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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모두 집행이 연기된 사형수"

  • 기사입력 2022.04.03 12:56
  • 기자명 이정식 작가
▲빅토르 위고(1802~1885)

빅토르 위고의 작품 『사형수 최후의 날』은 그의 나이 27세 때인 1829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작품 속에서 젊은 사형수는 사형 당하는 순간까지도 애처롭게 특사 즉 특별사면이 내려오기를 기다린다. 그가 죽으면 그의 가정에는 늙은 어머니와 아내와 세 살 난 딸이 남게 된다. 사형수는 아무 것도 모른 채 놀고 있을 어린 딸이 가장 불쌍하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사형수는 사형 당하기 전 잠시 눈을 붙인 사이에 꿈 속에서 자기를 찾아온 어린 딸을 본다.

사형을 앞두고 그는 탈옥을 상상한다. 그 대목은 이렇다. “오! 여기서 탈출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힘껏 벌판을 가로질러 줄달음을 칠 것인가! 아니, 달음질을 쳐서는 안 될 게다. 남의 눈을 끌고 의심을 받게 될 터이니까. 그와 반대로, 고개를 번쩍 들고 노래라도 부르며 천천히 걸아가야 할 게다. 울긋불긋한 무늬 있는 푸른 덧옷 작업복 허름한 것이라도 구해 입어야 할 테다. 제법 그럴 듯한 변장이 될 것이다. 이 근방 채소 재배인들은 대개가 그런 옷을 걸치고 다니니까 말이다.” 그같은 공상을 해보지만 문이든 창이든 천장으로든, 탈옥하다가 대들보에 살점을 남길 망정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 자기에게는 못 하나도 없다.

그래서 그의 상상은 특사로 바뀐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특사를 기다린다. “아! 사면을 받을 수 있다면! 사면을! 아마 사면될지도 모를 일이다. 국왕이 나를 미워하는 건 아니다. 나는 중노동형을 받겠다. 5년 혹은 20년이라도. 종신 중노동형에 처해도 좋다. 목숨만 살려 주면. 중죄수 같으면 그래도 걷기도 하고, 왔다 갔다 할 수도 있고, 햇빛을 볼 수도 있지 않은가.”

문득 사형장에서 감형돼 목숨을 건진 도스토옙스키 생각이 났다. 사형수였던 도스토옙스키도 처형장으로 가면서 앞의 사형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살아있어야 걷기도 하고 햇빛도 보고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도스토옙스키의 죄는 독서모임에서 러시아의 전제체제와 차르를 비판하는 비평가 벨린스키의 편지를 읽은 죄였다. 1849년에 발생한 페트라셰프스키 사건이다.

그래서 사형장에서 처형 되기 직전 황제의 칙령으로 시베리아 유형으로 감형 됐을 때 도스토옙스키는 너무 기뻐서 감방으로 되돌아온 후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되찾은 생명에 감사하며 추운 겨울날 밤,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에 뚜껑도 없는 말 썰매를 타고 시베리아 유형길에 올랐다. 도스토옙스키는 사형장에서의 생명에 대한 기적적인 경험 덕에 혹독한 유형생활을 잘 견뎌내고 건강하게 출옥할 수 있었다. 

위고의 소설은 도스토옙스키의 처형장에서의 그 사건보다 20년도 더 전에 쓰여진 것이다. 『사형수 최후의 날』에서 사형수는 단두대 앞에서도 끝까지 그러한 기적을 기다렸다. 그는 사면이 내려올지 모르니 형 집행을 5분만 늦춰달라고 사정한다. 자기에게 사면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오! 피에 주린 짐승처럼 고함을 지르는 저 끔찍스러운 군중! 내가 그들에게서 벗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혹시 살아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 내 특사령이---? 내게 특사령이 내리지 않다니, 그럴 리가 없다! 아! 저 망할 놈들! 놈들이 층계를 올라오는가 보다---.‘4시!’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오후 4시에 단두대에서 형이 집행됐다는 얘기다.

이 소설에서 위고는 이 사형수가 젊은 사람이며 라틴어를 말할 수 있을 만큼 공부를 한 사람이라는 것은 밝혔으나 어떤 죄를 저질러 사형수가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출판사에서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그 대목을 첨가해 달라고 위고에게 요청했지만 그는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위고가 이 소설을 통해 사형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을 독자가 느끼기를 바랬으며, 그래서 단순한 소설로 읽히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말해 어머니와 아내와 딸을 가진 모든 이들이 소설 속의 사형수 즉 주인공 또는 당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 주인공의 모델은 자신이 사랑하던 소녀를 죽인 죄로 처형된 루이 울바흐라는 젊은 사형수로 알려져 있다. 울바흐는 1827년 9월 27일 사형에 처해졌고 위고는 그 다음날부터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빅토르 위고가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기 위해 이 소설을 낸 것은 1829년이고 프랑스가 사형제를 폐지한 것은 1981년이다. 무려 152년이 흐른 뒤였다.

『사형수 최후의 날』 속에는 ‘인간은 모두 집행이 연기된 사형수’라는 말이 나온다. 물론 위고가 처음 쓴 말은 아니다. 누구나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모두가 그것을 평소에 자각하며 사는 것은 아니다. 병이 들거나 노년에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그것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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