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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족을 춤추게 만들었던 한국군 자이툰부대

  • 기사입력 2022.04.22 17:18
  • 기자명 이석복 작가
▲ 歡喜 이석복(수필가, 차세대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2006년 3월경 성우회(星友會;예비역 장성단체)에서 70세 미만의 예비역 장성들로 이라크 파병 자이툰(Zaitun)부대 격려를 위한 방문계획을 추진했다. 나를 포함해 희망자 5명(육군 2, 해군 2, 공군 1)이 참여했다. 그 당시 2003년 사담 후세인의 테러지원과 핵무기 개발을 차단하기 위해 감행됐던 ‘이라크 자유 작전(Operation Iraqi Freedom)'은 미 육군 1개 군단, 미 해병 1개 사단 및 영국군 기갑사단 등과 미·영국의 해·공군이 참전해 약 1개월만에 이라크군을 완전히 괴멸시키고 이라크를 점령했던 군사작전이었다.

그후 ‘안정화 작전’을 위해 미군과 영국군 외에 40여개 국가에서 동맹군을 소대규모로부터 여단규모까지 파병하고 있었다. 한국군은 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 사단규모(약 3,500여명)로 파병해 병력규모면에서 미군과 영국군 다음의 큰 부대였다. 우리 일행은 6개월 주기로 교대하는 병력과 함께 쿠웨이트까지는 대한항공편(보잉 747)으로 편하게 이동 했다. 쿠웨이트의 모래사막에 구축된 동맹군 보충대에서 1박후 우리 공군수송기(C-130)로 자이툰 부대가 주둔해 있는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자치주인 아르빌까지 ‘전술적 비행’으로 이동했다.

특히 전술적 비행간 ‘착륙단계’에서 예상되는 이라크 테러단체의 대공사격에 대응하는 전술기동에 대해 사전교육을 받을 때는 대수롭지않게 생각하고 들었다. 그런데 막상 아르빌 공항이 가까워오자 수송기가 하강하면서 전술기동이 시작되었다. 위아래로(Pitching), 좌우로(Rolling) 심하게 요동치는 것이 아닌가? 꽤 견디기 힘들었다. 왜 나이를 70세 미만으로 제한했는지 그제서야 이해도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테러단체의 대공유도탄 공격이 감지되었는지 갑자기 섬광탄(Flare)이 C-130 좌우측으로 요란하게 터지기 사작했다. 순간적으로 집사람이 “왜 그 위험한데를 가려고 하느냐?”며 이라크 방문을 만류하던 생각이 났다. 잠시 “만용(蠻勇)을 부린게 아닌가”하는 후회도 했지만 어찌하랴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나름 비상사태에 대비했는데 잠시 후 섬광탄도 멎고 조용해졌다. 무사히 착륙하여 마중나온 자이툰 사단장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사단장도 섬광탄이 작열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놀라서 확인해 보았다고 했다. 테러단체의 대공유도탄 도발이 아니고 공항내부의 공사장에서 용접공사가 있었다며 C-130에 장착된 적외선 센서가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이라고 해명해주었다. 아무튼 수송기 안에서 놀란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 일행은 장갑차의 삼엄한 경호 하에 사단 주둔지에 도착했다. 준비된 숙소에 여장을 풀고 잠시 휴식 후 자이툰사단의 현황보고를 청취했다. 자이툰부대가 이라크에서 시행하는 ‘평화유지 및 재건 활동’으로는 쿠르드족 마을 개선공사, 쿠르드인들에 대한 직업훈련, 의료지원 활동 그리고 대테러 작전이었다. 사단장 보고에 의하면 이라크내 ‘평화유지 및 재건사업분야’에서 한국군 부대가 가장 뛰어난 실력을 보이자 미군을 비롯한 동맹군 지휘관들이 자주 견학을 온다고 했다. 한국군 후배들이 자랑스러웠다.

부대의 안전을 위한 주둔지 경계는 외곽지역을 쿠르드인으로 구성된 이라크 방위대대에 맡겨서 병력 절약이 가능하고 경계도 보강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내부의 경계는 철책선 울타리와 인원보호 방호벽 그리고 고가경계초소가 있었다. 물론 각 초소마다 적외선 야시장비는 물론 경계사각지역에 CCTV까지 설치하고 사단지휘통제실에 연결되어 빈틈없이 방호 및 경계조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안심이 되고 든든했다. 사단현황 청취 후 중식은 자이툰 부대장병들과 함께 식사하고 우리 일행은 후배들에게 각자의 덕담(德談)을 한 마디씩 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쿠르드족과의 관계를 의식해서 퇴계(退溪) 이황선생의 ‘경(敬)’ 사상을 간단히 애기해 주었다. 우리 고유사상으로 상대방을 존중해주는 것이 모든 행동의 기본임을 강조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는 아니지만 사단의 지휘모토(Motto)가 “존경과 배려”라고 했다. 

