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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을 메운 그 자리에 꽃을 피운 고찰 ‘불영사’

문화재:(보물)불영사 대웅보전,(경북 유형문화재) 불영사삼층석탑,(경북 유형문화재)울진 불영사 불패
소재지 : 경상북도 울진군 불영사길 48 (금강송면, 불영사)

  • 기사입력 2022.04.15 09:51
  • 기자명 정진해 문화재 전문기자
▲ 불영사 계곡 

울진군에는 금강송의 서식지로 잘 알려진 불영계곡이 있다.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부터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까지 이어지는 약 15km의 긴 계곡이 불영계곡이다. 이곳은 늘 흘러내리는 물이 만들어낸 계곡에 다양한 모양의 바위에 깎아지른 절벽이 많아 곳곳에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곳만 30여 개에 이른다. 계곡은 편마암으로 이루어졌으면 20억 년 전에 만들어졌다. 편마암은 땅속 깊은 곳에서 아주 높은 열과 압력을 받아 변형된 암석으로, 이러한 편마암이 드러나게 된 것은 동해로 흘러나가는 계곡물이 오랜 시간 편마암 위의 돌을 깎아냈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의 편마암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지질작용의 흔적이 잘 보존되어 있다. 그 중의 가장 큰 특징인 흑백의 줄무늬(얼룩말 무늬)와 눈 모양 구조는 편마암이 땅속 깊은 곳에서 만들어질 때 함께 만들어졌다. 줄무늬 구조는 높은 열에 의해 암석의 흰 성분과 검은 성분이 분리된 후 강한 압력에 눌려 흰 띠와 검은 띠가 생길 때 만들어지며, 눈 모양 구조는 흰 성분끼리 서로 뭉쳐서 만들어진다.

이 계곡에는 참꽃나무 겨우살이라고 부른 꼬리진달래와 향이 백 리를 간다는 백리향 등 무려 560여 종의 식물이 자생하고 있는 계곡이다. 식물 외에 조류, 어류, 포유류, 나비, 거미류 등이 서식하는 생태의 보고이기도 한 계곡이다.

▲ 불영사 대웅전  

이 계곡 금강소나무가 우거진 숲속에 1,370년이 넘은 오래된 사찰이 숨어 있다. 유백서의 「천축산불영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불영사는 신라 진덕여왕 5년(651)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창건설에 의하면 의상이 연못을 메우고 절을 지었는데 동쪽에 청련전을 짓고 무영탑을 세워 천축산 불영사라 하였다. 의상은 불영사에서 9년 동안 기거하였다 한다.

▲ 불영사 전경  

1396년(태조 5)에 화재로 인해 나한전만 남기고 모두 소실되어 다음 해에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영산전만 남기도 또다시 전소되었다. 그 후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쳐 오늘날의 불영사의 전각을 갖추었다. 경내에는 (보물) 불영사 응진전, (보물) 불영사 대웅보전)을 비롯해 극락전, 명부전, 조사전, 칠성각, 범종각 등의 여러 전각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불영사 삼층석탑,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불영사 부도 등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보물로 지정된 불영사 대웅보전은 중심법당으로 정확히 언제 세웠는지는 확실한 자료가 없으나, 법당 내의 탱화의 기록으로 영조 11년(1735)에 세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 형식의 팔작지붕을 한 건물이다. 건물을 안전하고 수평이 되도록 세우기 위해 쌓은 기단은 지형의 높낮이에 맞추기 위해 4면의 구성이 각기 다르다. 정면에서 보면 기단은 높은 편으로 잘 다듬은 면석과 갑석으로 쌓았고, 기단 아래에 돌거북이를 배치하였는데, 이것은 대웅전을 최초 창건 당시 화산이 비쳐서 화재 발생의 우려가 있다 하여 바다의 용왕인 거북이로 하여금 대웅전 화재를 예방코자 기단 아래 거북이를 장식하였다. 대웅전의 대들보 위에는 머리가 없는 거북이가 있다. 대들보에는 세 개의 발톱을 가진 용의 그림이 있고, 용의 발 아랫부분에 거북의 몸체가 양쪽에 한 마리씩 두 마리가 나무로 만들어 배치하였다. 머리는 건물 밖에, 몸은 건물 안에 두었다.

▲ 불영사 대웅전 거북 머릿돌 

나머지 3면은 장대석 또는 자연석을 이용하였다. 초석은 넓은 자연석을 이용하였는데 이것을 덤벙주초라고도 한다. 초석은 강돌을 쓰지 않고 산돌을 이용하였다. 가까운 계곡의 돌을 사용하게 되면 미끄러울 뿐만 아니라 돌의 성질이 차고 음이라 생각해 사용하지 않는다. 덤벙주초는 기둥과 만나는 면이 굴곡이 있음으로 기둥 밑면이 초석에 맞도록 그랭이질 한다. 그 위에 민흘림이 있는 원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외3출목 내4출목으로 짜인 구조이다. 주간포는 정면의 경우 칸마다 2조씩 배치하였으나 배면은 가운데 칸에만 2조를 놓고 좌우 협칸에는 1조를 놓았다. 측면은 모든 칸에 1조씩만 배치하였다. 첨차는 교두형(翹頭形)으로 첨차 양쪽 면을 수직으로 직절하고 하단을 둥글게 굴린 것으로 그 모습이 마치 만두를 닮은 것처럼 만든 첨차이다.

