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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銅像 )아티스트

[연재 30회]

  • 기사입력 2022.04.24 22:50
  • 기자명 이철원 전 아라우 파병부대장
▲ 제작된 동상을 세우는 모습 

파병 후 약 2개월이 경과할 무렵 해안도로를 정찰 중에 부대에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아부욥 마을을 지나다가 군인들의 동상을 발견했다. 이는 2차 세계대전시 이 지역에서 활동한 필리핀 유격대를 기념하기 위한 동상이었다. 시멘트로 만들어 금색을 칠했는데 너무 정교하여 동(브론즈)으로 만든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나는 당시 우리가 재해복구임무 종료 후에 파병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공원 건립을 구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청에 가서 동상제작자를 수소문하여 이름(보홀)과 전화번호를 확인해 놓았다.

이후 9월에 파병기념 공원을 조성하면서 한국전 참전용사 동상을 만들기 위해 아부욥에 동상제작자를 찾아갔다. 사실 동상제작을 마닐라, 세부 등 여러 곳에 의뢰하였으나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요구하여 예산상 제작이 제한되었다. 나는 동상제작자인 보홀과 식사하면서 우리가 만들려는 동상들의 모양, 제작 배경과 의미를 설명하고 가격을 협상했다. 보홀은 다른 곳에서 제시하는 가격의 1/10 수준을 요구했는데 이렇게 동상제작 가격이 싼 이유는 중간에 브로커가 필요없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동상제작비가 아무리 비싸더 라도 중간에 브로커가 이익을 가로 채기 때문에 본인에게 들어오는 수입은 이 가격 이상 받을 수 없다면서 적극적으로 동상제작 의사를 표명했다. 나는 동상제작자의 집이 멀어서 출퇴근이 어려웠기 때문에 동상제 작팀 4명이 우리 캠프에서 숙식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주말에는 차량을 제공하여 안전하게 집에 다녀 올 수 있도록 하는 등 VIP 대우를 했다. 또한 동상제작업자 아들이 우리가 운영하는 중장비 직업 학교에서 포크레인 기사 자격증을 획득하도록 기회를 제공했다.이들이 동상제작을 위해 필요한 자재와 인부를 지원해주고 생활하는데 필요한 것과 요구하는 사항에 대하여는 우선적으로 조치해 줬다. 이따금씩 지쳐 보이면 야간에 내 방으로 불러 다과를 대접했고 캠프 내에서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동상제작자가 자기 마을에서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비록 2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지만 의료지원팀을 보내 마을회관에서 의료지원을 해주었다. 

그런데 보홀은 부대원들이 ‘WORKER(노무자)’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하여 꼭 ‘ARTIST(예술가)’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그리고 예술가처럼 누가 지시하거나 통제하는 것보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필’ 받을 때 작업을 하곤 했다. 일을 잘하다가도 무엇인지 기분이 상하면 집으로 가버려서 경찰연락관을 보내 여러 번 데리고 와야 했다. 보홀은 이러한 나의 정성에 감동하여 “동상제작비는 컴맨더가 주는 대로 받 겠다”라고 하면서 한국전 참전용사 동상과 한국군과 필리핀군 공동 작업동상을 아주 훌륭하게 만들었으며, 추가적으로 아라우부대 활동 부조벽화와 포토존에 건물복구 후에 매번 실시하는 행사인 테이프 커팅 동상 여섯 개와 천사날개 세 개를 제작했다.

▲ 동상과 부조벽화를 제작 중인 보홀

12월 16일 동상업자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훌륭한 동상들과 부조벽화가 완성되어 필리핀 국방부장관과 주필 한국대사,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모시고 한국군 파병기념 공원 완공식을 의미 있고 멋드러지게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지역의 명물이 되어 있는데 우리가 떠난 뒤에도 수시로 공원에 가서 동상들을 살피고 보수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것이라 믿으며 아부욥의 동상제작자 에도이 보홀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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