사단을 순시하면서 의무대대를 들렀을 때 우리 병사들은 몇 명 없었고 쿠르드족들이 장사진을 치고 치료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 군의관들과 간호장교들이 매우 분주해 보였다. 쿠르드족 자치주 주지사 가족을 비롯한 자치정부 관료들은 물론 아르빌 주민들 가운데 가장 선호하는 병원이 한국군 의무대라는 것이었다. 주정부에서는 한국군에서 진료가능 인원수를 통보해주면 자기들이 선정해서 번호표를 지참해 환자를 보내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아마도 쿠르드족에게 한국의 질서문화인 ‘번호표’가 전파될 것으로 생각도 해봤다.

이어서 자이툰 부대가 운영하는 ‘직업훈련소’를 들렀는데 아르빌주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해주는 직업학교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컴퓨터수리, 자동차수리, 제빵과정 등 7개 분야였는데 졸업 즉시 취직이 보장된다고 했다. 다음날 쿠르드족 ‘마을 개선공사’ 현장을 방문했다. 마을개선공사는 아르빌 주정부에서 특정마을을 지정해주면 현지방문을 통해 공사소요를 판단하고 공병대와 민사부대를 주축으로 1~2개월 집중지원하는 개념으로 임무를 완수하였다. 우리가 공사현장을 찾았을 때는 마침 쿠르드 마을 개선공사를 완료하고 마을주민들과 함께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산뜻하게 개축한 교실에서 쿠르드족 어린이들이 “아빠곰은 뚱뚱해~ 엄마곰은 날씬해~”같은 한국동요를 우리 여군부사관의 지도하에 율동까지 하면서 우리말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감탄을 했다. 그리고 마을 한가운데에서는 우리 병사들과 쿠르드족 청년들이 씨름과 줄다리기 경기를 하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쿠르드족팀이 이기면  너무들 좋아서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다. 내가 볼 때는 우리 병사들이 적당히 져주는 것 같았는데 아마도 상호친선을 위한 의도였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경기장 주변에는 우리 군이 제공한 떡볶이, 불고기, 꼬치, 솜사탕 등을 준비하고, 쿠르드족은 그들의 전통음식을 준비해 서로 화목하게 나누고 있었다. 

말을 들어보니 원래 운동장이 질퍽거리고 악취나는 시궁창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군이 마을전체의 하수도를 만들어 주면서 쾌적하고 보송보송한 마을 운동장이 생긴 것이었다. 그러니 마을 주민들이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경사(慶事)가 아니겠는가. 쿠르드족 여자들은 원래 풍습에 외지인이 오면 집밖에 나오지 않는다는데 우리 여군들과 한껏 어울려 즐기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중에도 우리 경호부대원들은 외곽에서 경계임무에 충실한 모습도 늠름하니 멋있었다.

방문 마지막 날 사단에서는 우리 일행에게 아르빌 주정부를 방문하도록 안내했다. 주정부 관료들은 자이툰 부대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해 하였다. 그들은 한국의 새마을 운동본부를 방문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르빌주에서 발주하는 각종 건설공사에 한국의 기업들이 참여해주도록 간절하게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이 진출을 기피하기 때문에 주로 중국과 터키 기업들이 공사를 따낸다고 말했다. 한국정부는 과거 2004년 ‘김선일 피납 살해사건’으로 우리 기업들의 현지 진출을 막고 있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뙈놈이 번다”는 말이 있듯이 자이툰 부대 장병들이 쿠르드족지역에서 헌신적으로 지원활동을 하는데 모든 사업은 중국기업에게 뺏기는 것이 안타까웠다. 아르빌 지역은 ‘기름위에 떠있는 땅’이라고들 하는데 국익을 위한 좋은 기회를 잃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사단장과 환담을 마치고 격려패를 전달한 뒤 자이툰 부대를 떠났다. 자이툰 부대를 뒤로하고 떠나면서 밀려왔던 상념(想念)은 2003년 이라크 자유작전시 한국군이 전투부대를 파병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한국군이 1개 기계화여단 정도라고 참전시켰다면 후배장병들이 전투경험도 쌓고, 한국산 전투장비의 성능을 전장에서 시험해서 보완점과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미혈맹을 더욱 발전시키는데 얼마나 좋았겠는가하는 아쉬움이 새록새록 나를 괴롭혔다. 우리 국가지도자들과 군지휘부에게 정녕 약간의 위험과 희생없이 용감한 군대로,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군대로 육성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지를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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