이러한 교두형 첨차는 고려 시대를 제외한 전시대에 걸쳐 폭넓게 사용되었다. 가장 흔하게 사용되었던 때는 조선 시대 5포 이상의 포식 건축이다. 1·2·3제공은 끝부분이 위로 향하는 앙서형(仰舌形)인데 초제공과 2제공은 연꽃을 조각했지만 3제공은 연봉오리를 조각하였다. 4익제공은 익공형(翼工形)이고 5제공은 운공형(雲工形)인데 정면 가운데 칸은 용두를 조각하여 배치하였다. 귀공포에서는 귀한대를 1마리 용으로 조각하여 장식성을 높였다. 제공은 건물 내부에서 4단까지 장식이 없는 교두형으로 처리하였다. 그러나 5제공은 주상포(柱上包, 기둥 위에 놓이는 포작)에서 용머리를 조각하였고 주간포에서는 삼분두(三分頭)로 처리하였다.

대웅보전의 내부의 가구 구조는 1고주 5량 형식을 취했다. 고주는 예불공간을 넓게 쓰기 위해 배면 중도리 위치에 맞춰 측면 기둥열에서 약간 뒤쪽으로 물려 세웠다. 대들보와 툇보는 공포 위에 놓이며 대들보와 툇보가 만나는 부분의 하부에는 고주를 세워 받쳤다. 대들보 위에는 조각이 화려한 포대공을 짜서 종보를 결구하였으며 종보 위에는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쳤다.

팔작지붕의 처마는 서까래와 부연을 사용한 겹처마 형태를 띠고 있으며, 천장은 중도리를 기준으로 안쪽은 우물천장으로 구성하고 바깥쪽은 빗천장으로 처리하였는데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가장 주목할 만 한 점은 단청 부분을 들 수 있는데 바깥쪽은 다시 단청하여 원래 모습을 잃었지만, 안쪽의 천장 부분을 비롯한 벽, 건물을 지탱하는 재료들에 그린 단청은 수준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건축양식과 기법, 불교 그림과 단청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조선 후기 건축물이다.

▲ 불영사 불패  

대웅전 내에는 은행나무로 제작된 2점의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불패가 놓여 있다. 불패는 부처님이나 스님을 모시는 위패로 주로 경서, 불·보살의 명호, 승려의 법명이나 발원 내용 등을 적어 놓은 패이다. 불영사의 불패는 숙종 4년(1678년)에 제작되었으며, 두 개 중 온전한 불패는 전체높이가 43cm, 패신 폭이 24.5cm이다. 패신의 상부에는 구름사이로 봉황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으며, 중앙 좌우에는 3개의 꽃과 잎이 조각되어 있다. 앞면 중앙에는 직사각형의 액(額)을 만들어 ‘雨順風調 國泰民安(우순풍조 국태민안)’이라 묵서되어 있다. 뒷면에는 직사각형 내부에 발원문이 묵서되어 있다.

▲ 불영사 삼층 석탑 

대웅보전 앞에는 신라 말기인 10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지대석을 놓고 석탑의 기단을 마련하였다. 기간의 각 면에는 모서리기둥인 우주와 받침기둥인 가운데에 탱주를 새겼다. 기단의 갑석은 기단에 비해 약간 넓게 덮은 모양이고 약하게 경사지게 처리하고 네 모퉁이의 합각선을 뚜렷하게 새겼다. 갑석 가운데에 방형 2단의 받침을 조출하여 상층기간을 받고 있다. 4매의 판석으로 구성된 상층기간의 각 면에는 모서리에 우주를, 가운데에는 탱주를 각각 1개씩 새겼다. 상면 역시 갑석을 지붕처럼 기단보다 넓게 덮었고 경사지게 처리하여 모퉁이의 합각선을 뚜렷하게 새겼다. 갑석의 가운데는 방형의 초층받침을 조출하였고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구성되었다. 탑신부의 매층 몸돌에는 모서리에 우주가 새겨졌으며, 2층과 3층으로 올라가면서 높이를 달리하였다. 지붕돌 하면에는 매층 각형 4단의 받침을 조출하였고, 상면에는 각형 2단의 몸돌괴임대가 갹출 되었다. 낙수면의 경사는 완만하며, 추녀가 수평을 이루다가 추녀마루에 이르러 경쾌한 반전을 이루고 있다. 상륜부는 노반, 복발, 앙화, 보륜으로 구성되었는데, 노반 이상의 부재는 수서가 바뀐 채 놓여 있다.

이 석탑은 상·하층 기단 갑석의 수법과 지붕돌의 양식 등을 고려해 볼 때 신라 말기인 10세기 초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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