요했다. 

이상의 네 가지 숨겨둔 비밀들을 종합해보면 ‘인민대중제일주의’는 북한 주민을 위한 김정은 시대의 새

▲ 유판덕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사무총장/한국DMZ학회 사무총장

로운 정치이념이라기보다 선대수령과 김정은 자신의 실정(失政)으로 약해진 권력과 사회주의 체제 지탱력 복원을 위한 ‘기만정책’을 미화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이는 북한 지도부가 인민을 위해 ‘멸사복무’하는 정치이념이 아닌 오히려 인민들이 수령과 당에 무조건 충성하도록 유도하는 ‘수령제일주의’라 해야 할 것이다. 

1980년대의 주사파 세력들이 우리 사회를 이념적으로 오염시켜 오늘날 극심한 혼란을 겪게 했듯이, 지금의 주사파 좀비들이 또다시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사람 중심 사상’이라고 망동하며 우리 사회를 적색으로 감염시킬까 심히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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