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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인사, 대통령과 임기를 맞추는 엽관제(獵官制)로 가자

"한국판 플럼북(plum)도 만들자"

  • 기사입력 2022.04.06 14:22
  • 기자명 김승동 대표기자
▲ 김승동 대표기자/정치학 박사

정권교체 때마다 반복되는 주요 공공기관장 등의 인사를 둘러싼 신·구 권력의 인사권 공방이 이번에도 마찬가지 모양세를 보이고 있다.

이번 20대 대통령선거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23일 한국은행 총재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담당국장을 지명한 걸 두고 첫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청와대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 의사를 반영해 인사를 했다고 밝혔지만, 윤 당선인 측은 "협의하지 않았다"며 양측 간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이어 민간기업이지만 국민혈세가 4조원 이상 투입돼 사실상 공기업인 대우조선해양 대표 자리에 문 대통령의 지인을 선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청와대 회동으로 다져진 듯했던 협력 분위기가 다시 대치 국면으로 돌아서는 등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정권교체 때마다 반복되는 이 소모적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역대 정권들이 예외없이 다 그랬다. 노무현 정권이나 박근혜 정권 등 이념이 비슷하거나 같은 정당에서 정권 재창출을 했다고 크게 다르진 않았다.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인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나 어느 집권세력이든 조금이라도 더 '자기 사람'을 임명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박근혜 정부 때 임명한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직을 종용했다가 직권남용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이 벌어졌고 이 연장선에서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인 검찰이 사실상 여러 부처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어 현 정부의 블랙리스트 후폭풍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김은경 사건을 계기로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임기를 보장받은 기관장, 이사·감사를 솎아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측면에서 0.73% 차이로 대선에서 석패한 현 집권세력은 윤석열 차기 정부의 운신의 폭을 옥죄기 위해 알박기를 더욱 강화하고 싶을 것이다.

반면에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자칫하면 '식물대통령'으로 전락할 위기를 느끼는 윤석열 차기 정부는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의 사퇴를 압박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곧 물러나는 문재인 정부가 한 명이라도 더 인사를 하려는 것은 더더욱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권교체 때마다 반복되는 이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선 우리나라도 이제는 대표적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에서 실행되고 있는 '엽관제'(獵官制·spoil system)에서 그 답을 찾아봤으면 한다. 엽관제는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은 사람이나 정당이 관직을 지배하는 인사 형태로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가치를 공유하는 인물들을 공공기관에 임명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전쟁의 전리품과 같이 선거에서 이긴 쪽이 공공기관 등의 임명권을 다 가져가는 것이다. 또 그들은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다 같이 물러나는 것이다. 다만 독립성이 필요한 공공기관의 감사, 검찰총장·감사원장 등은 임기를 보장하면 좋지 않을까 한다.

또 하나의 대안으로 대통령이 임명 가능한 직위를 명확히 규정해 놓은 미국의 '플럼북'(plum book)을 제시할 수 있다. 표지 색상이 자두(plum)색이어서 '플럼북'으로 불리는 이 책에는 미국 대통령이 임면권을 가진 연방정부 1만여 개의 직책명, 임명 방식, 급여, 임기 및 임기만료 시점 등의 정보를 담고 있다. 만약 엽관제를 시행하더라도  '한국판 플럼북'을 만들어 어떤 직책의 임명요건은 무엇인지, 누가 어떤 자리에 갔는지 등을 청와대 홈페이지 등에 공개하면 대통령이 임용 가능한 자리라도 전문성이 없는 무자격자를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는 데는 여론 등을 의식해 부담감을 느껴 엉터리 인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역으로, 이 '한국판 플럼북'에 등록돼 있지 않는 그 이외의 자리는 대통령이 임명할 수 없는 자리라고 분명하게 선을 긋는 효과도 있기 때문에 이번에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 임명 시비와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차기 정부의 성공적이고 효율적인 국정수행을 지원하기 위해 '알박기' 인사를 중단하고 윤 당선인도 공공기관 인사는 자신과 임기를 같이하고 같이 물러간다는 '엽관제'를 선언하는 등으로 신·구 권력의 볼쌍스러운 싸움으로 가중되는 국민들의 피로감도 완화해 줄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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